경북 119산불특수대응단 박현중 팀장이 산불 진화 장비를 갖춘 채 현장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황준오기자
"산불은 무작정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잡는 재난이 아닙니다. 바람과 지형, 습도를 먼저 읽고 언제 들어가고 언제 빠져나올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결국 산불을 제대로 아는 것이 소방관의 생명을 지키는 첫 번째 전술입니다."
30년 넘게 수많은 재난 현장을 누빈 경북 119산불특수대응단 박현중 팀장은 이제 자신이 사선에서 체득한 경험을 전국의 소방관들에게 전하고 있다. 국내 유일의 산불 전담 소방조직에서 현장 진화와 함께 '산불 대응 전술 교육'을 맡은 그는 경험에 의존했던 산불 진화를 데이터와 표준 전술에 기반한 전문 영역으로 바꾸는 데 힘을 쏟고 있다.
TV 프로그램 '긴급구조 119'를 보며 사람을 구하는 소방관을 꿈꿨던 청년은 어느덧 후배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베테랑 교관이 됐다. 오랜 구조대 생활을 거쳐 산불 전문교육에 뛰어든 데는 국내 유일 조직이라는 자부심이 자리하고 있다.
"119산불특수대응단은 대한민국에서 하나뿐인 조직이다. 우리가 현장에서 축적한 경험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체계화한다면 전국 소방관들에게 전수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교육이 곧 생존'이라는 사실을 절감한 것은 2022년 울진 산불이었다.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화염 앞에서 기존 대응 방식만으로는 대형 산불을 상대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목격했다. 산불의 특성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위험을 판단하는 것조차 어렵다는 사실도 뼈저리게 느꼈다.
"울진 산불을 겪으며 산불을 제대로 알아야 살아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 산불 전문교육은 단순히 진화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대원들의 생명을 지키는 교육이다."
2025년 의성 산불을 비롯한 대형 산불 현장에서 축적한 경험은 고스란히 교육 전술로 바뀌었다. 박 팀장이 가장 먼저 강조하는 것은 '바람·지형·습도'다. 현장 도착 즉시 이 세 요소를 읽어야 불길의 방향과 확산 가능성을 예측하고 안전한 진입로와 퇴로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가 후배들에게 반복해 강조하는 철칙은 '철수할 줄 아는 진화'다. 안전이 확보되면 진입하지만 불이 나뭇잎과 가지를 타고 수관으로 번지며 화염이 급격히 확산하는 수관화(樹冠火)가 발생하면 즉각 철수해야 한다. 경주와 의성 등에서 직접 위험한 순간을 넘긴 경험이 만든 원칙이다.
"불을 끄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원이 살아 돌아오는 것이 먼저다. 진입보다 어려운 판단이 철수다. 위험 신호를 읽고 물러날 때를 아는 것도 산불 진화의 중요한 기술이다."
박 팀장의 교육은 과거 경험을 전달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기후변화로 산불이 갈수록 대형화하고 확산 양상이 복잡해지면서 AI와 드론, 공중 현장영상 등 첨단 기술을 교육에 적극 접목하고 있다.
AI를 활용해 산불 상황을 분석하고 대응 방향을 예측하는 한편, 드론과 공중영상을 통해 화선(火線)의 규모와 진행 방향을 입체적으로 파악하는 방식이다. 지상 대원이 제한된 시야에서 판단해야 했던 산불 현장을 위에서 읽어 진입 대원의 위험을 줄이는 것이다.
그는 "드론과 공중영상을 활용하면 산불의 전체 규모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며 "AI 역시 정확한 상황 판단과 대응 예측을 지원해 현장 지휘관과 대원들의 의사결정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기술만으로 산불 대응력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박 팀장은 국가 차원의 지휘체계 일원화와 산불 전문교육의 정례화·표준화, 진화 장비의 표준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형 산불일수록 여러 기관과 인력이 동시에 투입되는 만큼 동일한 판단 기준과 전술 체계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30년 넘는 소방관 생활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으로는 2021년 전국소방기술경연대회에서 동료들과 함께 1위를 차지했던 때를 꼽았다. 당시 전국 최고를 향해 함께 흘렸던 땀은 이제 후배들을 가르치는 자산이 됐다.
그가 교관으로서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원칙 역시 '안전'이다.
"후배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소방관의 안전이다. 믿음직하고 존경받는 선배이자 스승으로 기억되고 싶다. 내가 전한 전술과 경험으로 단 한 명의 후배라도 더 안전하게 현장에서 돌아온다면 그것이 소방관으로서 가장 큰 보람일 것이다."
기후위기는 산불의 양상마저 바꾸고 있다. 불길이 커지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현장 대응 역시 경험과 용기를 넘어 과학과 데이터, 표준화된 전술을 요구한다. 박현중 팀장이 30년간 사선에서 얻은 경험을 교실로 옮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불을 잘 끄는 기술보다 먼저 가르쳐야 할 것은 살아 돌아오는 기술이다. 박 팀장의 강의가 향하는 마지막 지점도 결국 하나다. '한 명이라도 더 안전하게 귀환하는 소방'. 그것이 대형 산불 시대를 맞은 대한민국 산불 대응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황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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