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미애 경제팀 선임기자
최근 한 은행 영업점에 들렀을 때 인상 깊은 장면을 목격했다. 5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이 은행 앱으로 카드 발급을 시도하다 쩔쩔매고 있었다. 이 여성은 답답한 마음에 번호표도 뽑지 않고 창구로 향하자, 다른 고객을 응대하던 그 은행원은 잠시 양해를 구하고는 여성에게 앱 사용법을 안내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이처럼 디지털 금융이 낯선 이들에게 은행 점포는 여전히 없어서는 안 될 공간이다. 5대 시중은행의 점포 수가 최근 5년간 1천곳 넘게 사라지는 등 수많은 은행 점포가 문을 닫았다. 이런 상황에서 비대면 거래에 익숙한 젊은층은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 반면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은행 업무를 보기 위해 여전히 은행 영업점을 찾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금융권 노조를 중심으로 '주 4.5일 근무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은행의 효율화 전략에 따라 점포 수가 축소된 데 이어 이제는 '근무일 단축'이라는 새로운 변화가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지난 2002년 금융권이 최초로 주 5일제를 도입했던 만큼, 주 4.5일제 또한 선제적으로 추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노조는 코로나19 시기였던 2022년 금융권 전체가 하루 1시간 영업을 단축했음에도 이익이 늘었던 사례를 근거로 든다. 고객 불편은 거의 없었고, 노동자의 만족과 효율성은 크게 증대됐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유럽에선 이미 이와 비슷한 '주 4일제 근무'를 실험한 금융기관이 있다. 카카오뱅크의 사업모델로 알려진 영국의 인터넷전문은행인 '아톰 은행(Atom Bank)'이 대표적인 사례다. 아톰은행은 2021년 급여 삭감 없는 주 4일제를 도입했다. 주 4일제를 6개월 넘게 시행한 이후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직원 만족도가 높아지고 생산성이 개선되는 등 유의미한 결과가 나왔다는 분석이었다. 입사 지원자 또한 1년 전보다 50% 가까이 늘었고, 고객 서비스 평가도 개선되는 효과도 봤다.
다만 이는 디지털 기반 은행이기에 가능한 결과일 수도 있다. 반면 인터넷은행에 비해 대면서비스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기존 은행의 경우, 근무일 단축이 곧장 고객의 대기 시간 증가와 불편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물론, 노동환경의 변화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그러나 금융업은 그 근간에 '공공성'이라는 특수성이 존재한다. 따라서 노동시간 단축 논의는 직원들의 복지에 대한 고려와 함께 고객 편의성이라는 대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다른 직군에 비해 종사자가 고연봉을 받는 특성상 고객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는 근무시간 단축은 자칫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제도 도입에 앞서 고객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물론, 대면서비스가 없는 공백을 채워줄 대안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주 4.5일제'는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후보 당시 공약이다. 최근 정부는 내년 예산안에 관련 예산 325억원을 배정하며 정부 차원에서 주 4.5일제 도입에 힘을 싣는 모양새다. 금융권에서 논의가 시작된 주 4.5일제의 최종 목표는 '고객'을 소외시킨 채 '덜 일하는 것'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 진정한 '효율'은 노동자와 고객 모두가 만족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최미애 경제팀 선임기자

최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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