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손흥민과 클린스만

  • 이효설
  • |
  • 입력 2024-02-14 06:57  |  수정 2024-02-14 06:57  |  발행일 2024-02-14 제26면
64년만의 아시안컵 우승불발
스타선수 의존으로 충격 완패
손흥민 "정말 죄송하다" 사죄
클린스만은 사퇴 여론 모르쇠
사과할 줄 아는 리더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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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설 체육팀장

64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 도전이 무산됐다. 위르겐 클린스만호가 이끈 한국 축구는 준결승에서 요르단에 0-2로 완패했다. '모든 면에서 졌다'는 표현이 틀리지 않았다. 87위 요르단의 유효슈팅은 '7', 한국은 '0'. 전례 없는 졸전이었다. 변변한 득점 기회 한번 잡지 못했다. 한 팬은 "내가 2-0을 거꾸로 봤나 싶어 몇 번이나 눈을 비볐다"고 혀를 내둘렀다.

이번 아시안컵은 손흥민을 비롯한 '월클'의 조합인 만큼 기대가 컸다. 이강인, 김민재, 황희찬. 그 이름만으로도 어느 때보다 든든했다. 하지만 사우디와의 16강전과 호주 8강전을 돌이켜보면 후반 46분 이후에만 4골이 터졌다. 연장혈투를 거듭하며 운 좋게 4강에 진출하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었다.

팬들은 허탈했지만 손흥민의 마지막 인터뷰를 기다렸다. 그가 처음으로 꺼낸 말은 "너무 죄송하다"였다. 마지막 말도 "정말 죄송하다"였다. 한국 축구팬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고개를 들지 못했다. "팀을 위해 희생해준 동료들이 고맙다. 내가 많이 부족했다. 나를 질책하기 바란다."

패배했지만, 손흥민은 남의 탓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실패의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으니 자신을 나무랄 것을 부탁했다. 그는 아시안컵에서 여섯 경기 600분을 뛰었다. 카타르 대회 통틀어 출전시간 1위. 그러면서 "나라를 위해서 뛰는데 힘들다는 건 핑계"라고 했다. 다른 선수에게 비난이 쏟아지자 "축구선수도 인간이다. 선수들을 흔들지 말고 보호해달라"고 간청했다.

로커룸 리더십도 회자된다. 그는 16강전을 앞두고 "실수해도 동료들이 있다. 그것만 믿고 나가자"고 맏형처럼 선수들을 토닥였다. 한 일본 선수는 "우리에겐 손흥민 같은 주장이 없었다"고 한탄했다. 경기 후엔 패배한 선수들을 찾아 안아줬다.

하지만 클린스만 한국 대표팀 감독은 달랐다. 우승을 호언장담하고 대회 내내 스타 선수들에만 의존했다. 경기 중 변수에 대해서는 방관으로 일관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경기 내내 특정 선수들만 죽어라 뛰게 했다. 멀쩡한 컨디션의 선수를 외면하고 굳이 경기력 난조의 선수를 투입했다.

클린스만의 말은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패배의 책임을 묻자, 결과에 책임지겠다고 해놓고 분석과 발전을 하겠다고 답했다.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회피성 발언으로 들린다. 사과하고 눈물을 글썽이는 선수들과는 달리 시종일관 환한 미소로 나타나 '공감력'에서도 완패했다. 자신에 대한 사퇴 여론에 대해서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즉답했다. 아시안컵 4강은 실패한 것이 아니라는 사족도 달았다. 부임 초기부터 잦은 외유로 '비대면' 감독이란 비난을 사더니 이번엔 선수단과 입국한 지 이틀 만에 미국 집으로 출국해 맹비난을 얻고 있다. 이런 사람을 누가 리더라고 믿고 따르겠는가.

손흥민과 클린스만을 보면서 리더의 역할에 대해 생각했다. 리더의 자리는 이름값으로 대체되지 않는다. 성공보다 실패했을 때 그 진면목이 나온다. 진짜 리더는 잘못을 했을 때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두 사람을 보며 배웠다. 경기장 밖에서는 지금 리더가 되겠다는 무수한 무리들이 앞을 다투고 있다. 우리는 과연, 그 속에서 진짜를 골라낼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 같다.

이효설 체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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