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영남일보 문학상] 단편소설 당선작-마지막 조련사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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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1-02   |  발행일 2020-01-02 제31면   |  수정 2020-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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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미 作

아득의 시간은 느렸다. 모두가 개별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산다고 하지만, 녀석들은 특히 더디게 살아갔다. 갓 태어난 사슴은 제 어미가 태반을 핥아주기가 무섭게 걸었다. 청둥오리 새끼는 알을 깨고 나오자마자 뒤뚱거리며 본능적으로 어미를 따라다녔다. 야생에서 살아가야 하는 동물들에게 자력으로 걷는 일은 중요했다. 최상위 포식자가 아닌 이상, 그들은 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과는 달리 빠르게 성장해나갔다. 아득은 달랐다. 출산한 어미 중에는 간혹 태반을 핥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듯이 가만히 있는 녀석이 있었다. 사육사들이 달려들어 닦아줘야 했다. 새끼들은 오래도록 눈을 뜨지 않았다. 빛이 없어도 살 수 있는 두더지처럼 눈을 감은 채로 어미의 옆에 누워 움직이지 않았다. 어미 아득이 커다란 바위라면 새끼들은 조약돌 같았다. 갓 태어났을 때를 제외하면 아득은 우는 일도 거의 없었다. 배가 고프면 보채기 마련일 텐데, 어미의 젖내를 쫓는 본능마저 없어 보였다. 주사기에 넣은 동물용 분유를 한 방울씩 흘려 넣어 주면 그제야 배가 고팠다는 듯이 가늘게 신음했다.

수명이 짧은 동물의 시간은 인간보다 느리다고 한다. 개들은 20년을 채 살지 못했다. 그들이 외출한 주인을 기다리는 시간이 마치 영원과도 같을 거라는 말을 떠올리면, 하이너씨는 마치 우주에 버려진 미아 같았다. 하이너씨는 자신이 남들보다 더딘 시간 속에 있다고 여겼다. 그는 대체 누구를 기다리는 걸까. 자신만 혼자 느려진 시간 속에 머물게 된 이유를 몰랐다.

아득은 한참 동안 자라났다. 느렸다. 너무 느려, 어느 시점까지 성장을 마치고 언제 노화가 시작되는지를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하이너씨 얼굴에 패인 굴곡이 제법 짙어졌다. 주름 때문에 눈물이 흐르는 물길이 바뀌어 갈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아득이 어디쯤 자신의 생을 살아냈는지 알기에는 부족한 날들이었다.

아들이 이름만 간신히 들어 본 동양의 작은 나라로 떠난다는 소식에 하이너씨의 어머니는 많이 놀랐다. 누군가 옆에 있으면 좋을 텐데. 어머니는 걱정을 쉬는 법을 몰랐다. 괜찮아요. 그는 어머니를 안심시키려 했지만 달리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괜찮아요, 어머니. 누군가 좋은 사람이 생기겠죠. 한 마디만 덧붙였어도 좋았을 텐데.

하이너씨는 미혼이다. 중년을 넘어선 그가 누군가와 남은 생을 함께 보내게 될 가능성은 점점 더 줄어들었다. 가끔 동료들이 말했다. 이봐,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지금이라도 가. 그에게 좋은 사람이란 어떤 존재일까. 하이너씨에게 좋은 사람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는 언젠가 단 한 번, 결혼 비슷한 것을 생각했었다. 아득과 동물원, 동물원과 집, 다시 아득 뿐이었던 그에게도 연애의 기회가 있었다.

