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탈출' 고속도로 레커 기사로 변신한 주지훈"재난영화인데 웃음 담당…힘들었지만 즐거운 여정"
배우 주지훈이 또 한 번 과감한 연기변신을 했다. 훤칠한 키와 잘생긴 마스크, 선한 이미지로 가는 곳마다 눈길을 사로잡는 그다. 하지만 이번 개봉작 '탈출'에서는 그런 우월적 유전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인생잭팟을 노리며, 맨 몸뚱아리 하나로 억세게 살아가는 고속도로 레커 기사 '조박'으로 변신한 것. 기름때 묻은 얼굴과 노랗게 염색한 치렁치렁한 머리, 운동복 차림으로 긴급한 사고 현장을 찾아 달려간다. 조박은 교통사고가 일어나면 쏜살같이 현장으로 달려가지만 사고가 없을 때는 주유소에서 알바를 뛰며 사장 몰래 뒷주머니 채울 기회를 호시탐탐 노린다. 캐릭터를 구상하면서 "어렸을 적 동네에 한 명쯤 있었던 형들의 모습을 떠올렸다"는 주지훈은 "트렁크에 종이처럼 몸을 구겨 넣고, 입으로 불을 내뿜는 등 장면 장면마다 힘들고 어려운 여정이었지만 즐거운 작업이었다"고 회상했다. 한편 영화 '탈출'은 지난해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우리 곁을 떠난 고(故) 이선균 배우의 유작이다. 극중 이선균과 티격태격 케미로 웃음을 주는 그는 "함께 작업하면서 만난 선균형은 리허설도 철저하게 챙기는 것은 물론 상대배우에게 편안함을 주는 꼼꼼하고 자상한 사람이었다. 배우로서 그를 잃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여름에 가볍게 만나는 '팝콘무비'▶영화를 첫 관람한 소감은."여름 시즌에 가볍게 볼 수 있는 '팝콘무비'라고 해서 출연했는데, 그 느낌과 매력을 충분히 잘 살려낸 것 같아요. 저도 재밌게 관람했습니다."▶영화가 앞서 열린 '제76회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받았다. 칸에서 상영한 필름과 비교해 한국 개봉작의 러닝타임이 다소 짧아졌다."현재 러닝타임이 1시간36분인데, 칸 상영작보다 6분 정도 짧아졌다고 들었어요. 스토리 전개에서 큰 틀에서는 차이가 없고, 군데군데 늘어지는 부분을 정리했다고 알고 있어요. 엔딩 부분에 번외로 촬영해 넣은 에필로그 부분이 잘렸어요.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와 같은 콘셉트로 촬영했는데, 영화의 흐름을 방해한다는 지적이 있어 잘렸다고 해요."▶극한의 재난상황을 그린 작품이다. CG를 사용한다고 해도 연기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CG를 얘기할 때 완성도에서 할리우드와 비교할 건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가 처한 현실에서는 굉장히 고퀄리티의 작품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고, 제작진한테 감사한 마음입니다. 아무래도 재난영화다 보니까 극한의 상황을 연기하는 것부터 여러 출연자들의 통일감 있는 시선처리까지 신경 쓸 부분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사람마다 재난상황에 느끼는 스릴감, 공포감의 게이지가 다 다르기 때문에 수위를 맞춰나가는 것도 중요한 숙제였습니다."▶극중에서 웃음을 담당하는 역할이었는데, 부담이 컸을 듯하다. "아예 코미디 영화였다면 부담이 덜했을 텐데 재난영화다 보니 고민이 많이 됐어요. 하지만 제작진과 이전에도 작업을 같이했었기 때문에 믿는 구석이 있어 마구 날뛰었죠. 촬영 당시에는 제작진도 저도 굉장히 만족스러웠는데, 나중에 영상으로 보니 좀 다르더군요. 영화가 기본적으로 가져가야 하는 '톤앤매너'가 있는데, 유독 저 혼자 튀는 것이었죠. 결국 제작진이 후시녹음과 같은 기술적 보완을 통해서 전체적 톤을 깎아내렸어요."▶조박이라는 캐릭터가 외모상 상당히 튀는 비주얼인데, 이와 관련해 아이디어를 많이 냈다고 들었다. "제가 어릴 때인 1990년대 초반에 동네 주유소에서 일하던 형들이 있었어요. 