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영남일보 문학상] 단편소설 당선작 - 마지막 조련사 (상)

  •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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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1-02 09:04  |  수정 2020-01-02 09:00  |  발행일 2020-01-02 제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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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미 作

하이너씨가 아득을 처음 만난 것은 그가 이십대 중반의 젊은 사육사였을 때이다. 독일에 있을 때 그는 사진과 동영상을 통해서 그것을 보았다. 실물을 만나게 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아득은 그에게는 생소한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만 살고 있었다. 하이너씨는 자신이 아득을 만나게 될 거라고, 그리고 아득의 전속 사육사가 될 거라고, 그 때문에 고국을 떠나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타국에 머물러 어느새 노년에 가까워질 거라는 사실을 몰랐다.

아득은 국가가 특별히 관리하는 보호종이었다. 타국으로의 반출은 절대로 불가했다. 아득을 실제로 본 사람들 역시 극소수에 불과했다. 세계 각국의 동물학자들이 연구를 위해 동양의 작은 나라를 방문했지만, 그들도 유리 벽 너머에서 바라보는 게 고작이었다.

아득은 바위였다. 한번 자리를 잡으면 도통 움직일 줄을 몰랐다. 의사를 표현하려는 노력도 거의 하지 않았다. 비행기를 열 시간 넘게 타고 동양의 작은 나라의 작은 동물원까지 방문한 이들은 몸이 달았다. 참다못한 어떤 젊은 학자는 아득의 울음소리를 듣기 위해 주먹을 쥐어 유리 벽을 세 차례나 꽝꽝 두드려댔다. 그 바람에 경비가 달려와 학자의 팔을 힘껏 비틀어 그를 바닥에 처박았다. 과잉대응으로 인한 외교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었다. 그것이 보통의 방문이었다면. 아득은 국가 보호종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 학자들의 관심이 쏠려 있는 희귀종이었다. 아득을 만나는 것이 허락되는 사람들 역시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들은 동의서에 서명하고, 철저한 몸수색을 거치고, 소독약 때문에 구역질이 올라올 정도로 철저한 위생처리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아득을 유리 벽 너머에서 간신히 관찰할 수 있었다. 아무도 경비대의 행동을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귀한 시간을 방해받은 학자들은 젊은 학자의 혈기왕성함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아득이 놀라서 이상이라도 발생할 경우, 방문은 즉시 중단되고 두 번 다시 아득을 볼 수 없게 될까 걱정이 됐다. 젊은 학자는 영어로 스탑과 쏘리를 연신 외치며 경비의 제압을 벗어나려 몸부림쳤다. 다른 이들은 그의 발버둥이 거슬렸다. 어서 빨리 여기서 치워버렸으면.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방해꾼. 그들에게는 너무 아까운 시간이었다.

젊은 학자는 결국 경비대에 의해 밖으로 끌려나갔다. 담당자인 닥터 한은 별일 아니었다는 듯이 웃었다. 그녀는 학자들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춰 달라고 요구했다. 모쪼록 저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를. 짧은 말에는 어딘가 음산하고 위협적인 데가 있었다.

'당신들은 저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학자들의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유리 벽 너머의 소란과 혼돈 속에서도 아득은 그저 바위 같았다. 그것이 살아있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학자들은 고요히, 유리 벽 너머의 보고 있으나 보이지 않는 미지의 생물에게 일종의 학자로서의 경의를 표하며 눈을 떼지 못했다.

하이너씨는 아득의 울음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아득이라는 도무지 파악할 수 없는 생명체를 곁에서 보살피다 보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에게도 손에 꼽을 만한 일이었다. 하이너씨가 이전에 돌보았던 동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보채는 법을 알았다. 낑낑대는 녀석도 있었고, 조용히 다가와 마치 사람처럼 등이나 어깨를 두드리는 녀석도 있었다. 밥을 달라거나 안아 달라거나 우리에서 내보내 달라거나 놀아 달라거나. 하이너씨에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어떻게든 전달하기 위해 애를 썼다. 애처롭고 가여운 것들. 하이너씨는 그들이 자신을 찾을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동물들은 대부분 강제로 고향을 떠났다. 푸르고 차가운 초원의 공기와 사막의 열기와 까마득한 어둠에 휩싸인 깊은 숲, 더러는 높고 커다란 바위 절벽에서 가위로 잘라내듯 분리되어 우리에 갇혔다. 그들이 어미와 무리를 뒤로하고 고향을 등지며 이곳에 모여든 덕분에 하이너씨가 밥을 먹고, 옷을 사고 가끔은 영화를 보며 맥주를 마시다 소파에서 잠들 수 있었다. 하이너씨에게 그들은 살아있는 죄책감이었다. 동물들의 먹이를 통에 담고 분변을 치워줄 때, 짚이나 나뭇가지를 새로 넣어줄 때, 그들이 하이너씨에게 고마움과 절대적인 경외심과 애정을 표하는 미묘한 표정을 지을 때면 그의 죄책감은 더욱 선명해졌다. 그들이 마치 하이너씨를 부모나 보호자로 여기며 그를 따르고 다정한 모습을 보이면, 순간 그는 사육장 문을 모두 열어서 나에게 애정을 갈구하지 말고 너희의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소리치고 싶어졌다.

