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출산장려금은 낙후되고 인구 감소가 급속도로 진행하는 시·군 지역에서 인구를 늘려보고자 2001년 전남에서 시작한 대책이다. 이후 각 시·군이 인구를 늘려보겠다며 경쟁적으로 액수를 올리며, 전국 지방자치단체 245곳 가운데 234곳에서 도입했다. 그런데 돈만 타가면서 지역 곳간을 비우고 인구는 오히려 감소하는 지자체들이 속출하고 있다."(조선일보, 2021년 8월14일)
"전국에서 가장 먼저 농어촌 기본소득을 지급한 경남 남해군이 기본소득 지급에 따른 인구 증가 효과가 사실상 끝났다고 자체 평가한 것으로 확인됐다.…농어촌 기본소득 도입으로 한때 늘었던 인구가 더 이상 증가하지 않고 정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의미다. 남해군이 지난달까지 여기에 쓴 예산만 약 498억원(국비 포함)이다."(중앙일보, 2026년 10월29일)
안타깝고 슬픈 뉴스다. 백약이 무효인가? 출산율 감소로 나라의 전체 인구가 줄어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지방에선 있던 사람들마저 서울을 향해 떠나버리니 죽을 맛이다. 그간 온갖 아이디어가 다 동원되었지만, 모두 다 '반짝 효과'에 그쳤을 뿐 성공을 했다는 이야긴 들려오지 않는다. 정말 답이 없는 걸까?
국가가 저출생을 극복하겠다며 지난 20년간 쏟아부은 예산은 700조원에 달한다지만, 그대로 믿을 건 아니다. 3년 전 생물학자 최재천이 잘 지적했듯이, "정부가 많은 돈을 투자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우리 정부는 많은 돈을 투자한 것이 아니다. 정부가 투자했다는 예산은 곁다리에 쓴 것도 다 합친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돈을 많이 쓴 나라 축에 끼지도 못한다."
다음 통계에 주목해보자. 2005~2017년 한국복지패널 자료를 살핀 연구(문영만)에 따르면, 상용직(계약 기간이 1년 이상) 여성의 출산율은 임시·일용직 여성보다 무려 4배 높았다. 대기업 종사 여성 노동자의 출산율도 중소기업 종사 여성 노동자보다 4배 높은 것으로 확인된다. 2024년 기준, 전체 노동자의 15% 안팎만을 고용하고 있는 300인 이상 대기업에 아버지 육아휴직 사용자의 67.9%, 어머니 육아휴직 사용자의 57.7%가 집중돼 있다.
지난 7월에 출간된 사회학자 이주희의 '저출생 우생학 사회'에 나오는 통계다. 저자는 "한국 사회가 꾸준히 '부모 자격'의 문턱을 높여 '정상' 부모를 선별해왔다"며 이런 사회 구조를 일컬어 '구조적 우생학'이라고 불렀다. 그는 "좋은 주거 환경, 사교육 지원, 문화 경험 등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로서 제공해야 하는 사회적 의무로 정착됐다"며 출산이 사실상 선별된 소수의 특권이 되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조선일보, 2026년 8월1일)
'출산 특권'의 이면엔 권력·부·문화향유의 기회가 집중돼 있는 서울로의 진입 전쟁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게 만드는 '지방 식민지화'라는 현실이 버티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건 그런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식민지'라는 말에 반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많거니와 지방의 독자적인 '인구 늘리기'가 가능하다고 보는 환상이 널리 퍼져 있다는 사실이다.
그간의 '인구 늘리기'는 각 지방자치단체 단위로 각자도생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700조원 타령'은 더 이상 하지 않는 게 좋겠다. 그건 비판을 피하기 위한 정부의 면책용 변명에 불과하다. 이 문제는 뒤집어 생각해보는 게 필요하다. 역대 대선·총선·지방선거의 주요 이슈들을 살펴보자. 지방소멸 의제가 모든 지역에 공통된 주요 선거 이슈로 등장한 적이 있었는가? '모든 지역에 공통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정 지역에 국한된 대규모 사업은 늘 선거 이슈가 되지만, 이건 그 지역의 표를 얻기 위한 차원에서만 이루어질 뿐이다.
모든 지방정부들이 협력하는 단일체가 되어 중앙정부에 '지방 식민지화'를 깰 수 있는 구조적 변화를 요구해 본 적이 없다. 각 지역은 파편화된 채 중앙정부의 지원을 놓고 '제로섬 게임'을 한다. 매우 치열한 경쟁이다. 모두들 지역감정이 예전처럼 심하지 않다고 자위하지만, 대선은 주요 지역 간 중앙권력 쟁탈을 위한 전쟁이 된 지 오래다. "우리부터 살고 보자"는 지역발전 전략은 모든 지역에 혜택이 돌아가게끔 하는 구조적 변화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왜 좀 더 크고 과감한 대안을 생각하지 못하는 걸까? 상상력의 빈곤 때문인가? 예컨대,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 중앙정부가 지방의 기업과 주민들에게 파격적인 감세 정책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 어느 선거에서건 나올 법도 하건만 그런 법은 없다. 그건 각 지역이 독점적으로 누릴 수 있는(즉, 자기 지역에서 표를 얻을 수 있는) 정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이 늘 지역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투사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중앙 정당의 공천에 코가 꿰인 처지에서 권력자들의 눈치를 보느라 지역을 위한 정당한 문제 제기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서울시장직과 경기지사직은 대선 출마로 가는 길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고 그게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다. 정말 이상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장과 경기지사가 전체 국익에 개의치 않고 지역 간 형평을 완전히 무시하면서 드러내는 지극한 자기 지역 사랑이다. 서울시장과 경기지사가 각각 서울과 경기도의 이익만 추구하는 걸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다. 잘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랬던 사람이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서면 어쩌자는 건가? 대통령을 해볼 뜻이 있었다면 지역 간 상생을 할 수 있는 큰 그림을 그렸어야 했던 게 아닌가?
우문이다. 한국에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방민들은 서울시장·경기지사 출신의 대선 후보에게 지역균형발전의 철학과 의지가 있는지 묻지 않는다. "서울시장·경기지사 시절 일을 잘했다고 하니 나라 전체를 위해서도 잘하겠지 뭐"라는 식으로 생각한다. 지방민들이 대선·총선·지방선거를 지방소멸을 막을 수 있는 중요한 기회로 활용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미국인들은 법적 권리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소득에 따라 차등적으로 향유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분개하지 않고 있다." 미국 언론인 맷 타이비의 말이다. '미국인'을 '한국인'으로, '소득'을 '지역'으로 바꾸면 어떨까? 이 격언을 꼭 기억해두는 게 좋겠다. "권리 위에서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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