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5일 봉화군 석포면 만촌마트 앞 도로에서 열린 집회 현장, 주민들이 '이전은 곧 폐쇄'라며 강력히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황준오 기자

붉은 조끼와 머리띠를 두른 봉화·태백 주민들이 영풍석포제련소 이전 반대 집회에 모여 생존권 사수를 외치고 있다. 황준오 기자
"생존권은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절규가 경북 봉화 석포면의 산골마을을 뒤흔들었다.
지난 25일, 석포면의 좁은 도로는 분노와 절박함으로 가득 찼다. 500여 명의 주민들이 모여 '봉화·태백 생존권 사수를 위한 공동투쟁위원회'를 출범시키며, 영풍석포제련소(이하 제련소) 이전 논의에 정면으로 맞섰다.
주민들은 "학교와 마을을 지켜달라", "생존권 사수"라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투쟁을 선언했다. 주민들의 결집은 단순한 산업 이전 반대가 아니다. 제련소는 지난 반세기 석포와 태백의 공동체를 지탱해온 생명줄이다. 현재 임직원 660여 명, 협력업체와 가족을 합치면 수천 명의 생계가 제련소에 묶여 있다. 연간 1천억원에 달하는 임금과 협력비는 지역 상권과 생활 서비스로 흘러들어 학교, 보육시설, 식당, 마트 등 지역경제를 움직이게 한다.
봉화군 전체 평균 연령은 59세를 넘겼고, 전체 인구의 절반 가량이 65세 이상이다. 이에 반해 석포면의 평균 연령은 51세에 불과하다. 젊은 노동자와 가족의 유입 덕분이다. 석포초등학교는 학생 수가 90명을 넘어 교실을 증설해야 할 정도로 활기를 되찾았다.
정부와 경북도는 "이전 논의는 시작 단계"라며 선을 긋는다. 환경부는 "일자리 대책과 이전 가능성을 종합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경북도는 전담 TF를 구성해 타당성 조사를 진행 중이다.
그러나 지역민의 시선은 싸늘하다. "이미 이전이 기정사실화된 것 아니냐"는 불신이 확산되고, "지역민의 목소리를 배제한 채 추진된다면 좌시하지 않겠다"는 경고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봉화는 지방소멸 최전선에 서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228개 자치단체 조사(2024년 기준)에서 봉화군은 지방소멸 고위험지역 상위 두 번째로 분류됐다. 특히 2024년 10월 기준으로는 경북도 내 22개 지자체 가운데 하위 두 번째에 해당한다.
쟁점은 환경이다. 환경단체는 제련소의 누적된 오염을 문제 삼지만, 주민들은 최근의 개선을 강조한다. 제련소는 지난 2021년 무방류 시스템을 도입해 공정용수를 100% 재활용하고, 삼중 차수벽으로 지하수 유입을 차단했다. 낙동강 하류 중금속 수치가 법적 기준치를 밑도는 점, 인근에서 멸종위기종 수달이 관찰된 사실은 주민들에게 "환경 개선은 현실화되고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진다.
앞날은 험난하다. 정부가 이전 논의를 이어간다면 주민들과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이미 주민단체는 법적 대응과 대규모 집회를 경고했고, 정치권도 첨예하게 갈라졌다. 그러나 이 문제를 단순히 '환경 대 생존권'의 이분법으로 볼 수는 없다. 지역의 존립과 국가적 환경 기준, 두 가치를 어떻게 조율하느냐가 향후 갈등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우리가 지키려는 것은 기업의 이익이 아니라 아이들의 학교와 마을의 불빛"이라는 주민들의 호소는 수사(修辭)가 아니다. 봉화와 태백의 미래를 붙들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지역 현실에 뿌리 둔 해법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이번 사태는 단순한 갈등을 넘어 돌이킬 수 없는 균열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황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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