하이너씨는 아직 30대 초반이었다. 그는 막내 연구원이던 명은과 거의 10살 차이가 났다. 명은은 닥터 강이 출강하는 학교의 대학원생이었다. 총명하고 적극적이던 그녀는 닥터 강의 눈에 들어 센터에 들어왔다. 가까이에서 아득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굉장한 행운이었다. 막내 연구원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아득의 먹이를 하이너씨에게 전달하고, 특이사항이나 주의할 점 전달하기이다. 서로의 휴무를 제외하면 두 사람은 거의 매일 만날 수밖에 없었다. 오늘 먹이는 정량 배식입니다. 그녀는 짧은 한마디를 전할 때에도 생글거리는 웃음을 꼭 덤처럼 붙였다. 하이너씨는 꽤 오랜 시간 동물원에서 일했지만, 아득과 함께하느라 이국의 말이 좀처럼 빠르게 늘지 않았다. 짧은 대화도 쌓이기 마련이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더해갔다. 그의 서투른 발음과 빈곤한 어휘가 명은을 통해 확장됐다. 그는 자신이 명은을 좋아하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확신할 수 없었다. 너무 오랫동안 아득이 아닌 누군가와 사적인 감정을 나누지 않았다. 예전의 그러했던 감정이 지금의 이것과 같았나. 하이너씨는 오랜만에 고민했다. 명은의 태도는 이성적인 호감일까.

"이번 휴무에 어딘가 가지 않을래요?"

물어오는 명은에게 하이너씨는 고개만 끄덕였다.

둘은 그 주 목요일에 함께 외출하기로 했다. 어디로 가면 좋을까요. 명은이 생긋 웃었다. 하이너씨는 동물원에 오고 처음 1, 2년까지는 휴일이면 시내로 나갔다. 그는 곧 싫증을 느꼈다. 점점 휴일에도 동물원 바로 옆에 위치한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 가만히 소파에 앉아 이국의 말이 흘러나오는 텔레비전 화면을 보다가 잠이 들었다. 그런 하이너 씨는 몰랐다. 어디로 가면 좋을까. 결국 두 사람은 동물원에서 운영하는 수목원으로 향했다.

매표소를 지나 구름다리를 건너는 동안 두 사람 사이에는 대화가 없었다. 하이너씨는 생각이 말이 되어 나오는 과정 자체가 너무 오랜만이었다. 아득의 단순한 삶이, 적요한 본성이 그에게 옮겨왔다. 차라리 그녀가 먼저 말을 걸어주었으면. 하이너씨는 생각했지만, 명은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산책로를 따라 걷는 내내, 그녀는 작은 감탄사만 내뱉었다.

온통 새빨간 잎이 가득한 낙엽송 정원을 지날 때였다. 하이너씨는 아득이 태어나서 한 번도 낙엽송을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와 정원을 오가는 생활 속에서는 선명한 색채를 접할 길이 없었다. 하이너씨의 작업복도 고무장화도 무채색이었다. 연구원들은 전부 하얀 가운을 입거나, 소독처리가 된 위생복을 입고 아득을 만났다. 그는 아득에게 세계를 구성하는 색의 다양함을 경험하게 해주면 어떨까 고민했다. 아득이 암석처럼 단단하게 굳어있는 이유가 야생의 색을 빼앗겼기 때문은 아닐까. 그들에게 돌려준다면. 안락함과 보호라는 허울 아래 유폐되어 버린 아득에게 돌려준다면. 하이너씨의 머리는 아득으로 들어찼다. 거기에 명은이 던지는 질문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들리세요? 저한테 궁금한 건 없나요? 아득이 아니라."

명은의 물음에 하이너씨가 놀라 대답했다.

"미안해요, 말이 너무 빠르네요."

하이너 씨와 명은은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사귀지 않는 사이도 아니었다. 모호한 상태로 남았다. 그녀는 여전히 웃어주었다. 아득의 상태를 알려주었다. 하이너 씨가 아득의 식사량과 배변량을 알려주면 명은이 받아 적었다. 두 사람이 다시 휴무를 맞추는 일은 전혀 없었다.

망설이는 사이 명은은 센터를 떠났다. 박사과정을 마치기 위해 학교로 돌아갔다.

"당신이 있을 자리는 여기인가 봐요. 저는 갈게요."

잡아 달라는 말이었을까. 가끔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이너씨는 정답을 알 기회를 한참 전에 놓쳤다. 하이너씨는 남았다. 아득의 옆이 그의 집이었다. 닥터 강이 정년을 넘겨 은퇴하고 연구원들이 바뀌는 동안에도 하이너씨만은 제자리에 머물렀다.