고급 미용실에서 염색을 하는 게 아니라 맥주로 머리를 염색하는 이런 이미지들이 찰나적으로 떠올랐고, 감독님과 대화를 하면서 제안을 했지요." ◆고(故) 이선균, 리허설도 철저한 배우▶함께 연기한 이선균 배우와 호흡은 어땠나요."너무 좋았어요. 형이 연기를 오래한 베테랑이니까 리허설도 철두철미하게 하고, 빈틈이 없었어요. 함께 연기한 희원 형도 마찬가진데, 작업하면서 의견조율이 필요할 때는 자신의 의사표현을 가감없이 표현하는 등 의사소통이 자유로웠어요. 선배이기 때문에 좀 어려울 수도 있는데, 두 분 모두 그런 성격이 아니었어요. 제가 막내였는데, 자유롭게 의견을 내면서 작업할 수 있었어요."▶촬영 때 함께했던 이선균 배우가 이제는 우리 곁에 없는데, 기억나는 장면이 있는지."엔딩 부분일 거예요. 선균 형이 사건의 배후에 있는 국가안보실장과 만나는 장면이 있어요. 그동안 가슴속에 답답하게 묵은 체증이 확 터지는 기분이랄까요? 칸에서도 그 대목에서 영화가 안 끝났는데도 사람들이 박수 치고, 휘파람 불며 좋아했어요."▶위스키를 입에 넣고, 불을 내뿜는 등 위기상황에서 몸을 쓰는 연기가 많았다. "제작진에게 촬영 때 호기롭게 하겠다고 했는데, 정작 저의 뇌는 무서웠던가 봐요. 촬영 때 위스키를 뿜어내는 데 압력조절에 실패하면서 위스키가 침샘을 타고 내려갔고, 염증이 생겨서 한 며칠 고생했어요. 트렁크 장면도 그 작은 차에 억지로 몸을 욱여넣었는데, 연기는 해야 하고, 앵글도 맞춰야 하고, 여간 힘든 게 아니었어요. 힘든 것도 힘든 것이지만 정말 아프기도 했어요. 그래서 촬영장에서 강아지보다 제 처우가 좋지 않다는 말이 나왔어요."▶'강아지보다 처우가 안 좋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예전 '젠틀맨'을 찍을 때 나온 강아지는 천재견이었어요. '뛰어' '걸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정도로 훈련이 잘되어 있어서 촬영에 어려움이 없었거든요. 이번에는 조금 다른 견종이었죠. 하지만 영화 장면에는 강아지를 백안에 넣고, 달리는 위험한 장면들이 많아서 강아지 골절이 우려되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제작진이 실제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정교한 강아지 인형을 만들어줬어요. 개를 가까이서 찍는 컷을 빼고는 인형으로 대체했죠. 강아지보다 배우의 복지가 안 좋다는 말이 거기서 나왔죠."(웃음)▶최근 수년간 작업한 영화들의 흥행성적이 썩 좋지는 않은 것 같다. 이번 영화의 흥행과는 별개로 고민이 될 듯한데."모든 영화계의 고민인 듯해요. 흥행이 됐다고 좋은 작품이고, 흥행이 안 됐다고 해서 나쁜 작품이라는 것은 아니잖아요. 코로나를 계기로 세상이 바뀌다 보니 관객들의 취향이나 작품의 선택 패턴도 달라지는 듯해요. 생활방식이 바뀌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감정이 바뀌는 것이죠. 어쨌든 관객이 있어야 저희가 있는 거니까 관객들이 좋아하는 지점을 잘 분석해야 할 것 같아요."▶40대에 접어든 배우 주지훈의 고민은 무엇인지."저는 대본을 받았을 때 괜찮다고 느끼면 TV, OTT, 영화 등 미디어를 가리지 않고 출연해요. 왜냐면 내가 재밌고 즐겁다면 관객들도 재미가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이제는 그 결정을 내리기가 참 어려워졌어요. 이유는 한국작품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관객도 다양화된 것이죠. 한쪽에서 외면받았던 작품이 다른 쪽에서 대박을 치는 경우가 생겼거든요. 시장이 통일성이 없어지면서 내가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지 헷갈릴 때가 많아진 거죠. 나는 분명 한국에서 작품을 찍고 있는데, 아랍과 아프리카의 문화와 취향까지 고려해야 하는거죠."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배우 주지훈은 최근 개봉한 영화 '탈출'에서 기름때 묻은 얼굴과 얼룩덜룩한 염색머리의 레커기사로 과감한 이미지 변신을 했다. 영화 '탈출'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