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네거리 일대는 원래 ‘한골못’…‘연화지’ 는 정확한 위치 몰라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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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10-25   |  발행일 2013-10-25 제35면   |  수정 2013-10-25

◆소래못

소래못은 경부선철도가 지나는 신암지하도를 기준으로 북쪽 신암동 동신초등학교와 남쪽 신천동 송라아파트와 송라시장 일대다.

원래는 1개였으나 철도가 생긴 이후 2개가 돼 쌍둥이못으로도 불렸다. 못의 형태가 ‘소라’를 닮았다고 해 ‘소라’가 ‘소래’로 되고, 소래를 한자로 표기하다보니 송라(松羅)가 됐다고 한다.

18세기에 발간한 대구읍지에는 ‘송라재의 둘레가 368척, 수심이 3척2촌’이라고 나와 있다. 6·25전쟁 당시 못 주변은 피난민촌이 형성됐다고 한다. 1918년 대구지형도를 보면 못이 둘로 나뉘었음을 알 수 있다.

◆사리못

1530년에 발간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와 있는 대구지역의 못은 성당지와 불상지, 연화지 등 3개다. 이 3개의 못은 고려시대 때도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성당지와 불상지는 각각 성당못과 배자못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연화지는 지금까지 어디에 위치했는지 정확하게 고증된 게 없었다. 다만 달성토성 인근에 있던 것으로만 추정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26권 경상도 대구도호부 산천조에는 ‘부에서 북쪽 10리에 불상지가 있고 부에서 서쪽 5리에 연화지가 있다’고 나와 있다. 또 달성토성의 위치에 대해선 ‘부의 서쪽 4리에 있다’고 기록했다. 현재 달성공원 서편에 연화지가 있었다는 방증이다.

한편 대구읍지에는 연화제와 사리제를 따로 설명했다. 연화제에 대해선 ‘서상(西上)에 있다. 둘레가 1천980척이고, 수심이 3척’이라 했고, 사리제에 대해선 ‘서중(西中)에 있으며 둘레가 1천840척, 수심이 3척’이라고 했다.

1918년에 제작한 대구지형도에는 사리제, 또는 연화지로 추정되는 못이 나온다. 이 사리제는 바로 사리못이다. 바로 지금의 서구 비산동 서부초등학교와 서부시장 일대다. 농업용수와 낚시터로 이용되던 사리못은 72년 매립되면서 서부시장이 됐다.

전영권 대구지오 자문위원은 “사리제가 사리못, 또는 연화지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최원관 다사향토사회장은 “달성토성은 천연 해자로 둘러싸인 곳이다. 해자의 물이 범람해 토성 주위에 크고 작은 못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며, 그곳에 연(蓮)이 많이 자생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한편 일반적으로 사리함 꼭대기에는 연꽃문양으로 장식을 하는데, 이를 연꽃사리라고 한다.

◆평리못

평리동의 옛 이름은 ‘들마’였다. 우리말 그대로 ‘들이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들마에 있던 못은 처음엔 작았으나 가옥이 늘어나면서 못이 작아 주민이 돈을 추렴해 못의 규모를 크게 만들었다. 이 못은 서구청이 들어서기 직전인 74년까지 있었다. 1918년 대구지형도에 ‘들마못’이 보인다.

◆한골못

한골(大谷)은 1918년 대구지형도에 나온다. 지금의 대구MBC네거리 일대다. 못은 그리 크지 않았다. 대구MBC~동대구역 동대구로는 긴 골짜기였다. 이 네거리는 아랫 한골(동대구역)과 윗 한골을 구분하는 중심이 됐다고 한다.

한골못 인근에서 60년대 후반 자취를 했던 언론인 권정호씨는 한골못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는 “못은 작았지만 물고기가 많아 낚시꾼이 늘 붐볐다”고 회상했다.

◆소못

동구 효목동 지역에는 옛날 작은 못이 있어 ‘소못골’ 또는 ‘소못곡(谷)’으로 불렸다. 조선 숙종이 소못골에 세거한 동래정씨 정종악의 호인 효목을 따 마을이름을 효목으로 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1918년 대구지형도에 소못 또는 효목못이 보인다. 이 못은 효목동과 만촌동 일대 논밭에 농업용수를 공급했다. 면적은 약 1만평인데 못을 메워 효목공원이 됐다. 공원 안에 있던 효목도서관은 현재 수성도서관으로 바뀌었다.

<협찬> (주)지오씨엔아이
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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