투표를 통해 새로 탄생한 지사는 공약으로 아득의 일반 공개를 내세웠다. 그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에 사람들의 기대가 부풀었다. 그는 사업가일 때 쌓아놓은 재력과 인맥으로 정계에 진출해 줄곧 승승장구 해왔다. 본인이라면 중앙 정부를 설득해 낼 자신이 있다고 외쳤다. 하이너씨의 고국에서도 이상한 공약을 내세우는 정치인들은 많았다. 하이너씨가 보기에 지사 역시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은 유형의 사람이었다.

세계 최대의 관광객 유치를 이루겠다는 미명아래 아득의 일반 공개를 위한 예비 시찰을 허가해 달라는 공문이 내려왔다. 연구센터의 사람들은 대부분 격렬하게 반대했다. 아득이 일반에 공개된다면 스트레스로 인해 종의 번영이 위태로워질 거라고 난색을 표했다. 동물보호 단체들도 반대성명을 잇달아 발표했고, 해외 단체들마저 일반 공개를 비난했다. 아득은 레드 리스트에서도 야생 절멸 등급에 해당하는 희귀종이었으므로 당연한 일이었다. 하이너씨는 요즘 들어 아득의 식사량이 자꾸 줄어드는 일이 바깥의 소란과 연관이 있다고 믿었다. 아득은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옆 도시의 아득 한 마리가 폐사했다. 정확한 원인은 조사 중이었다.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해, 아득을 보유한 연구센터마다 비상이었다. 즉시 조사단이 꾸려졌다. 닥터 한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요즘 들어 아득이 출산을 하는 일도 드물었다. 인공수정도 성공률이 자꾸만 떨어졌다. 하이너씨는 아주 오래전 닥터 강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저들은 지나치게 예민해요.'

언젠가 동물원 직원들 사이에서 아득이 무엇과 같냐는 질문이 유행했었다. 아득을 만난 사람들은 아득이 곰이나 코끼리처럼 거대하다고 했다. 아득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아득이 설화 속의 기린이나 용이라고 예상했다. 아득의 울음소리를 들었던 닥터 한이 말했다. 아이들. 그 애들은 영원히 자라지 않는 어린아이와 같아.

아득의 가장 가까이에서 생활하는 하이너 씨에게도 질문이 돌아왔다. 하이너씨는 물어오는 이들에게 그들이 초식동물이 아닌 게 이상해, 라고 말했다. 그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늘 안개를 떠올렸다. 울음소리가 그러했다. 그의 내부를 파헤쳐보는 것 같은 회갈색 눈동자가 그러했다. 하이너 씨가 처음 아득을 맡게 되었을 때부터 줄곧 품고 있던 생각이었다. 후에 그는 이 나라에서 아득의 이름이 희미하고 먼 것을 나타내는 말과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이너씨는 아득의 이름을 붙인 오래전의 누군가에게 '당신도 들었습니까?', 하고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하이너씨는 우연히 알게 됐다. 아득도 간단한 재주를 익힐 수 있었다.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음을 알리는 눈이 내리는 오후였다. 아득은 추워진 날씨 탓에 야외 산책도 거르고 우리 안에 바싹 웅크리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줄곧 한 자리를 지키며 호흡마저 멈춘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만큼 고요했다. 하이너씨는 온종일 갇혀있는 녀석들이 혹시 배설물 냄새에 곤혹스럽지는 않을까, 자주 우리 안을 돌아보았다.

한 녀석이 발치에 무언가 깔고 있었다. 하이너씨는 조용히 다가가서 아득을 다른 쪽으로 보내려 했다. 엉덩이가 무거운 녀석답게 좀처럼 움직여주질 않았다. 하이너씨는 답답한 마음에 통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잠깐 일어나, 라고 말했다. 아득이 일어났다. 하이너씨는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녀석이 깔고 있던 것은 어제 산책에서 묻은 진흙 덩어리였다. 그만 앉아도 되겠다. 그러자 녀석이 원래대로 웅크렸다. 하이너씨는 아득이 앉아와 일어서를 완벽히 이해하고 있음을 확신했다. 그는 세계 최초로 아득 조련에 성공한 사람일지도 몰랐다.

