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이후 대구는 서비스업 중심으로 경제 구조가 재편되면서 지역 청년들은 비정규직 등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몰리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섬유산업은 쇠퇴했고, 그것은 곧바로 대구경제에 큰 충격파를 던졌다. 지역 경제는 시나브로 쇠락의 길로 빠져들어갔다. 이 때문에 지금의 대구 청년은 그 부모세대와는 전혀 다른 현실 속에 살고 있다. 무엇보다 비교적 안정된 제조업 일자리가 많이 쪼그라들었다. 도소매·숙박 등 서비스업 중심의 산업구조는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 환경을 불러왔다. 자산 형성 기회는 그만큼 줄었다.
다행히 현재 섬유패션산업 르네상스 프로젝트와 대구 5대 미래 신산업 추진 등으로 경제부흥용 인프라가 깔리고 있지만, 한동안 대구청년은 시름을 쉽게 내려놓기 힘든 상황이다. 이에 영남일보는 기획 '끊어진 자산 증식 다리'를 통해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의 자산 격차를 조명하고, 청년 세대가 처한 현실과 극복 방안을 모색해 본다.
섬유업 호황기 관통 부모세대
경제발전 이끌며 재산도 축적
대구 서비스업 중심으로 재편
자녀들 불안정한 직종 내몰려
자산 형성 밑그림조차 못 그려
◆부모 세대
40여년 전, 대구 달서구 장기동엔 한 섬유직물 공장이 있었다. 당시 이 공장을 경영하던 박모(70)씨는 스판과 면직물을 제조, 유럽으로 수출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직원 수는 50명, 연간 매출은 억 단위였다. "그때는 정말 좋았죠. 공장에선 온 종일 기계가 쉴새없이 돌아가고, 직원들은 웃음이 넘쳤어요."
박씨는 아득한 그 시절을 회상하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사업으로 일군 성공은 박씨 개인 삶을 풍요롭게 했다. 당시 부의 상징인 그랜저와 에쿠스를 몰았다. 남편 사업이 잘되면서 부인도 백화점에서 고급 브랜드 의류만 사 입었다. 박씨는 달서구에 175㎡(53평)짜리 아파트를 샀다. 임대하던 공장도 새로 지었다. 새 공장엔 경리 직원만 4명이나 뒀다.
박씨가 신나게 섬유업을 하고 있을때 대구는 '섬유도시'로 불릴 만큼 섬유업이 활황이었다. 1970~1980년대 대구지역 섬유업 종사자는 30만~40만명에 달했다. 대구 전체 제조업 생산액 중 섬유 비중이 절반에 육박했다. 제일모직과 코오롱의 전신인 한국나일론이 대구에 공장을 설립했다. 1987년, 섬유산업은 단일 품목으론 처음으로 100억달러 수출 목표를 달성했다.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효자 산업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이 무렵, 초·중·고교 교과서에선 대구를 섬유도시로 소개할 정도로 그 위세가 대단했다.
당시 섬유업계 노동자 월평균 임금은 30만~40만원. 야근·특근, 주말 근무가 잦은 탓에 일반 제조업 노동자(평균 35만원)보다 월급이 많았다. 근로자들은 몸이 피곤해도 돈을 생각하면 견딜만했다고 박씨는 전했다.
영원할 것 같은 대구 섬유산업은 1990년 초반부터 내리막 길을 걷기 시작했다. 값싼 노동력을 기반으로 한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의 저가 원단 판매가 본격화되면서 경쟁력을 잃어갔다. 섬유 비중이 높았던 대구 경제도 휘청거렸다. 박씨 공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2000년 초, 급격히 불어난 대출이자 부담과 쌓여가는 원단 재고를 극복하지 못해 결국 공장 문을 닫았다. "하루아침에 기계가 멈추고, 쌓여가는 원단 재고를 보며 눈앞이 캄캄했어요." 박씨는 당시 아픔을 담담히 떠올렸다.
◆자식 세대
2024년 12월. 대구서 맞벌이를 하는 최민호(38)씨와 아내 김지현(36)씨는 부모 세대와는 달리 아등바등 살고 있다. 성서산단에 입주한 한 중소기업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는 남편 최씨는 월급 300만원을 벌고, 아내는 집 앞 인근 디저트 카페에서 시간제(월 120만원)로 일한다.
두 명의 자녀를 둔 박씨 부부는 매달 120만원 가량의 각종 대출금과 생활비를 부담하고 있다. 저축은커녕 생활비조차 빠듯하단다. "부모님은 열심히 일하면 집도 사고 자산을 늘릴 수 있다고 하셨지만, 저희는 맞벌이를 해도 생활비를 감당하기 버겁다. 부모님은 우리가 돈 관리를 제대로 못 한다고 자주 질타하신다. 저는 그 말이 더 속상합니다." 최씨는 답답한 듯 한숨만 계속 내쉬었다.
현재 최씨 부부는 달서구의 한 아파트에 전세(2억8천만원)로 살고 있다. 빈손으로 살림을 시작해 전세금도 겨우 모았다. 하지만 최근 집주인이 전세금 인상을 요구하면서 생계부담은 더 커졌다. 아이들 학원비와 생활비를 줄이는 것도 쉽지 않다. 매달 이어지는 생활비 압박을 해결할 뾰족한 방법도 아직 찾지 못했다. "아이들만큼은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고 싶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아요. 요즘 시대 맞벌이를 해도 집을 장만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죠." 아내 김씨는 모기같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섬유산업 쇠퇴 후 대구의 경제는 서비스업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됐다. 제조업 중심의 안정된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대구 청년들은 상대적으로 불안정한 직종에 내몰리고 있는 것. 부모 세대가 경험했던 경제적 번영은 청년 세대에게 점점 희미해지기만 한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대구의 청년 고용률은 2000년 이후 한 번도 60%를 넘지 못했다. 그야말로 '마의 60%대'다. 전국 평균을 넘어선 적도 없다. 특히 금융위기(2008년)와 코로나19 팬데믹(2020년)이 있던 해에는 고용률이 56%까지 곤두박질쳤다.
대구 청년들의 교육수준은 높아도 경제적 성취로 이어지진 못하는 형국이다. 지난해말 기준, 대구 청년 중 대졸 이상 학력자는 전체의 61.0%다. 하지만 졸업 후 취업으로 바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사회에 나가 마주하는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임금 수준도 문제다. 대구의 상용근로자 월평균 임금은 334만원으로 전국 평균(384만원)보다 50만원 낮았다. 8개 특·광역시 중 최하위권이다. 특히 대구 청년 취업자 중 월 300만원 이상 임금을 받는 비율은 34.4%에 불과하다. 열악한 임금사정은 청년들의 사기를 꺾는다. 장기적인 자산 형성 계획의 밑그림조차 그리기 힘든 상황이다.
대구의 가구당 순자산은 3억4천만원. 이 역시 전국 평균(4억4천만원)에 한참 못미친다. 과거 부모 세대는 자주 말한다. "열심히 일만 하면 집도 사고 차도 살 수 있다고." 하지만 더 이상 이 말은 통용되기 어려울 것 같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2000년 출생)는 대한민국 역사상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로, 불안정한 고용 구조와 높은 주거비, 자산 형성 기회 부족이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다"며 "청년 세대가 안정적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비정규직 남용을 줄이고 고용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부모 세대는 생존을 위해 강한 본능으로 일을 해왔지만, 자식 세대는 부모의 극진한 보호 아래 성장하며 삶에 대한 맷집이 약해진 측면도 있다"며 "청년들이 자립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이지영기자 4to11@yeongnam.com
최시웅기자 jet123@yeongnam.com
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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