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형의 스포츠와 인문학] A매치 좀 잡아주세요

  • 박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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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8-22 12:18  |  발행일 2025-08-22
지난달 16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5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여자부 대한민국 대 대만 경기. 2 대 0으로 승리하며 우승한 대한민국 대표팀이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6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5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여자부 대한민국 대 대만 경기. 2 대 0으로 승리하며 우승한 대한민국 대표팀이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얼마 전, 미국 여자프로농구 WNBA 선수들은 올스타전에서 모두 같은 문구가 써진 티셔츠를 입고 등장했다. 'Pay us, what you owe us.' '우리에게 빚진 것을 지불하시오'라는 뜻이었다. 이런 시위가 있을 때마다 조건반사적으로 나오는 반응들이 있다. "NBA만큼 돈을 못 버는데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어떻게 연봉을 똑같이 주냐?"라는 비아냥이 그것이다. 그러나 WNBA 선수 노조는 이미 그런 반응을 다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되받아친다. "우리는 남자 선수들과 똑같은 연봉을 달라는 것이 아니다. 똑같은 비율을 달라는 것이다." 실제로 NBA, NFL, NHL 등 미국 주요 프로스포츠의 선수들은 전체 매출의 50% 전후에 해당되는 돈을 자신들의 연봉으로 받고 있다. 반면 WNBA 선수들은 고작 10%도 되지 않는다. 알고 보면 이건 남녀의 문제를 떠나서 그냥 차별인 것이다.


몇 년 전에는 미국 여자축구대표팀 쪽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선수들이 동일 임금 지급을 요구하며 소송을 걸자 조롱이 쏟아졌다. "남자 경기만큼 인기가 없는데, 어떻게 같은 돈을 주냐?" 그러나 통계는 달랐다. 여자 선수들이 경기도 더 많이 치렀고, 입장 수익도 더 높았다. (원래 미국은 '축구'와 '남자축구'가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남자 국대는 별로 인기가 없는 반면, 여자 국대의 인기는 폭발적이다.) 그런데 급료는 남자 선수들이 여자 선수들의 2배가 훨씬 넘는 돈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기나긴 이 소송에서 여자 선수들이 최종 승리했다. 2천400만 달러의 합의금을 받아내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유럽 쪽에서도 비슷한 일은 매우 많았다. 덴마크의 여자축구대표팀은 아예 경기 출전을 거부해버린 사례도 있었다. 평가전 이야기가 아니다. 무려 월드컵 예선전이었다. 아다 헤게르베르그라는 노르웨이 국가대표 선수의 사례도 있다. 그는 여자 발롱드르를 세계 최초로 수상했던 당대 최고의 선수인데 놀랍게도 2019년 프랑스 여자월드컵 출전을 거부했다. 역시 대표팀 내에서의 차별 대우가 문제였다.


지난 7월에 치러진 동아시아컵에서 한국 여자축구대표팀이 우승했다. 너무나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2010년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우리 여자축구대표팀이 U-17 FIFA 월드컵에서 우승한 이후, 무려 15년 만에 보는 우승 장면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2010년 우승 때도 우리 대표팀의 마지막 골(승부차기)은 장슬기가 넣었는데, 이번 대회에서도 마지막 골은 장슬기의 몫이었다는 점이다. 그 외에도 2010년 당시 여고생이었던 이금민 선수가 이번에는 어엿한 대표팀의 주장으로 대회에 임했는데, 그는 우승 세레모니를 지소연과 김혜리 등 대표팀에 평생을 헌신했던 베테랑 선수들에게 양보를 해 훈훈한 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기쁜 세레모니의 중심에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등장해 화제가 되었다. 협회의 높으신 분이었다.


나는 우리 여자축구 선수들이 협회에 대드는 행동을 하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들은 단체로 티셔츠를 입은 적도, 출전을 거부한 적도, 파업을 한 적도, 소송을 건 적도 없었다. 수당은 남자 선수들의 딱 절반이지만, 그리고 이번 대회의 경기도 남자 팀 경기와는 달리 TV로 송출되지 않은 불평등을 겪었지만, 그것 역시 그들은 묵묵히 인고하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들어본 우리 선수들의 불평은 놀랍게도 이런 것이었다. "제발 A매치 좀 잡아주세요." 실제로 해외에서 뛰는 여자 선수들은 A매치 기간에 숙소에 남으면 다른 선수들이 의아해하며 묻는 질문에 곤혹을 느꼈다고 한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잘 사는 나라인데 왜 A매치를 안 하니?" 국제 창피인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기본부터 좀 지켜주십시오. 그런 다음에라야 트로피에 손을 얹으실 때, 위엄이 좀 서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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