폐사한 아득에 대한 조사는 아무런 진척이 없었다. 닥터 한은 죽은 녀석이 단지 운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아득의 일반 공개를 찬성하는 쪽이었다. 연구센터의 지원비를 대폭 늘리겠다는 계산속이었다. 아득은 보호종이었지만, 과도한 예산투입이라는 비난을 받는 일도 종종 있었다. 게다가 쉽게 늘어나지 않는 개체 수와 그들의 더딘 성장과 느린 행동 이외에 특기할만한 생태연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말들이 많았다. 예산을 줄이고 센터를 합병, 폐쇄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이너씨는 꿈을 꾸지 않았다. 기억하지 못했다. 꿈들은 눈을 뜸과 동시에 물에 녹듯 무의식 저편으로 사라졌다. 아득이 앉아와 일어서를 알아듣고 난 뒤, 그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하이너씨는 숲 한가운데 있었다. 그의 머리 위에는 빈틈없이 얽혀서 자란 나무들이 빛을 전부 가리고 있었다. 그의 발밑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물에 젖은 풀냄새가 마치 고향에서 맡았던 그것과 비슷했다. 하이너씨는 반가움에 달리고 싶었지만, 발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두 발이 땅에 박혀버린 느낌이었다. 양쪽 팔이 너무 무거워서 땅을 짚은 채 들어 올릴 수가 없었다. 답답함에 소리를 질렀지만, 재갈을 문 것처럼 신음만 간신히 새어 나왔다. 도움을 청할 방법이 없어 난처해하는 그의 맞은편에 아득 한 마리가 우뚝 서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처음으로 아득과 눈높이가 맞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이너씨의 불안이 사라졌다. 그랬군, 나도 녀석들과 같은 모습이 되었나 보네.

꿈을 꾸기 시작하고 꽤 시간이 지났다. 여느 때처럼 먹이통을 채우고 퇴근 전 배설물을 청소하는 하이너씨의 귓가에 소리가 들렸다. 아득이 울었다. 하이너씨는 녀석에게 다가갔다. 줘. 그렇게 들렸다. 줘. 하이너씨가 말했다. 일어서.

하이너씨는 경비에 빈틈이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혼자의 힘으로 따돌릴 수 있을까. 아득은 나가고 싶어 한다. 하이너씨는 아득을 탈출시키려고 했다. 퇴근 시간이 훨씬 지나고 연구센터에 당직 인원만 남았다. 하이너씨는 미리 준비한 먹이통을 우리 앞에 바짝 붙여놓았다. 조명을 낮춰놓은 우리 안에서 아득은 낮과 변함없는 모습으로 웅크리고 있었다. 하이너씨는 나직하게 말했다. 일어서.

아득을 등에 업은 하이너씨의 다리가 덜덜 떨렸다. 노년에 접어들기 시작한 그에게 아득의 무게는 견디기 힘들었다.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숲은 어디까지 계속될까. 하이너씨는 도망쳤다. 아득의 거대한 몸이 그를 자꾸만 바닥으로 처박았다. 축축한 풀숲에 운동화가 자꾸 미끄러졌다. 하이너씨는 믿었다. 아득은 결코 사람을 해치지 않을 거라고. 녀석을 인적이 드문 야산에 풀어주기만 하면 돼. 그의 얼굴이 일그러져 패인 골짜기를 타고 땀이 흘러내렸다. 동시에 아득이 두 팔에 힘을 풀었다. 녀석이 등에서 미끄러져 내려갔다. 순식간에 온기가 사라진 등에서는 바람에 땀이 마르는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타앙.

하이너씨의 무릎이 스프링처럼 튀었다. 하이너씨는 죽음이 두려웠다. 이토록 선명한 생의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이너씨는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자연스러운 일은 거스를 필요가 없다.

하이너씨가 눈을 뜬 곳은 가문비나무가 즐비한 어느 날의 숲이었다. 빛이 새어 들어오지도 못할 정도로 수두룩한 수목들 사이에 그가 있었다. 산새조차 울지 않는 숲, 작은 짐승의 부스럭거림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고국의 숲을, 아버지와 걸었던 가문비나무 숲길을 떠올린다. 하이너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숲의 출구를 찾는다. 간신히 빛이 새어 들어오는 곳을 좇아 하염없이 걷는다. 어디까지 왔을까. 그는 문득 궁금해져 고개를 들었다. 하이너씨가 올려다본 하늘, 니더작센주의 하늘이 푸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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