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대구의 못을 찾아 시간여행을 떠나다

  • 박진관
  • |
  • 입력 2013-10-25   |  발행일 2013-10-25 제33면   |  수정 2013-10-25
20131025
1933년 대구사단의 개척자 최계복이 촬영한 영선못.
20131025
원로사진가 장원식씨가 1940년대 촬영한 날뫼못.


‘~질펀한 백리 벌은 이름난 복지, 그 복판 터를 열어 이룩한 도읍~.’(목우 백기만의 대구시민의 노래 중)

대구는 북쪽 팔공산과 남쪽 앞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다. 하지만 세숫대야처럼 평평한 벌판이 아니라 구릉성 산지와 크고 작은 언덕으로 이뤄졌다. 분지 속에 그보다 작은 분지도 많다. 대표적으로 북쪽에는 팔거천을 중심으로 북구 관음동 칠곡3지구 일대, 남쪽에는 지산·범물지구가 있다. 달서구와 서구지역은 대부분이 평지다.

금호강을 낀 저지대는 범람원 충적평야가 많다. 예를 들어 평리동(坪理洞)의 경우 ‘넓은 들판에 들어선 마을’이라 하여 ‘들마을’ 또는 ‘들말’이라고 했다.

거대한 분지 안에는 수도산·연암산·침산·두류산·와룡산·법이산·마천산·도덕산·응해산·함지산 등 아기자기한 산도 많다. 그 가운데 일부 산은 개발로 사라졌다. 대표적인 산이 연귀산이다. 연귀산은 대구읍성이 있던 시절 대구의 진산(鎭山)이자 앞산이었다. 또 산마다 크고 작은 골(谷)이 있었으며, 골에 사람이 집거하면 고을이 됐다.

대구 동쪽 동촌유원지에서부터 금호강과 낙동강 합수머리 구간은 100리(40㎞)다.

목우의 가사처럼 대구를 휘감는 금호강은 ‘질펀한 백리 벌’이다. 금호강으로 합류하는 지천은 팔공산·앞산·비슬산, 또는 분지 속 구릉성 산지에서 발원했다. 율하천·불로천·동화천·팔거천 등은 북쪽 팔공산에서, 신천과 달서천, 진천천 등은 남쪽 비슬산과 앞산에서 발원해 금호강과 만나고, 금호강은 다시 서남쪽에서 낙동강과 접한다.

큰비가 내리면 크고 작은 하천과 강들이 범람해 대구분지를 적셨다. 고대 대구인들은 홍수를 피해 안전한 준평원이나 고위평탄면, 또는 선상지로 대피했다. 금호강을 비롯한 주요 하천 주변에 고인돌을 비롯한 다양한 유물과 유적이 발견되고 있다. 홍수로 하천이 범람하면 실트나 점토 등은 하천의 자연제방을 넘어 주변의 농경지를 덮는다. 자연제방을 넘어서 주변의 저지대를 덮어 버리면 습한 곳으로 변하는데, 이게 바로 배후습지다.

전영권 위클리포유 대구지오(GEO) 자문위원은 “대구에서 범람원은 금호강 유역과 신천 유역, 팔거천 유역, 진천천 유역 등으로 나눈다”고 했다.

매년 홍수로 피해를 입자 대구인들은 수로를 돌리고 제방을 축조하는 한편, 저수지를 만들었다. 성당지나 대불지(배자못)와 같은 저수지는 고려 때부터 있던 못이다. 감삼지와 천왕당지, 남소 등은 조선시대 지리지와 대구읍지 등에 나타난다. 수성못 등은 일제강점기에 축조됐다. 이 밖에도 범어못, 한골못, 영선지, 날뫼못, 소래못 등 크고 작은 저수지가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고개와 못은 1960년대 이후 도시의 팽창으로 깎이거나 메워졌다.

이번 호 위클리포유에서는 대구지역에서 사라진 못을 찾아봤다.
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