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독도 파노라마(9)] 축구장 280개 규모의 분화구 안에 또 다른 분화구...세상에 유례 찾기 힘든 나리분지

  • 정용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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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9-04   |  발행일 2021-09-06 제24면   |  수정 2021-09-06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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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릉도 나리분지 전경. <울릉군 제공>

울릉도에서는 유일하게 평지를 이룬 나리분지. 나리분지는 화산분화구이다. 처음 화산이 터졌을 때는 이곳 분화구도 백두산이나 한라산처럼 물이 고여 있었고, 분화구 역시 지금처럼 크지 않았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분화구 주변의 산들이 무너져 물을 다 덮어버렸고 현재의 평지가 된 것이다. 그리고 다시 약 6천 년 전에 나리분지 북서부에서 한 차례 더 화산이 분출해 알봉과 알봉 분지가 생겨났다. 이중 화산폭발이 된 것이다.

알봉은 나리분지를 주변의 산들이 새 둥지처럼 동그랗게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나리분지 한편에 새알처럼 동그랗게 솟아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알봉 반대쪽엔 다시 나리분지와 같은 평지인 알봉 분지가 있다. 이렇듯 커다란 분화구 안에 또 다른 작은 분화구가 잘 보존이 되어있는 곳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며, 이런 형태의 이중 화산분화구에 사람이 사는 곳은 더욱더 유래를 찾기 힘든 귀한 곳이 나리분지다.

나리분지는 동서 1.5㎞, 남북 2㎞로 면적이 198만㎡에 이른다. 눈 씻고 찾아봐도 평지라고는 없는 울릉도에서 나리분지는 육지의 평야에 버금가는 광활한 들녘인 셈이다. 주변 서쪽 지역 알봉 분지를 포함하면 330여 만㎡에 이른다. 울릉도의 최고봉 성인봉과 형제봉이 주변에 천길 절벽으로 병풍처럼 둘러싼 거대한 암벽들과 화산 분화구에 화산재가 쌓여 생긴 화구원으로 주변 풍광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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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분지와 알봉 일대 전경. A가 나리분지, B가 알봉, C가 알봉분지 <울릉군 제공>

울릉도 개척민들이 130여 년 전(1882년)부터 화산 분화구 중심 주변에 너와집과 투막집을 짓고 이주민들이 처음 정착한 유서 깊은 곳이다. 이곳이 '나리(羅里)'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한자의 의미처럼 '비단처럼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나리꽃이 예나 지금이나 많이 자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개척 당시 나리 분지에도 사람이 많이 거주했었는데 먹을 것이 마땅히 없던 시절에 겨울을 지나 봄이 되면 나리의 뿌리를 캐서 5∼6월까지 연명했기 때문에 개척민에게 나리꽃은 아주 소중한 양식이었다. 개척 당시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이곳은 천혜의 요새여서 입구만 잘 지키면 능히 100만 군사도 막을 수 있는 요충지이고 평평한 평지에서는 논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곳이라 조선 고종이 울릉도로 파견한 이규원 검찰 일기에 적혀 있으며 최대 96가구 500여 명이 이곳 나리분지에서 살았다고 전한다. 지금은 16가구 정도 살고 있다.

너와집
나리분지에 있는 너와집. <울릉군 제공>
투막집
나리분지에 있는 투막집. <울릉군 제공>

나리분지는 12월부터 4월까지 이어지는 겨울철이면 3∼4m 이상의 폭설이 자주 내려 국내 최대 다설지(多雪地)로 유명하다. 개척민들은 강설량이 많은 이런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통나무를 이용해 울타리를 세운 귀틀집을 지었다. 지붕에는 너와를 얹거나 억새를 이어서 '너와집' 또는 '투막집'으로 불린다. 눈이 많이 와도 집안으로 눈이 들이지 않고 안에서 모든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벽체에 '우데기'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다른 지역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울릉도만의 특징이 담긴 가옥구조다. 오늘날에는 주택개량사업 등으로 그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현재 너와집 1동과 투막집 4동이 유일하게 남아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로 지정·관리되고 있다. 특히 너와집은 2007년 12월 31일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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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분지에서 성인봉 산기슭 신령수까지 이르는 숲길. <울릉군 제공>

나리분지 일대에는 희귀 멸종 식물과 너도밤나무·섬단풍나무·마가목 등의 울릉도의 다양한 자생식물이 산재해 아름다운 숲을 형성하고 있다. 나리분지에서 성인봉 산기슭까지 이르는 4.5㎞의 아름다운 숲길은 찾는 이들에게 태고의 신비를 잘 간직한 채 자연 그대로 모습을 잘 보여줘 명품 숲길로 통한다. 나리분지 숲 일대는 성인봉 원시림과 함께 산림청이 선정한 보전·연구형 명품 숲 중 하나로 2002년부터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과 시험림으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김이환 〈울릉군 문화관광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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