'여기가 아니야.'

하이너씨는 매일 마음속으로 외쳤다.

아득을 돌보게 되었을 때, 하이너씨는 광활한 숲을 지키는 숲지기가 된 기분이었다. 혹은 산 중턱 오두막에서 산짐승의 울부짖음과 야생 조류의 소리에 잠드는 산장지기와 같은 기분도 들었다. 아득이 풀밭 위에 가만히 엎드려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는 그리운 기분에 휩싸였다. 그가 어린 시절 딱 한 번 아버지와 함께 갔던 니더작센주의 국립공원. 나무들이 빈틈없이 빽빽하게 들어선 바람에, 방문객이 맞이할 태양마저 가리는 어두운 가문비나무숲이 떠올랐다. 그가 만난 아득은 그것의 어미와는 다르게 야생이 아니라 인공 포육실에서 태어났다. 세상에 나와 동물원 밖으로 나가본 적도 없을 녀석이 먼 이국땅―하이너씨에게는 고향이지만―숲에 꽤 오랜 세월 동안, 마치 그곳에 뿌리를 내려 이끼가 가득한 바위와 같이 잠들어 있는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

그때는 아직 현역이었던 닥터 강에게 아득에 대한 주의사항을 들으며 유리 벽 너머의 모습을 바라보았을 때, 녀석이 문득 고개를 돌려 그와 눈을 마주쳤을 때, 하이너씨의 시간은 녀석과 함께 흘러가기 시작했다.

닥터 강은 아득이 지나치게 예민한 동물이라고 말했다. 기척을 감추는 일에 능숙하고, 마치 돌덩이처럼 주변 풍경의 한 조각인 양 굴어서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많다면서 웃었다.

"보채는 일이 없으니 해주어야 할 일도 없을 것 같지만, 녀석은 그리 만만하지 않소."

닥터 강은 곰 같은 마누라와 사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라고 덧붙였다. 그때는 아직 타국의 속담이나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라 닥터 강이 소크라테스의 부인 못지않은 악처와 사는 줄로만 알았다. 이전에 돌보던 그리즐리 베어를 떠올리며 아득의 어떤 부분에 그러한 흉포함이 숨어있는 것일까 긴장도 됐다. 사육사로서의 사명을 다하기 전에 녀석에게 물려 죽거나 맞아 죽게 된다면 분명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될 거라 생각하니 가슴 한구석이 묵직해졌다.

하이너씨는 매일 새벽 동물원에 속해 있는 연구센터에 들렀다. 아득의 먹이 때문이었다. 보호종인 아득은 개체 수가 적었기 때문에 철저한 계획과 관리 아래에서 사육됐다. 아득을 보호하는 도시의 동물원들은 모두 국가 주도의 연구센터가 있었고 연구원들이 상주했다. 정부는 전염병이 돌았을 때와 근친교배를 최대한 자제해 유전자 풀을 늘리기 위해 녀석들을 도시 곳곳에 나누어서 보호하고 있었다. 하이너씨가 돌보는 아득도 일찌감치 어미와 분리되어 저마다 다른 다섯 개의 도시에서 모인 녀석들이었다. 연구원들은 언제나 개체 수를 늘리기 위해 고심했지만, 쉽사리 늘어나지 않았다.

