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천장 뚫은 결혼이주여성 .10(끝)] 베트남 출신 성주 레티김융씨, "성주보건소 등 통·번역사 활동…소방서·경찰서 업무로 새 도전"

  • 석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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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2-31   |  발행일 2021-12-31 제2면   |  수정 2021-12-31 07:24
"한글 제대로 읽을 수 있느냐"
속상한 말 들을땐 스스로 위로
이젠 컴퓨터 활용도 인정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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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군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통·번역사로 근무중인 레티김융씨.

"베트남에 대한 정보와 의사소통에 도움을 주고 외국인들에게는 불편한 사항이 있으면 편하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린 시절 교사가 꿈이었던 레티김융(34·베트남)씨. 현재 성주군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 통·번역사로 근무하며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레티김융씨는 활기차고 즐거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고3때 자녀들의 학비를 걱정하시는 부모님의 대화를 엿듣게 되면서 처음으로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그는 부모님을 돕겠다는 생각에 대학 진학과 교사의 꿈을 접고 고교 졸업 후 곧바로 돈을 벌기 위해 대만으로 향했다. 당시 그는 중국어를 구사할 수 있어 취업한 회사에서 반장으로 근무하는 등 3년간 타국에서의 직장생활을 순조롭게 이어갔다.

레티김융씨는 "취업 기간이 만료된 후 베트남으로 다시 돌아왔을 땐 타국에서의 생활보다 더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직장을 구할 수가 없었고 대만에 가기 위해 은행에서 빌린 대출금을 모두 갚고 나니 수중에 남은 돈도 얼마 없었다. 다시 돈을 벌기 위해 타국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에 한국으로 향하게 됐다"고 한국과의 인연을 이야기했다.

한국에 온 그는 휴대전화 생산업체를 거쳐서 경북 성주군에 있는 섬유회사로 이직했는데 이젠 여기가 그녀의 제2의 고향이 됐다. 그는 "성주에서의 생활은 마치 고향에 온 듯한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같은 회사에 근무했던 한 남성이 그에게 관심을 보였다. 그가 감기에 걸렸을 땐 약도 사주고 힘들 땐 위로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그 남성이 지금의 남편이 되었으며 두 아이와 시어머니 등 삼대가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며 "항상 뒤에서 응원해 주고 격려해 주는 남편이 너무나 자랑스럽다"며 활짝 웃었다.

올해로 그가 한국에 온 지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는 "한국과 베트남의 문화가 비슷한 점이 많아 한국 생활은 적응이 쉬웠다"고 말했다. 성주군 건강 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통·번역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그는 자신의 일이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하다. 하지만 가끔은 외국인에 대한 그릇된 선입견 등으로 인해 고향 생각이 간절할 때도 있다고. 업무 특성상 다양한 사람을 상대하다 보니 때로는 "한글은 제대로 읽을 수 있느냐, 내 말을 이해할 수 있느냐" "다른 선생님으로 바꿔 달라"는 등의 말을 들을 땐 힘이 든다고.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괜찮아~더 노력해서 더 잘하면 돼"라고 스스로 다그치며 위로하고 있다.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는 성주군 건강가족·다문화가족지원센터 변지호 센터장은 "레티김융씨는 직장 내에서 성실하고 희생정신이 강해 모범이 되고 있다"며 "통·번역 업무는 물론 카드 뉴스 제작·홈페이지 관리 등 컴퓨터 활용능력도 탁월해 팔방미인으로 통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레티김융씨는 "저도 외국인이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을 조금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듯하다. 그래서 작은 일이라도 정성껏 도와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성주군보건소는 물론 성주소방서와 성주경찰서에서도 베트남 통·번역 업무를 진행할 예정이다. 현재 방송통신대 4학년(가정복지학)으로, 졸업 후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도전해 볼 생각이다.

석현철기자 shc@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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