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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 지음/ 시인의 일요일/ 176쪽/1만2천원 |
'모두가 떠나 버린 술잔은 이미 녹이 슬었고/ 왁자지껄한 구름 속에서 더 이상 비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 리고 우리는// 아무도,/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아도/ 견딜 수 있게 되었다' (서유 시인 '가뭄' 중에서)
서유 시인의 시집 '부당당 부당시'가 출간됐다. 시인은 시로 등단 전 신춘문예를 통해 소설가로 등단한 작가다. 마치 단편소설의 한 대목처럼 느껴지는 시들을 마주하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일까. '부당당 부당시'라는 제목의 느낌이 그러하듯 이번 시집에 실린 시들의 분위기는 때로는 어둡고, 때로는 난해하다. 익숙하고 일반화된 무언가에 대해 저항하는 느낌이다.
시집은 5부로 나눠져 있는데, 1부의 제목은 '쓸모없는 것들이 태어나서 이렇게 쌓이고 있으니'. '원시인' '온천천' '쾨니히스베르크 안경점' '맙소사, 매카시' '모던하우스' 등을 제목으로 한 시들이 실려 있다. 다소 까칠한 시집의 도입부가 처음에는 당황스럽게도 느껴진다. 시는 우리를 둘러싼 관습이나 품위 등을 한 겹 덜어낸 세상을 내보이는 것 같다. 그 세상은 부당하기도, 불쾌하기도 하다. 5부에는 '부당시'라는 제목의 연작이 여러 편 나온다.
신상조 문학평론가는 '제니퍼, 나는 제니퍼가 아닙니다'라는 제목의 해설에서 "시 '가뭄'의 화자에서 보듯 '부당당 부당시'에서 도드라지는 건 시인의 작가의식"이라고 했다. 이어 "결과적으로 '부당시'에서의 부당함은 '제니퍼'라는 이름을 강요하는 세상의 부당함을 드러낸다. 앞서의 호명이 자본주의적 타자가 강제하는 이름이라면, 후자의 호명은 제니퍼가 아닌 주체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이름들이다…부디 거울에 비친 당신이 제니퍼가 아니길 바란다"고 말했다.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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