아득을 돌보는 사육사 역시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됐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닥터 강의 말에 의하면 인간 역시 유전자에 따라 취약한 질병이 있으므로, 혹시나 아득에게 전염이 될 경우의 위험요소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일리 있는 주장 같으면서도, 한편으로 부질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닥터 강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덕분에 자신이 아득의 담당 사육사가 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연구센터에서 받은 먹이를 차에 싣고 아득의 우리로 향하는 길이 하이너씨에게는 언제나 가장 지루하고 먼 여정이었다. 매일 똑같은 곳을 언제나 똑같은 속도로 달려 아득을 만나러 가는 길. 반쯤 눈을 감고도 반사적으로 찾아갈 법한 세월이 지났다. 그에게는 여전히 지도 없이 미로를 맴도는 기분이었다. 좀처럼 익숙해지는 일이 없었다. 하이너씨는 알고 있었다. 언제 커브를 돌아야 하는지, 어디가 가장 도로변 나무들이 풍성하게 자라있는지, 그 나무가 언제쯤 낙엽을 떨어뜨리는지도 하이너씨의 머릿속에 각인이 됐다. 너무 자세히, 그토록 명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지루했다. 그의 삶에 더는 극적인 변화가 없었다.

공기마저 정체된 새벽의 도로는 늘 텅 비어 있었다. 사파리 투어 전용 코스였기 때문에 개장 전에는 당연한 일이었다. 하이너씨는 매일 번갈아 가며 사파리에 방사되는 맹수들을 예상하는 일로 하루의 운세를 점쳤다. 동물원에 세 마리뿐인 백사자가 나올지, 나온다면 전부일지 아닐지, 호랑이들은 암수가 몇 마리나 풀릴지, 우두머리인 탱크와 이인자인 보트가 함께 나올지를 예상했다.

아득도 저들처럼.

차가 사파리 코스를 완전히 빠져나가 아득이 머무는 우리에 다다를 때면 하이너씨는 결국 한 가지 생각만으로도 벅찼다. 사방이 막힌 미로를 간신히 빠져나왔더니, 더 거대한 장벽이 그의 앞을 가로막는 기분이었다. 그나마 우리 안에서 돌덩이처럼 진득하게 버티고 있는 아득이 아니었다면, 영원히 입구를 찾아내지 못했을 것 같아 어깨가 떨렸다.

아득의 먹이통을 채우는 일로 사육사로서의 하루가 시작된다. 먹이통과 물통을 채워두고, 간밤에 녀석들이 남겼을 배설물들을 치우기 위해 하이너씨는 쉴 틈이 없었다. 거의 움직임이 없는 녀석들임에도 우리 곳곳에 잘 보이지 않는 부분에 녀석들은 실례를 했다.

처음 동물원에 와서 지금까지 하이너 씨는 아득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배설물만은 보물찾기하듯, 부끄러워 차마 보일 수 없다는 듯, 그에게 들키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숨기려는 것처럼 여기저기에 흩어놓았다.

하이너씨는 동물들의 배설물을 치우는 일을 괴로워하지 않았다. 그들을 여기에 가두어둔 이상 당연히 제공해야 할 서비스라고 여겼다. 하이너씨에게 동물들은 까다롭지만, 충성도 높은 고객들과 비슷했다. 고향에 있을 때, 하이너씨는 그가 돌보는 녀석들이 자신을 보호자로 여겨서 너무 괴롭고 부담스러웠다. 고양잇과 동물들의 동공이 한껏 확장되어 그를 우러러보면,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갯과 동물들이 그의 다리를 휘감으며 친근함을 표하면, 그는 팔을 벅벅 긁었다. 어느 녀석이든 애정을 보이면 그는 심장박동이 빠르게 뛰고 정수리가 젖어 들었다. 영장목들이 그의 등장에 흥분해서 끼욱대며 목을 휘감는 순간이면, 마른기침이 나와 참을 수가 없었다.

'난 아니야.'

이들이 인간의 언어를 갖지 못한 것이 다행스럽기도 하고, 불만스럽기도 했다. 영리한 녀석들은 사육사들과 의사를 어느 정도 주고받을 수 있었지만, 언어와 대화의 이면까지 완전히 이해한다고 생각하기는 힘들었다. 그랬다면 철창과 방탄유리에 갇혀 자유를 빼앗긴 채로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내보일 수는 없다.

아득을 맡은 이후로 하이너씨는 생각이 바뀌었다.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관계가 성립하는 일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이너씨는 아득이 그의 보호자 같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가족과는 조금 달랐다. 하이너씨는 고향에 있는 어머니 이외에는 가족이 없었다. 아득을 돌보게 된 이후로는 얼굴도 거의 뵙지 못했지만, 그분마저 돌아가신다면 그에게는 정말 가족이라 말할 수 있는 이가 하나도 남지 않게 된다. 아내도 자식도 없는 그에게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아득 뿐이었다. 땅속 깊숙이 박혀 오랜 세월의 풍파에도 도저히 깎이지 않을 것 같은 아득 만이 그의 보호자가 되어 하이너 씨의 마지막을 지켜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힐 때가 많았다.

