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설정한 관세 협상 시한(8월 1일)을 앞두고 한미 양국이 오는 25일 '2+2 통상 협의'를 갖는다. 정부에선 구윤철 경제부총리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미국 측은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과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협상 대표로 나선다. 고위급 협의체를 통해 관세 협상의 막바지 조율에 들어가는 모양새다.
정부는 다음 달 1일 관세 발효 전 협상 타결에 힘을 모으지만, 전망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미국의 전방위 압박은 그 어느 때보다 거세다. 관세 이외에 농축산물 시장 개방, 온라인 플랫폼 규제 완화 등 민감한 사안을 요구한다. 여기다 트럼프는 방위비를 100억 달러로 올리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정부는 일단 주력산업인 차, 철강 품목에 예고된 25% 고율 관세를 끌어내리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쉽지 않은 형국이다. 협상 카드인 쇠고기·쌀·사과 수입 확대 방안은 국내 농축산 단체의 반발을 설득하는 것이 관건이다.
트럼프 시대에 10% 이상의 관세율은 피할 수 없다. 정부는 내심 통상 협상과 안보 현안을 한꺼번에 협의하는 '패키지 딜'을 목표로 한다. 핵심은 상호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을 어떻게 설득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럴러면 미국과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 이재명 정부의 '친중' 인식을 불식시키는 노력이 앞서야 한다, 늦춰지는 양국 정상회담이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고 본다. 정치권도 실속없이 미국을 자극하는 언행을 삼가할 필요가 있다. 여당의 중국 전승절 참석 운운은 부적절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이를 바탕으로 투자 확대 등 협력 강화가 양국 안보·경제에 상호 이익이라는 점을 설득시키는데 대미 협상력의 방점을 찍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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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APEC, 의미 있는 국가전략행사로 위상 재설정하라
경주APEC 정상회의 준비위원장인 김민석 국무총리가 최근 인터뷰에서 "APEC은 단순한 하나의 행사가 아니라면서 국가전략 차원에서 의미 있는 행사로 설정하고 국민적 참여를 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충분히 공감한다. APEC이 정상들의 기념사진이 화제가 되는 단순한 국제외교 이벤트에 머물지 않고, 우리나라의 장단기 국가전략을 구현하는 외교현장으로서의 위상을 제고하려면 지금의 준비 방식과 목표는 크게 수정돼야 한다.
APEC을 통해 실현 가능한 국가전략이란 무엇인가. 크게 세 가지다. △한국 외교와 국제정치 질서의 재정립 △한반도 문제 논의의 진전 △성장 회복의 동력 확보 등이다. APEC이 한국 외교와 국제정치질서 양면에서 획을 긋는 새로운 길을 여는 전기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외교적 성과가 될 것이다. 한반도 문제 논의의 진전을 위해서는 '북한의 초청'과 관련해 긍정적인 검토가 있어야 한다. APEC에는 글로벌 기업 CEO도 대거 참석한다. 세계사에 드문 천년 수도 경주 곳곳에 살아 숨 쉬는 문화적 품격과 상상력을 각국 정상과 글로벌 CEO 그리고 세계 언론 매체를 통해 지구촌에 전달된다면 경주와 대한민국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게 될 것이다. 경주와 가까운 울산은 일종의 '세일즈 포인트'다. 울산의 조선산업은 트럼프 대통령의 최고 관심사가 아닌가. 그가 이 곳을 방문한다면 한미 협상의 유의미한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상식을 뛰어넘는 '초격차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 모든 구상의 중심에 '트럼프'와 '시진핑'이 존재한다. 두 사람의 참석 가능성이 크긴 하지만, 여전히 미확정 상태다. 두 정상의 참석 여부가 APEC의 성패를 가른다. 당장 외교적 역량을 집중할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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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하면 시험지 유출, 무너지는 공교육 살릴 방안 없나
안동, 울진 등 경북지역 고교에서 시험지 유출 시도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지난 4일 안동 한 고등학교에서 30대 전직 기간제 교사와 40대 학부모가 함께 시험지를 훔치려다가 경비 시스템에 적발됐다. 앞서 지난 4월엔 울진의 고등학교에서 학생이 학교 교무실에 무단 침입해 시험지를 훔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 뒤늦게 밝혀졌다.
입시에서 수시 모집이 주류가 된 가운데 입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교내 시험 유출 시도 사건이 이어지니 학부모들의 불안은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교사, 학부모가 공모해 시험지를 유출한 안동 사건은 2018년 터진 '서울 숙명여고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숙명여고 교사가 같은 학교 재학생인 자신의 쌍둥이 딸들에게 시험문제를 유출해 충격을 준 사건이다. 시험지 유출 시도 사건이 잇따르자 경북도교육청은 보안 강화 대책 마련에 나섰다. 방범 보안 경비 시스템, 평가관리실 보안 관리 등을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사후약방문식 대처라는 지적이다. 최근 교권이 하락한 상황에서 이런 사건이 교육 현장에 대한 불신을 키운다는 우려도 나온다.
시험지 유출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잊을 만하면 터져서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다. 교육 당국은 보안 강화 등 제도적 허점을 보완하고 학생의 노력이 정당하게 평가받는 교육 환경 조성으로 신뢰 회복에 나서야 한다. 시험지 유출은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다. 이는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성적 지상주의의 민낯을 보여준다. 남을 앞서가야 하는 상대평가 제도에 성적 지상주의가 결합하면서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상식과 윤리를 뭉개버렸다. 사회 전반의 왜곡된 교육관도 바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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