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인문학술원과 함께하는 [다시 읽는 고전명작]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론'… '철학'하는 삶을 살아라

  • 이재현 경북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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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1-21   |  발행일 2022-01-21 제21면   |  수정 2022-02-19 09:11
BC 399년 아테네 법정서 벌어진 소크라테스의 재판 신빙성 있게 재현
당시 소크라테스 평가 '종교적 이단자' '사회개혁자' 등 갈리는 가운데
억울한 죽음 해명하고 진정한 철학자로서 명성 지키려는 의도 개입
캐묻지 않는 삶은 사람에게 살 가치 없다는 소크라테스의 신조 그려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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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400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 동안 철학자의 전형이라는 빛나는 명성을 가지고 오늘날까지도 계속 사랑받는 소크라테스(기원전 469~399년). 그런데 그가 역사적으로 어떤 인물이었고, 그의 철학 사상이 무엇이었는지 우리가 아직 정확하게 알고 있지 못한 상황이 실상이라고 말한다면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을 것이다. 소위 '소크라테스 문제'라고 불리면서 수많은 학자가 연구하고 논쟁했던 역사적 소크라테스의 실체에 관한 문제의 학술적 해결은 어쩌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는 생전 스스로 어떠한 저작도 남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어떤 학파를 스스로 창설하거나 특정한 교설을 자신의 이름으로 주장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소크라테스'라는 이 인물에 대한 상당량의 증언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이중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자료로 인정받는 전거가 바로 플라톤이 저술한 대화편들이다.

물론 소크라테스의 철학 정신을 충실히 계승하려고 노력했던 플라톤이 그의 작품 속에서 등장시킨 '소크라테스'는 비록 플라톤의 철학적·문학적으로 재해석된 창작물일 가능성이 상당하다. 하지만 역사적 소크라테스에 관한 제한된 이해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소크라테스를 여전히 위대한 철학자의 전형으로 삼는 데에 있어서 플라톤의 업적은 가히 대체 불가하다. 특히 기원전 399년 5월 어느 봄날 아테네 법정에서 벌어졌던 소크라테스에 대한 배심원 재판과 사형판결은 아마도 우리가 확정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역사적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이 재판에 관한 몇몇 묘사 중 가장 신뢰할 만한 것으로 인정받는 것이 바로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론'(이하 '변론'으로 약칭)이다.

플라톤의 초기 작품으로 분류되는 '변론'을 소크라테스 재판에 대한 객관적 사료처럼 취급해서는 곤란하다. 이 작품에서도 플라톤은 자신의 철학적·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해 재판 상황을 마치 소설처럼 재현한다. 그렇지만 플라톤이 이 작품을 집필한 시기가 아마도 소크라테스가 재판받고 사형당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고, 재판과 사형의 이유에 대해 여전히 논란이었던 상황에서 당시 재판을 직접 참관했을 플라톤이 그 재판에 관해 오로지 허구적 상상력만으로 '변론'의 내용을 창작했다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판단된다. 그래서 이 작품을 마치 객관적 사료처럼 여겨서는 안 되겠지만, 방금 말한 이유 등을 고려할 때 이 작품에서 묘사되는 소크라테스를 통해 그의 역사성을 그나마 가장 신빙성 있게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다수의 학자가 인정하고 있다.

