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구뒷얘기 . 18 > 삼성의 준우승 (하)

  • 입력 1997-04-12 00:00

삼성의 한국시리즈 도전사는 좌절과 눈물로 점철돼 있다. 지난 93년 10
월 삼성은 그 여섯번째 '응시'를 혹독하게 치르고 있었다.이미 한국시리즈
에서 다섯번의 고배를 마신 삼성이지만,해태와 세번째 맞대결하는 이번 한
국시리즈만큼은 한번 해볼만했다.

그동안 해태를 상대로 번번이 패하면서 데이터와 경험을 통해 나름대로
전력분석이 돼 있다고 믿었고, 김상엽, 박충식, 김태한으로 이어지는 마운
드에 양준혁, 김성래, 이종두, 강기웅의 막강타선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
었다.

당시 언론들은 타력의 삼성과 선동열, 조계현이 버틴 마운드의 해태를
두고 '창과 방패의 대결'이라며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전문가들도 양팀의
전력을 5-5라고 분석했다.

막상막하의 양팀 전력이 말해주듯, 7차전까지 간 시리즈중 3차전에서 박
충식이 보여준 '혼신의 투구' 는 아직도 팬들의 기억에 생생하다. 선발로
나서 15회까지 던진 그의 투구는 아직 불가사의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대구홈에서 박충식을 선발로 등판시킨 우용득 감독은 그가 한국시리즈
첫 우승의 해법을 제시할 '구세주'로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박은 그해 정규시즌 해태와의 경기에서 3승2패, 방어율
1.79를 기록했다. 두번의 패배도 1실점으로 패한 것이어서, 내용면에선 팀
내에서 단연 '톱'이었다.

우 감독의 믿음에 보답이라도 하듯 그는 15회까지 52타자를 상대로 무려
1백81개의 공을 뿌렸다. 11개의 삼진에 피안타 7개,2실점을 기록하는 호투
를 보였다.

당시 경기상황은 이랬다. 1-0으로 앞선 3회초 2안타를 내주며 1실점, 동
점을 이뤘다. 해태 김응용 감독은 3회초 동점을 이루자 선발 문희수에서
곧바로 선동열을 계투시켰다. 관중석에선 "이젠 졌구나" 하는 탄식이 터
져나왔다. 선동열과 박충식. 노련미의 선과 패기의 박. 그러나 모두 선의
우세를 점쳤다.

박충식은 6회 선두타자 홍현우에게 중월솔로홈런을 내줬다. 당시 선의
피칭으로 봐선 진 것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그러나 삼성은 6회말 3번 강기
웅부터 시작되는 타선에서 선동열로부터 곧바로 2안타를 터뜨리며 천금의
동점을 빼냈다. 이후 박의 피칭은 더욱 날카로워졌고, 대선배와 당당히 어
깨를 겨루고 있다는 자신감이 공 하나하나에 실려있는 듯했다.

9회를 넘어서고 10회에 들어서도 승부가 나질 않자 해태는 선동열을 강
판시키고, 박의 세번째 파트너로 송유석을 낙점했다. 팀의 에이스를 무리
하게 만든다는 것은 3차전의 승패를 떠나 7차전까지 갈지도 모를 레이스에
서 자칫 '악수'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던 것.

당시 경기를 지켜본 야구해설가와 팬들은 '귀신' '독종'이라며 박의 '신
투(神投)'에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박충식은 "선동열 선배가 던질 때까지 던져야겠다는 생각에 통증이 느
껴지지 않았지만, 다음날부터 3~4일간 팔에 심한 통증이 왔고, 어깨도 부
어 애를 먹었다" 고 회상했다.

현재 대구 MBC야구해설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우용득 당시 삼성감독은
"연장전에 들어갈 때 선수교체를 고려했으나,마땅한 투수가 없었던데다 본
인도 원해 계속 던지게 했다" 며 "당시 박충식의 모습을 보며 애처로움과
대견함이 엇갈렸다" 고 술회했다.

입단당시 계약금 4천8백만원에 연봉 1천2백만원, 93시즌 거둔 성적은 14
승7패2세이브, 방어율 2.54. 입단때 빼어난 활약을 기대하지 않은 박이었
지만, 그해 페넌트레이스의 맹활약은 물론, 한국시리즈에서 고무팔을 연상
시키는 투구로 혼자서 해태 문희수, 선동열, 송유석으로 이어지는 막강마
운드를 상대한 것이다.

그해 입단한 양준혁과 이종범의 당시 활약에 비추어보건대, 만약 시리즈
신인왕이 있었다면 그의 몫이 아니었을까.
<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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