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천장 뚫은 결혼이주여성 .8] 베트남 출신 도경미씨 2만3천㎡ 규모의 캠벨-샤인머스켓 포도농장 여주인

  • 이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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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2-09 19:10  |  수정 2022-05-27 15:05  |  발행일 2021-12-10
농부, 강사, 주부 1인 3역 "행복해요 남편이 잘해주고, 아이들이 잘 커 줘서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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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경미씨가 자신의 샤인머스켓 농장에서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

"농사일을 해 본적이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힘이 들었어요. 지금은 할 만 한데 일손이 부족해서 너무 바빠요."


베트남 출신의 도경미씨(39)는 상주시 화동면에서 포도 농사를 한다. 화동면은 팔음산 포도로 유명한 고품질 포도 생산지다. 그곳에서 2만3천㎡ 규모의 농장에 캠벨과 샤인머스켓을 재배하는 부농이다. 캠벨은 친환경 농법으로 생산, 한살림에 납품하며 샤인머스켓은 글로벌레이디협동조합을 통해 개별 판매한다.


15년간 포도농사를 하면서 베트남어와 한국어를 가르치는 이중언어 강사이기도 한 그는 베트남과 한국을 오가며 통역 역할도 종종 한다. 그러나 이중언어 강사나 통역보다 포도농장 여주인이라는데 더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도씨는 호치민에서 아버지가 베트남 전통악기를 가르치는 가정에서 자랐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으며 졸업 전에 남편을 만났다. 상주시 화동면 출신의 남편은 제빵기술을 익히기 위해 호치민에 연수생으로 와 있었다.


사촌 언니의 소개로 남편을 만나 몇 개월 간 사귀다가 그의 귀국 일정에 따라 결혼했다. 결혼은 귀국 직전에 전격적으로 진행됐으며, 드라마틱한 면도 있었다. 도씨는 당시에 이탈리아에 산업연수생으로 갈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이탈리아에는 그녀의 큰 아버지가 살고 있었으며 출국을 위해 서류를 준비하는 과정에 남편을 만났던 것. 남편과의 만남은 이탈리아로 향하는 도씨의 인생 여정을 한국으로 돌려 놓았다.


귀국한 남편은 울산시의 한 제과점에 취직했다. 낯선 이국 땅에서의 신혼살림은 사방에 장벽 투성이였다. 말이 안통하니 집밖에 나가는 것 부터 쉽지 않았다. 언어 장벽은 영어 몇 단어와 손짓발짓으로 넘고, 점차 한국어를 익히게 됨에 따라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 보다는 생활패턴과 풍속이 문제였다.


"가장 적응이 어려웠던 것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아침 식사 준비하는 것이었어요. 베트남에서는 아침을 집에서 해먹지 않고 주로 사서 먹거든요. 오전 7시부터 일과가 시작되기 때문에 아침을 집에서 해 먹을 시간이 안돼요. 그래서 출근길에 해결하는데…."


게다가 베트남에 있는 하루 1시간 정도의 낮잠 시간도 없는 등 상이한 생활습관과 예절 등에 적응하는데 힘이 들었다. 남편이 다정다감한 편인데다, 다행히도 마음씨 좋은 이웃 주민들을 만나 낯선 땅이지만 아이를 낳고 기르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울산 생활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남편이 제빵사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돼 고향인 화동으로 돌아왔다. 남편의 고향에는 시아주버니를 비롯해 포도로 부농을 이룬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도씨 부부는 그들로부터 포도재배 방법을 배워 농사를 시작했다.


포도농장이 자리를 잡고 아이들도 자라 시간적 여유가 생기자 배움의 본능이 꿈틀댔다. 2017년 대구사이버대 한국어다문화학과에 입학했다. 부전공으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여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땄다. 대학입학과 동시에 지역의 초등학교에서 이중언어 강사도 시작했다.
농부, 강사, 주부의 3인 역을 해내고 있는 도씨에게 물었다. "지금 자신의 삶이 어떻다고 생각해요?"라고. "저요? 행복해요. 남편이 잘해주고, 아이들이 잘 커 줘서 행복해요."
글·사진=이하수 기자 songa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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