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천장 뚫은 결혼이주여성 .4] 중국 흑룡강성 출신 포항 전태옥씨, 중국어 강사로 결혼이주여성 상담사로 바쁜 나날

  • 김기태
  • |
  • 입력 2021-10-21 19:54  |  수정 2022-05-27 15:04
다문화 가정주부 6명과'글로벌 레이디 협동조합' 설립
조합을 통해 농특산물을 팔아 농민과 다문화가정 도와
"외국인으로서 다르다는 점을 부끄럼없이 받아들이고
장점 살린다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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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30일 포항시 남구 오천읍에 있는 포항시다문화가족교류소통공간 다가온에서 전태옥 이중언어강사를 만났다. 그는 "결혼이주여성들이 다르다는 점이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면, 글로벌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고 조언했다. 김기태기자
초등생 방과 후 중국어 강의
이주여성들 돕는 상담사 활동
글로벌레이디 협동조합 설립
특산물 팔아 다문화가족 지원
중국어 최고급수 자격증 취득
장애아동 위한 봉사 적극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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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옥 이중언어강사가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에 있는 포항시 다문화가족교류·소통공간 다가온에서 수업을 하고 있다. <다가온 제공>
"남편 하나만 보고 한국에 왔지만, 처음엔 문화적 차이로 너무 힘들었어요. 하지만 한국 사회에 빨리 적응하고, 외국인으로서 다르다는 점을 부끄럼없이 받아들이고 장점을 살린다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23년 전 한국 땅을 밟은 한 결혼이주여성이 문화 차이를 극복하고 이제는 한국 학생들의 중국어 강사와 결혼이주여성의 상담사로 당당히 활동하고 있다. 중국에서 경북 포항으로 시집 와 정착한 전태옥(52·이중언어 강사) 씨 얘기다.


중국 흑룡강성 복단강 시에서 2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난 그는 대학 졸업 후 교사와 관공서 직원으로 근무했다. 부족함이 없는 가정 형편에 남부럽지 않은 경력도 쌓았다. 1998년 초등·고등학교 스승의 소개로 남편을 만났다. 남편의 끊임없는 구애로 전 씨는 한국행을 결심했다. 남편 직업도 몰랐고, 시집 온 포항도 생소했다.


한국에 도착한 뒤, 현실의 벽은 너무나도 높았다. 90년대 말 당시만 해도 사회적인 분위기는 '못 사는 나라에서 온 외국인'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더욱이 결혼을 한 지 얼마 안 돼 IMF 사태가 터졌다. 대기업을 다니던 남편도 졸지에 직장을 잃었다.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다. 전 씨는 "이젠 대학생이 된 두 딸과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 길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는 강한 신념으로 힘든 시기를 버텼다"고 했다.


10여 년 간 육아에 전념하며, 한국어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 '내 아이는 내가 길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남편은 매우 가부장적이었다. 육아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도 한국어 공부는 꾸준히 했다. 이 덕분에 억양과 한국어 구사 능력도 좋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딸의 초등학교 담임 선생이 자신을 한국인으로 알 정도였다"며 배시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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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옥 이중언어강사가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에 있는 포항시 다문화가족교류·소통공간 다가온에서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다. <다가온 제공>

사회 활동에도 적극 나섰다. 2011년쯤 기회가 찾아왔다. 포항 다문화가족지원센터 강사 모집 공고에 응모해 선택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지역 초등학교의 '원어민 방과 후 중국어' 강사와 결혼이주여성을 돕는 활동을 시작했다. 경북다문화가족지원센터 강사로도 발탁돼 다문화가정 자녀와 일반 학생·이주여성 등을 대상으로 온라인 중국어 강의를 했다. 


2019년엔 베트남·필리핀 다문화 가정주부 6명과 함께 큰 마음 먹고 '글로벌 레이디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조합을 통해 농특산물을 팔아 농민과 다문화가정을 도울 생각이었다. 지난 1월엔 2.5t의 홍삼 제품을 베트남에 수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는 "조합원들은 그동안 받기만 했던 처지에서 이젠 주는 존재가 되고 싶어 했다. 사회에 환원한다는 마음으로 협동조합을 오픈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역 사회 봉사활동 및 자신의 능력 계발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포항에 소재한 지역 아동 센터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중국 문화 강의를 했다. 특히, 동요를 중국어로 번역해 학생들이 쉽게 중국어를 접하도록 했다. 몇 해 전부터는 장애아동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등 사회복지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 올 초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전문성 있는 강사가 되기 위해 국제 중국어 수준 시험(HSK) 최고급수인 6급 자격증도 취득했다. 관광과 맛집 탐방을 좋아하는 취미를 살린 전문가가 되기 위해 병원코디네이터·관광 통역 안내사· 국외여행 인솔자 자격증도 손에 거머쥐었다. 전문성을 강화하자는 일념으로 한 달에 네 차례씩 포항과 구미를 오가며 관련 지식을 차곡차곡 쌓았다. 전태옥 씨는 "한국에 와서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이웃들이 도움을 주고, 격려도 많이 해줬다. 육아로 사회와 단절됐던 시기도 있었지만 포항 다문화센터를 통해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면서 "결혼이주여성들이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길 바란다. 다르다는 점이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면, 글로벌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길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기태기자 kt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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