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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연 시인 |
눈의 여왕에게 매혹되어 얼음 궁전에 갇힌 소년 카이는, 얼음 조각들을 맞추어 하나의 단어를 완성하면 풀려날 것을 약속 받습니다. 단어가 완성됨과 동시에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도 함께였습니다. 그러나 카이는 한 마디 단어를 맞추어 내는 데 계속해서 실패합니다. 소년이 절대로 완성할 수 없었던 하나의 낱말은, '영원'이었습니다.
북극으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습니다. 그곳은, 정말이지, 추웠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더 아름다웠습니다. 살아 있음의 불가능성이 얼음송곳처럼 파고 들어와, 간곡하게 삶을 떠올리려고 노력해야만 하는 곳이었습니다. 눈 폭풍으로 인해 시야와 방향의 감각을 잃어버리고 백맹(白盲)이 되어 버리는 북극에서는, 새들도 하늘과 땅을 구분하지 못해 지상으로 곤두박질친다고 합니다.
시를 쓰는 어떤 밤들이, 눈의 여왕에게 붙잡혀 결코 완성할 수 없는 낱말을 맞추기 위해 애쓰고 있는 시간처럼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내가 쓰고 있는 시들은 곤두박질친 새의 날갯짓처럼, 방향을 잃어버리기 일쑤입니다.
수상 소식에 잠시 눈 폭풍이 잦습니다. 건너편에서 따뜻한 불빛이 비추고 사람의 다정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혼자 애쓰고 있는 게 아니라, 간곡한 이들이 함께하고 있는 거라고, 소리 내어 이름을 불러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시가 홀로 곤두박질치지 않게 같이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세차게 앞을 가로막는 눈 병정들을 헤치고 나아간 소녀의 씩씩한 발걸음이 잊히지 않습니다. 다시 사방이 막막해지기도 할 것입니다.
그때,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 오늘에서부터 영원을 살라고 한 구상 시인의 시를 떠올리겠습니다.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진 어느 산골짝 옹달샘 물 한 방울에 닿은 시인의 눈길과,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연대를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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