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핫 토픽] 로또 당첨이라는 작별 인사

  • 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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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8-08 07:45  |  발행일 2025-08-08

"로또에 당첨돼 영업 종료합니다."


최근 인천의 한 고깃집이 붙인 짧은 안내문이 온라인에서 잔잔한 파장을 일으켰다. '부럽다'는 반응도 있었고, '진짜일까'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사실을 알고 나자, 모두가 잠시 말을 잃었다. '로또 당첨'이라는 즐거운 작별인사 뒤에는 가게 주인의 아픈 사정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식당 주인은 암 투병 중이었다. 치료와 영업을 병행할 수 없어 가게 문을 닫으면서도, 끝까지 손님들을 먼저 생각했다. 자신을 걱정해줄 손님들의 마음을 헤아려, 거짓말이라도 '행운'을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이 사연을 읽으며 오래전 자주 찾던 떡볶이집 사장님을 떠올렸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주구장창 다닌 작은 분식집이었다. 천 원짜리 한 장이면 커다란 가래떡 몇 개를 듬뿍 담아주던 따뜻한 집이었다. 배가 부르든 고프든 그 떡볶이를 남기는 일은 없었다. 결혼 후 타국에서 임신했을 때도, 가장 생각났던 음식이 그 떡볶이였다.


몇 년 전 오랜만에 그곳을 찾았다. 아주머니는 여전히 나를 기억하고 계셨다. 애들과 함께 간 나를 보고 손을 잡으며 반가워하셨다. 그런데 갑자기 아주머니가 식당을 접는다고 하셨다. 서울에 있는 딸이 더 이상 혼자 고생하지 말라며 자신을 데려가겠다고 했단다. 늘 외로워하던 아주머니였기에 아쉬움보다는 축하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가슴 한쪽이 휑했다. "이제 이 떡볶이를 못 먹는 건가요?"하며 웃었지만, 그때는 몰랐다. 그것이 마지막 인사였다는 것을.


그로부터 다시 몇 해가 지난뒤 우연히 그 동네에 사는 후배를 통해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그날의 이별 뒤엔 서울행도, 행복한 노년도 없었다. 떡볶이집 아주머니는 암 투병 중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고 했다. 후배의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단골 식당은 단순히 음식 먹으러 가는 곳이 아니다. 오랜 친구와의 추억, 남편과의 첫 데이트, 아이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담은 장소다. 나에겐 그 떡볶이집이 그랬다. 그런 기억이 담긴 장소를 지켜준 사장님들에게, 우리는 과연 충분히 고마워했을까.


손님들에게 마지막까지 밝은 모습만을 남기고 떠난 인천의 고깃집 사장님, 그리고 나의 추억 속 떡볶이집 사장님은 닮았다. 자기 삶이 힘든 순간에도 남은 사람들을 먼저 생각했다. 눈물 대신 웃음을 남겼고, 아픔 대신 행운을 전하려 했다.


'로또 당첨'이 진짜가 아니면 어떠한가. 그 따뜻한 마음과 배려는 진짜보다 더 값진 행운이다. 비록 더 이상 만날 수 없어도, 우리는 그들이 나눠준 마음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나의 떡볶이집 사장님도, 그곳이 내게 좋은 기억으로 남기를 바라며 마지막까지 웃어주신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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