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달구벌 문예대전 대학일반부 최우수상 수상작-안재성 '공존'

  • 최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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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2-08 14:25  |  수정 2021-12-08 15:07  |  발행일 2021-12-08

거리의 불빛이 꺼졌다. 어둠을 삶의 활기로 비추던 사람들의 목소리도 함께 사그라졌다. 지난날 왁자지껄한 일상을 나누던 상가 곳곳은 지금 허술한 목발에만 의지한 채 외로움을 견디고 있다.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무너졌다. 퇴직 후 가족의 안녕을 책임지고자 빚을 내어 열었던 식당은 가족의 빛마저 모두 쓸어 담은 채 휴지통에 버려졌다. 청년의 열정으로 미래를 꿈꾸던 카페는 매서운 바람에 휘말려 산산이 흩어졌다. 막내딸의 등록금을 충당하던 엄마의 분식집도 결국 문을 닫았다.


세무서에 폐업 신고를 하던 날 비어있는 가게에 앉아 한참을 울었다. 슬픔마저 재앙에 녹아버렸는지 목소리는 나지 않고 서늘한 눈물만이 하염없이 흘렀다. 나무인 척 단장한 플라스틱 냅킨꽂이에 아직 냅킨이 수북한데, 삶고 닦아 반짝거리는 수저와 젓가락이 아직 통 안에 가득한데 화구의 불은 꺼지고 사람의 온기는 식어 버렸다. 문을 열고 나가 터덜터덜 골목 한 바퀴 걷는다. 두 집 걸러 한 집꼴로 비어있는 매장이다. 비슷한 처지의 주변 가게들을 보며 위안 삼으려 가슴을 쓸어보지만 그들의 아픔에 더욱 짓눌릴 뿐이다. 살기 위해서라도 희망을 찾아야 한다.


아직 아무것도 정리하지 못했는데, 식탁과 의자를 들어내고 수저통을 비우고 냅킨꽂이도 버려야 하는데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다시 어둠을 맞았다. 주말 저녁이 되면 살아있는 몇몇 가게에 손님이 들어선다. '그래, 저 집이라도 좀 살아야지' 한탄 섞인 한숨에 고개가 무거워지는데 유리창 안으로 하하 호호 웃으며 고기를 굽는 이들이 눈가에 맺힌다. '저들은 무슨 일을 하길래 웃으며 고기를 구울 수 있지?' '저들은 힘들지 않은가?' '야외 활동을 자제해달라고 그렇게 호소하는데 저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 원망과 질투와 부러움과 이질감이 환풍기에 매달려 빙글빙글 돌아간다. 저들의 삶은 희망 없이도 잘 흘러가는 것 같다.


코로나19는 희망이 절실한 자와 절실하지 않은 자를 나누는 경계가 되었다. 누군가는 수억의 빚을 내어 인테리어를 하고 임대료와 직원 임금을 충당하며 아등바등 노력해왔음에도 한순간에 모든 것이 무너지는 고통을 겪고 있다.


다른 누군가는 답답하기는 하지만 정해진 월급이 나오기에 일상을 이어가는 데 큰 무리는 없다. '다른 누군가'는 고통받고 있는 '누군가'의 삶에 크게 관심이 없다. 그저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못하는 자신의 일상이 답답하고 우울할 뿐이다.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말보다 무서운 말은 없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심사보다 잔혹한 마음은 없다. 나도 어렵고 다 같이 어려우니 우선 나부터 살아야겠다는 것보다 싸늘한 행동도 없다.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에 여전히 많은 사람이 방역 수칙을 어기며 유희를 즐긴다. 허술하게 쓴 마스크와 길가의 식음료 섭취, '쉬쉬'하고 방역망을 피해 가며 슬금슬금 진행하는 종교 집회, 방역 담당자들은 매운 땀을 쏟아가며 방역 수칙 준수를 부탁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방역망을 피해 즐기는 유희가 몰래 먹는 과자처럼 더 달콤하게 느껴질 뿐이다. 행정명령의 허점을 이용하여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는 것에 쾌락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재난본부는 4인 이상 집합 금지를 명령했지만 일부 사람들은 단속이 없는 둔치나 야영장을 찾아 삼삼오오 모여 고기를 굽는다. 코로나 확산 우려에 여행 자제를 호소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자유로운 휴가를 떠난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기적인 행동이 코로나19 상황을 악화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악화된 코로나19로 인해 무수한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눈물을 쏟으며 문 닫은 가게의 집기를 정리하고 있는 현실을 인지하고 있을까? 관광지엔 버려진 페트병과 플라스틱 그릇이 인간의 이기를 대변하고 있다. 마음이 아팠다. 서로의 고통을 나누어 가질 수 없어 서글펐다. '너는 너, 나는 나'의 심보가 언제부터 당연하듯 정당화되었는지 알 수 없어 답답했다.