플라톤의 '변론'은 당시 재판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유력한 자료이기도 하지만, 역사적 인물로서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삶을 유추해볼 수 있는 소중한 출처다. 그래서 그의 죽음을 최초의 철학적 순교처럼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에 대한 당시의 평가는 무척 다양했던 것 같다. 아테네의 민주정을 반대하고 소수의 엘리트주의를 옹호한 반민주인사로 여겨지는 평가와 함께 민주정 체제에서의 전통적 신관과 윤리관을 대변하고 옹호하다가 정치적 음해로 인해 억울하게 죽은 보수적 설교가의 모습으로 소크라테스가 기억되기도 했다. 혹은 기존의 전통과 윤리를 신랄히 비판하는 사회 개혁적 인물로 소크라테스를 말하는 이가 있었던 반면 소크라테스와 동시대인이었던 유명한 희극작가인 아리스토파네스는 그의 작품 '구름'에서 천하에 둘도 없을 파렴치한 사기꾼 궤변론자이자 종교적 이단자 자연철학자로 소크라테스를 묘사하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평가되는 소크라테스에 대해 '변론'은 그의 억울한 죽음을 해명하고 진정한 철학자로서의 명성을 복권하려는 플라톤의 의도가 강하게 개입된 작품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무죄를 주장하려는 작가의 의도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시각으로 이 작품을 자유롭게 읽을 수도 있는데, 이를 통해 소크라테스의 재판과 죽음에 관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즉 작가 플라톤처럼 소크라테스에 대한 고발의 부당함을 적극적으로 변호하려는 입장을 가질 수 있을 것이고, 당시 아테네 시민의 입장에서 소크라테스라는 인물이 그들의 사회에서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평가해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지금 우리의 입장에 오늘날 시대적 문제의식과 상황을 투영해 독자 나름의 입장에서 소크라테스를 판단해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플라톤의 '변론'이 가진 철학적 의미와 관련해서 한 가지만 언급하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소크라테스의 명언으로 알려진 '너 자신을 알라'란 말은 사실 그가 직접 남긴 말이라고 볼 수 없다. 델포이 신전을 통해 이미 오래전부터 전해져오던 격언으로서 그는 이 말을 신 앞에 겸손해야 할 인간의 근본적 태도로서 이해하고 가슴에 새긴 신념이었다. 오히려 그의 철학적 태도를 잘 보여주는 말은 바로 "캐묻지 않는 삶은 사람에게 살 가치가 없다"일 것이다. '변론'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철학하는 삶을 사는 이유와 목적을 추억한다. 그는 '도시가 믿는 신을 믿지 않았고, 새로운 영적인 것을 도입했으며,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라는 이유로 고발당해 급기야 재판에 세워졌지만, 이 고발 내용에 관한 그의 직접적 반박은 '변론'에서 일부만 차지할 뿐, 대부분의 분량에서는 자신에 관한 아테네 시민들의 오래된 선입견과 편견이 공식적 고발의 배경이자 자신의 철학을 대중이 오해하게 된 원인이라고 판단하고 이를 해명하고 불식시키려고 행한 변론이다. 그런데 목숨이 걸린 재판에서 70세 노인 소크라테스는 배심원들에게 자신의 처지에 대한 동정을 호소하거나 선처를 바라며 변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평소 아고라에서 사람들과 만나 항상 그렇게 하듯 재판정에서도 배심원들을 상대로 '철학한다'. 여기서 '철학한다'의 의미는 그 어떤 확정된 지식을 논증하거나 논설하여 가르치는 행위가 아니라 문답의 방식을 통해 주어진 문제에 관해 합리적으로 캐물어 탐구하는 행위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재판을 받는 상황에서조차 자신을 향한 고발 내용을 문제 삼아 자신이 왜 평생을 바쳐 그토록 '지혜를 사랑하는' 삶, 즉 '철학하는' 삶을 살았는지 배심원들과 함께 캐물어 탐구해 얻은 결론으로 자신에 대한 유무죄 여부를 판단해달라고 요구한다. 이러한 요구와 태도가 배심원들에게 어떻게 보였는지는 유죄와 사형이라는 재판 결과로 드러났지만, 철학자로서 소크라테스가 내세운 자신의 신조인 "캐묻지 않는 삶은 사람에게 살 가치가 없는 것"이란 믿음만큼은 추호의 흔들림 없이 굳게 지켜내는 모습을 플라톤은 그의 '변론'에서 그려내고 있다.

이재현 교수 <경북대 철학과>
공동기획 KNU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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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 교수 (경북대 철학과)

이재현 교수는

고대 그리스철학을 전공했고, 현재 경북대 철학과에 재직 중이다.

박사논문에서 '아포리아(=길 없음)'의 부정적 상황이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전반에서 어떻게 철학적 개념으로 수용되고 사용되는지를 철학 방법론의 관점에서 추적해 연구했다. 이러한 학문적 관심은 현재까지도 유지·발전되면서 고대 그리스철학 전반에서 가지는 아포리아의 철학적 의미와 기능을 변증술과의 관련성 속에서 계속 연구하고 있으며, 이것과 연관해서 소크라테스 대화술의 고전적 전형과 이것의 현대적 해석 및 실천 등에 관해서도 연구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는 '철학실천'과 연계되면서 현재 경북대 철학과 4단계 BK21사업 '갈등 해결 철학 전문인력 양성 교육연구팀' 참여교수, 경북대 일반대학원 인문카운슬링학과 겸무교수, 그리고 인문학술원 산하 인문카운슬링센터 부센터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또 인문학 대중화 사업에도 관심이 있어서 2014년 9월에 창립한 대구경북인문학협동조합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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