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경찰, 이제는 역사 속으로…의경 출신들 "아쉬움 크다"

  • 박준상,정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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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16 14:07  |  수정 2023-05-17 21:22  |  발행일 2023-05-16
의경 출신 30대 직장인 3명의 기억과 소회
만화가 기안84가 그린 '노병가'와 대동소이
일반적인 국방의 의무 아닌 지원제로 선택권
가시적 치안감소나 경찰 인력부족은 아쉬움
전문가 "의경폐지 인한 인력문제는 과학기술로 채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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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북부서 방순대에서 의경으로 복무한 영남일보 박준상 기자. 복무 당시 화생방 훈련의 일환으로 방독면 착용을 시도하고 있다.
"나 태어나 이 강산에 의경이 되어/꽃 피고 눈 내리기 어언 24개월/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데모 막다 돌 맞아서 병가가면 그만이지/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방석복(防石服)에 실려간 ×같은 의경생활"

의무경찰들이 지방경찰청 단위의 지휘검열 훈련 때 부르는 '짜박가(歌)'다. '늙은 군인의 노래'를 개사한 것으로 전·의경 사이에서 구전됐다. 짜박은 경찰을 얕잡아 부르는 '짜바리'와 크게 일이 복잡해지거나 잘못됐다는 속어인 '박터진다'의 앞글자를 따와, 지휘검열을 짜박이라고 불렀다. 구전이다 보니 지역이나 부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2010년대 중반까지는 대부분의 의경이 이 짜박가를 훈련 중 불렀다. 정확히는 악을 지르며 이 짜박가를 내뱉었다.

그런 의무경찰이 17일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이날은 의무경찰 마지막 기수가 전역하는 날이다.

1982년 전투경찰대 설치법 개정으로 기존 전투경찰이 작전전경과 의무경찰로 분리되며 탄생했다. 2013년 전경이 폐지되며 전투경찰이 수행하던 임무도 모두 의경에게 넘어왔다. 의경과 전경은 국방의 의무를 '전환복무'로 수행한다. 전경은 육군 입대 자원 중 차출되는 반면 의경은 자원해서 논산훈련소에 입소,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경찰병력으로 주어진 임무에 따라 복무한다. 의무경찰대는 크게 방범순찰대와 기동중대로 나눠진다. 그러나 두 의무경찰대가 하는 일은 사실상 동일하다. 이들은 평시에는 방범과 교통 근무를 하고 수색·행사 및 집회 관리 등 상황에도 투입된다. 각 중대의 일정은 지방경찰청에서 내려오는 '경력표'와 일선 경찰서의 사정에 따라 정해진다.

이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의경에 대한 기억과 소회를 3명의 의경 출신 직장인들에게 들어봤다. 현재 경기북부경찰청 포천경찰서에서 근무하고 있는 정주호 경장(경기 포천 33·서울지방경찰청 금천경찰서 방범순찰대 복무), 영남일보 기자로 일하고 있는 박준상씨(대구 북구 32·대구지방경찰청 북부경찰서 방범순찰대 복무), 외국계 물류회사에서 일하는 주현기씨(대구 달서구 30·대구지방경찰청 북부경찰서 방범순찰대 복무) 등은 지원동기, 추억은 달랐지만,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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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금천서 방순대에서 의경으로 복무한 정주호씨. 현재는 경기도에서 경찰관으로 일하고 있다. 정주호씨 제공
의경이 지원한 이유는
정=
어릴 적부터 경찰관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시험공고 등을 자주 봤는데, 전·의경 출신들만 응시할 수 있는 '전·의경 경채'라는 것이 있더라. 의경 출신을 우대하는 혜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지원했다.
박=친구가 의무경찰은 외출외박도 많고 육군에 비해 덜 힘들다고 해서 함께 지원했다. 또 지역연고를 최대한 반영해준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논산 입소 날짜를 받고 나서 의경 기동중대 출신 만화가 기안84가 그린 '노병가'를 보봤다. 노병가에서 보여준 의경의 생활에는 구타와 괴롭힘이 난무했다. '이거 못 간다고, 안 간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생각하고 후회도 했다. 결론만 말하면 후회하지 않았다. 외출외박도 많았고 구타는 당하지 않았다. 연고도 잘 반영됐다.
주=경찰행정학과에 재학 중이었고 전역 후 경찰관을 꿈꿨다. 의무경찰은 경찰실무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복무제도였기에 지원했다.