답답한 마음에 걸었던 동네 한 바퀴가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만 더해준 꼴이었다. 이젠 눈물마저 말라버렸다. 터덜터덜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려는데 병에든 토마토 음료와 노란 쪽지 한 장이 걸려있다.


"힘내세요. 저희도 힘낼게요"


작은 쪽지에 작은 문구 하나에 눈물을 쏟았다. 말라버린줄 알았던 눈물이 어디에 모여 있었는지 쉼 없이 흘러나왔다. 토마토 음료병을 들고 있는 손이 어깨와 함께 들썩였다.


한참을 울고 나니 힘이 난다. 말 한마디. 그 말 한마디에 쌓였던 울분이 눈물에 녹아 흘러내렸다. 모든 사람이 나와 다른 건 아니었나 보다. 나와 같이 좌절 속에서 근근이 버티는 이들이 어딘가에 있다는 신호를 받았다. 나와 같은 마음으로 공감하고 응원하는 이들이 가까이 있다는 것에 힘을 얻었다. 그들의 마음 표현 덕분에 난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소소한 음료 한 병과 쪽지 한 장 덕분에, 평범한 이웃의 공감하는 마음 덕분에, 따뜻한 표현 덕분에 오늘도 난 하루를 버텼다. 코로나 재난은 작은 마음과 응원을 나누는 공감 어린 이웃들 덕분에 이겨내고 있다.


고통에 기준은 없다. 상대의 피칠갑보다 자신의 피 한 방울이 더 아픈 법이다. 상대의 고통을 보며 자신을 위안 삼는 것만큼 간사한 것도 없고, 상대의 고통과 비교당하며 자신의 아픔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만큼 외로운 것도 없다.


다만 내가 아픈 만큼 타인의 아픔도 바라볼 수 있는 공감이 필요한 때이다. 나도 아프지만 상대도 아플 거라는 따스한 시선이 피어나길 희망한다. 여기에 약간의 마음 표현과 함께 주저앉아 손잡을 수 있는 용기가 더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비어있는 매장을 보며 비워져 버린 그들의 터전을 볼 줄 아는 마음, 절망하는 사람들을 위해 따뜻한 물 한 잔과 진실한 응원 한마디 전할 수 있는 마음,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며 함께 눈물 흘릴 수 있는 공존의 삶이 절실하다.


서로의 아픔을 알아주고 안아줘야 한다. 답답하더라도 확산 방지를 위해 외출을 삼간다. 보고 싶은 사람이 있더라도 만남을 자제한다. 음식은 가능한 집이나 지정된 장소에 먹는다. 마스크는 꼼꼼히 착용하고 재난본부의 소식에 귀를 기울인다. 잘못된 정보와 여론에 휩쓸리지 않으며 행정명령의 원칙을 지킨다. 나를 위한 길이자 모두를 위한 길이다. 모든 것을 잃고 주저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할 수 있는 길이다. 그들의 희망이 나의 희망이 되어 함께 포근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방역을 위해 땀 흘리는 무수한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상대의 아픔에 공감하며 몸소 방역 수칙을 지키는 이들을 존경한다. 별것 아닌 것 같은 내 작은 행동이 무너져 가는 사람들을 위한 희망의 씨앗이 된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깨달았으면 좋겠다.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사람들 곁에서 함께 힘을 내는 것이 중요한 지금이다. 희망은 누구에게나 절실하고 우리는 서로의 희망을 응원하며 지금을 이겨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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