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철희 수석논설위원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다. 요즘 국민의힘이 처한 상황 말이다. 여당은 휘파람을 불며 독주하는 데다 3대 특검의 수사망이 조여 오지만, 허구한 날 집안싸움으로 날을 새는 상황이다. 정당 지지도는 사상 최악이다. 지지율 16%대로, 최저치를 잇달아 경신하고 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지만, 국힘은 날개도 없이 추락하는 꼴이다. 대구·경북(TK)의 민심 역시 싸늘하다. 집토끼마저 떠나는 심각한 상황에도 당의 주류는 전혀 개의치 않는 모양새다. 그야말로 소귀에 경 읽기다. 계엄·탄핵에다 정권까지 맥없이 내준, 막다른 길에 내몰린 정당의 절박함은 찾아볼 수 없다.
추락의 기저엔 친윤계가 똬리를 틀고 있다. 총선까지 3년이나 남은 탓인지 당의 쇄신엔 경기(驚氣)를 일으킨다. "당내 갈등을 키우는 방식은 혁신이 아니라 자해"라는 억지 논리를 갖다 대며 안철수·윤희숙 혁신위를 내쳤다. 국민의 눈엔 보여주기 위한 진부한 쇼가 한심하게 보이지만, 그들의 세계에선 진지한 일이다. 봉숭아 학당이 따로 없다.
친윤의 가장 큰 오류는 아스팔트 세력과의 연대다. 그동안 금기시했던 우경화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보수 재건에 두고두고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아스팔트 세력의 집회에서 문제 발언을 한 최고위원을 징계했던 그 당이었다. 퇴행의 극치다. 그 조짐은 벌써 나타난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전한길 수렁'에 빠져 허우적댄다. 이번엔 '친길-반길'로 갈려 난타전이다. 김문수·장동혁 후보는 최근 TK 합동연설회에서 난동을 부린 전 씨를 감싸돈다. 보수 스펙트럼을 넓힌다는 '친길'의 해명은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국힘의 '우향우'는 조여오는 특검 수사망의 공포감에 따른 반사작용이라는 관측도 있다. 황당한 풍경이다.
보수든 진보든 지나침은 경계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수출로 먹고사는 경제 구조에선 정치적 중도 노선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교역국과 불필요한 갈등을 피할 수 있다. 죽창가도, 반중 혐오도 하등의 이익이 되지 않는다. 정당의 목표 또한 궁극적으로 정권 획득이다. 그러려면 민심에 순응해야 한다. 민심의 앵커는 중도 지향이다. 이를 기점으로 보수나 진보를 저울질한다. 그런데도 친윤은 보수 정당의 생존 법칙도 깡그리 무시한 채 당을 막장으로 몰고 간다. 보수는 누란지세의 위기가 오면 성찰과 청산, 쇄신을 통해 다시 살아나곤 했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박근혜 천막당사'다. 2004년 '차떼기 사건' 당시 중진 37명 불출마와 함께 여의도 천막당사에서의 석고대죄를 통해 극적으로 부활했다.
국힘이 과연 보수정당인지 의문이 든다. 이들에겐 보수의 미덕인 책임, 희생이라는 정치 도량(度量)도 없다. 정부·여당을 견제할 결기도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한 줌 권력 유지를 위한 정치공학적 계산에만 눈이 멀어 있다. '국민의 짐'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국힘의 구질구질한 생존은 여당엔 원군(援軍) 역할을 하지만, 나라 전체로 보면 불행한 일이다.
국힘 스스로가 날개를 꺾었으니, 이제 쇄신의 공은 당원과 국민의 손으로 넘어가게 됐다. 쇄신의 발판을 만들려면, 이번 전당대회에서 극우 잠식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는 것이 선결 과제다. 여기다 TK 지역민은 염치없는 당과 의원들의 행태를 꼭 기억한 뒤, 2028년 총선에서 혹독한 채찍을 들어야 한다. 이래야 보수도 살고, TK도 살 수 있을 터이니.
국힘 헤게모니 장악 친윤
기득권유지 계산 눈 멀어
쇄신 않고 우향우로 페달
'국민의 짐' 비아냥 나와
당원과 TK, 채찍 들어야

윤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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