하이너씨의 하루는 아득의 일과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지만, 대부분이 똑같았다. 주기적인 검진과 닥터 한의 방문 정도를 빼면, 먹이를 주고 우리를 열어주고 배설물 치우기가 전부였다. 아득은 활발한 동물이 아니었다. 산책을 조르는 강아지들과는 한참 달랐다. 하이너씨의 아버지는 개를 무척 좋아했다. 주인에게 보이는 무한한 애정과 가슴이 벅찰 정도의 충성심이 아버지를 감동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놈들의 신이다."

아버지는 개들이 자신을 그들 우주의 절대자로 모시는 태도에서 뿌듯함을 느꼈다. 개들에게 재주를 가르치고 그것이 완벽하게 성공했을 때는 태초의 창조주가 느꼈을 기쁨이 무엇인지 아버지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골든래트리버인 스프링(springen)을 유독 아꼈다. 아직 새끼였던 녀석이 통통 구르는 모습을 보고 지어준 이름이었다. 이름처럼 녀석은 성견이 되어서도 아버지를 보면 어깨까지 덥석 뛰어올라 그를 자주 넘어뜨렸다. 언제나 반듯한 몸가짐을 강조하는 아버지였지만, 스프링이 그를 향해 돌진해도 사양하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스프링은 아버지가 가르치는 재주를 척척 익혔다. 아버지의 그런 모습 때문인지, 하이너씨는 자연스럽게 사육사가 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특별히 개를 좋아하는 것도, 동물들에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니었지만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이너씨의 아버지는 엽총 사냥을 나갈 때면 스프링을 데려갔다. 녀석은 대단히 용맹하지는 않았지만, 조렵견으로서의 사명을 다할 정도는 됐다. 스프링에게 아버지와의 사냥은 놀이의 연장선이었다. 녀석이 물오리 떼를 쫓아 한적한 겨울 강변을 달리는 모습은 전원에 어울리는 목가적인 풍경이었다. 아버지에게는 무엇보다 이상적인 풍경으로 보였을 것이다. 아버지가 물오리를 총으로 겨누면, 스프링은 언제든지 달려 나갈 수 있게 숨을 죽이고 서 있었다. 타앙. 총성이 채 끝나기도 전에 녀석은 아버지가 끊어낸 목숨을 향해 내달렸다. 둘 사이의 호흡은 탁월했다. 파고들 틈이 없었다.

스프링은 어이없이 죽었다. 아버지를 따라간 사냥에서 누군가 숲에 놓아둔 덫에 걸려 죽었다. 앞다리가 걸린 채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차마 두고 볼 수 없었던 아버지가 손수 목숨을 거두어들였다. 단 한발로 충분했다. 타앙. 총성이 울리고 메아리가 숲을 오래도록 휘돌았지만, 녀석은 달리지 않았다. 하이너씨는 스프링을 위해 울지 않았다. 그저 짧은 생이었지만 찬란했으리라 말하고 싶었다. 녀석이 평안 속에서 마지막 호흡을 쉬었기를 바랐다. 사랑하던 주인에게 당한 배신 앞에, 그것은 녀석에 대한 지독한 기만일 뿐이었다. 아버지는 본인의 말대로 녀석의 신이었다. 죽음의 신이었다.

하이너씨가 사육사가 되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반대했다.

"개 한 마리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할 녀석이 무슨."

하이너씨는 동물에게 재주를 가르치고 싶지 않았다. 서커스단의 조련사가 되려고 하는 게 아니었다.

"가르치지 않고 키워내고 싶어요."

하이너씨는 지금에 와서야 그것이 얼마나 오만한 말이었는지 깨달았다. 자신은 아버지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같았다. 그들이 인간보다 열등하기 때문에, 보호받아야 하므로, 혼자서는 야생을 버텨낼 수 없기 때문에.

'키워낸다.'

아버지에게 자신은 다르다고 했던 말이었다. 단어만 바뀌었을 뿐, 아버지의 생각을 고스란히 답습했을 뿐이다. 저도 결국 똑같았습니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말하고 싶었지만, 그가 고향을 떠나오기도 전에 이미 세상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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