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설 사회2팀장
요즘 의사들의 한숨 소리가 깊어졌다. 의대 증원 사태에 이은 필수의료 붕괴, 응급실 뺑뺑이 등으로 의사들에 대한 시선이 가뜩이나 곱잖은데, 최근 의학 드라마 한 편이 인기를 끌면서 더욱 곤혹스럽단다. '닥터X' 이야기다. 의사들은 "마피아 같은 의사들만 나오는 드라마를 보면서 낙담하는 필수의료과 전공의들이 적잖다. 필수 의료, 더 안 하려 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드라마 주인공인 외과 의사 계수정은 완벽한 술기로 생명을 살려내는 판타지 범주의 인물. 절대 수술에 실패하지 않는 주인공을 보며 통쾌함을 느끼면서도 일면 속이 불편한 것은 국내 의료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 때문이다. 의료 사고로 소위 '실패한 의사'로 전락한 국내 의료진들은 유례없는 의료 소송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7월 위중한 상태로 아주대병원 소아 전문 응급의료센터에 내원한 영아가 의사의 심폐소생술을 받다가 사망했다. 유족은 의료 과실을 주장하며 의료진을 경찰에 고소했다. 이에 경찰은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아 병원 응급실을 압수수색했다.
물론, 법이 규정한 사법 절차에 따른 정당한 집행 자체를 문제 삼을 순 없다. 일부 국민들 입에서 병원은 압수수색하면 안 되나, 사람이 죽었는데 수사받는 게 마땅하다는 주장도 흘러나온다.
의사가 되돌릴 수 없는 잘못으로 환자의 생명에 극단적 피해, 상처를 입혔다면 의사도 수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의료 현장, 그중에서도 생사의 갈림길에 선 소아 환자들을 위해 사투하는 응급실에서 일하는 이들을 일반 범죄 혐의자와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틀렸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한 전문의는 소아 응급실 강제 수사에 대해 "제2의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이라 규정했다. 당시, 중환자실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국내 소아 의료를 단숨에 붕괴시켰다고 의사들은 진단한다. 이 일로 전국 병원의 소아청소년과 인턴·레지던트가 확 줄었다. 의대증원 이슈가 없던 시기였지만, 필수 의료 기피의 싹이 텄다.
형사 법정에 서는 의사 수는 한국이 압도적이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과 법조계의 비교 연구에 따르면, 국내에서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되는 의사는 연평균 700~800건이다. 매년 수백 명의 의사가 의료행위 중 발생한 사고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셈이다.
반면, 사법 체계가 유사한 일본의 경우 연간 경찰에 입건·송치되는 의사는 수십 명 수준이다. 실제 기소로 이어지는 건수는 연평균 10~20건 안팎에 불과하다. 영국, 미국의 의사들이 의료 과실로 형사 기소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병원은 생명을 살려내는 곳이다. 이런 곳에선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만큼 본질적인 부분에 충실할 수 있는 여건이 뒷받침돼야 한다. 의료진이 의료 사고가 두려워 최선의 진료를 포기하고, 형사 처벌을 막는 일에 급급하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입을 수밖에 없다.
대한소아응급의학회는 최근지난달 30일 응급실, 중환자실, 분만실 등 생명이 위급한 필수의료 현장 압수수색을 원칙적으로 제한하는 내용을 수사 가이드라인에 담으라고 요구했다. 통상적인 환자 사망 건에서 과도한 현장 조사 관행도 개선할 것을 요구했다.
소아 응급실 압수수색은 경찰이 수사에 대한 기본적인 가이드라인만 갖췄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응급의료를 경찰이 나서서 방해해서야 되겠는가.
이효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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