◆의경 복무 당시 보직은
박=
영상특기병을 지원했으나 당시 TO가 없어 일반병으로 발령났다. 보통 의경처럼 순찰 다니다 소대무전병을 거쳐 중대무전병을 맡았다. 의경은 육군처럼 주특기 개념으로 무전병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고참이 되면 '전령'인 무전병 역할을 한다.
주=복무 중 1종 대형 운전면허를 취득할 기회를 얻었다. 그 덕에 일반 의경에서 운전병과로 변경돼 밤늦게 또는 이른 새벽에 근무를 하지 않고 부대 내에서 장비관리 업무도 겸했다. 나중에는 방범순찰대장 지휘차 운전병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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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북부서 방순대에서 의경으로 복무한 주현기씨. 현재는 외국계 물류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복무 당시 촬영했던 사진.  주현기씨 제공
당시에 기억나는 일화가 있다면
정=
2010년 서울에서 열린 'G20' 행사가 기억에 남는다. 방범순찰대에 있다가 경비교통과장 운전병으로 차출됐다. 그 당시는 정말 힘들게 근무했다. 힘들었던 만큼 전역 후 가장 기억에 많이 남았다. 군경합동 훈련 및 각종 장비 등을 배우는 등 돌이켜보니 재미있었던 기억도 많다.
박=복무했을 당시 각종 공모전 등 동영상콘텐츠 즉 'UCC' 열풍이 불었다. 정부에서, 경찰청에서, 지방경찰청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래서 영상 촬영과 편집도 많이 했다. 덕분에 심야순찰근무에서 자주 열외 됐다. 또 한 번은 부대에 큰 괴롭힘 사건이 발견돼 부대 해체 바로 직전 단계인 '특별관리부대'로 지정됐다. 한 달 내내 강도 높은 체력훈련을 받았다. 지방경찰청 측에서는 "특별관리부대가 되면 어떻게 되는지 영상으로 남기라"는 지시를 했고 그 지시를 충실히 수행했다. 다른 부대원이 훈련을 받는 동안 영상을 촬영했다. 물론 훈련에서 아예 열외 되지는 않았다. 복무 당시에는 '영상촬영과 편집을 배우길 잘했다'고 자주 생각했다.
주=이경(육군의 이등병)일 때 전남도청 앞에 신고된 농민집회 안전관리 지원근무를 나간 적이 있다. 방석복을 입고 방패를 장비한 상태로 도청에서 집회참가자와 마주했다. 멀리서 각종 농산물이 날아들었다. 한겨울이라 농산물들은 딱딱하게 얼어있었고, 그 중 꽁꽁 언 양파가 날아와 머리에 맞았다. 경찰병력들은 방패를 든 채 격렬하고 흥분된 집회참가자들과 대치했다. 장비를 분실하는 일은 큰 잘못이었기 때문에 언 양파를 맞은 머리보다 몸싸움 중 방패를 놓칠까봐 걱정됐다. 방패를 놓쳐 분실한다면 행정적 처분도 있지만 당시에는 선임들의 '꾸지람'이 더 무서웠다.

◆전역 후 의경 복무가 도움이 됐던 적은
정=
전역 후 지난 2019년 시험에 합격하고 경찰관이 됐다. 비록 전의경 경채로 합격한 건 아니지만, 경찰관이 된 후 의경으로 근무한 덕분에 도움이 되는 요소가 많다. 근무를 하다 보면 무전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의경 복무 당시 무전 용어를 외워둔 덕분에 조금 더 편하게 익히고 사용하고 있다.
박=흔히 말하는 '군번 줄 잘 탄' 사람이라서 육군의 상병에 해당하는 상경이 됐을 때 부대 전체에 선임이 4명 밖에 없었다. 이른 시기에 리더가 돼 부대원들을 통솔하며 리더십을 기를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 또 사회부 기자로 일 할 때 경찰의 업무나 조직구조를 어느 정도 아는 상태니 수월하게 업무파악을 할 수 있었다.

의경 폐지에 대한 생각은
정=
추억이 있던 의경이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폐지되는 것이 아쉽다. 또 경찰의 다양한 업무를 지원해주던 의경이 사라지면 그 후 빈자리를 어떤 식으로 채워나갈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박=의경도 어쨌든 경찰이다. 그 역할이 사회질서유지인데, 의경은 존재만으로도 치안과 교통 등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의경은 '움직이는 셉티드(CPTED·환경 설계를 통한 범죄 예방)' 요소다. 당시엔 가시적 치안이라는 말을 썼던 것 같은데, 차량이 신호를 무시하거나 행인이 쓰레기를 버리려고 마음먹었더라도 경찰이 보이면 멈출 것이다. 의경이 줄어드는 것은 이런 가시적 치안에 큰 영향을 준다. 결국 인력문제이지만, 이 부분에서 아쉬움을 느낀다.
주=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데 의경은 하나의 선택권이었다. 징병제를 택한 국가에서 이런 선택지마저 줄어든 것이 아닌가 싶다.

2017년 7월 의무경찰 단계적 감축 및 경찰인력 증원방안을 내며 의경이 함께 줄어들었다. 의경을 폐지하며 이를 대체할 경찰공무원을 증원해 공공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의도였다. 이에 따라 의경은 2018년 1만9천495명에서 지난해 1천45명으로 줄었다. 반면 의경이 하던 업무를 대체할 경찰공무원이 의경인력만큼 늘지 않았다.

박동균 대구자치경찰위원회 사무국장 겸 상임위원은 "경찰청은 의경이 없어지면서 발생할 수 있는 일부의 치안공백은 AI나 드론 등 기술로 과학치안으로 보충할 계획이다"며 "대구자치경찰위원회도 치안에 첨단기술을 도입해 '인력치안'이 아닌 최첨단 기술 치안질서 확립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가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일반공무원을 줄이고 경찰·소방 등 위기관리 공무원을 증원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입장도 밝혔다.

박준상기자 junsang@yeongnam.com
정지윤기자 yooni@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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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상 기자

디지털뉴스부 박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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