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업무 시스템을 마비시킨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가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배터리 포비아(phobia·공포)'가 재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이미 우리 일상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전기차, 전동스쿠터, 스마트폰, 노트북의 소비재는 물론 대용량 에너지저장장치(ESS)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에서 쓰인다. 하지만 국정자원 화재 이후 전동스쿠터 등을 중고거래 사이트에 급히 내놓는 사례가 늘고 있다. 아파트·오피스텔에서 스쿠터의 실내 반입을 막는 안내문을 붙이는 곳도 있다.
배터리는 이점이 많지만, 화재에 취약한 게 큰 단점이다. 최근 몇 년 새 전기차의 배터리 화재가 이어지면서 전기차 구매 기피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작년 6월엔 경기도의 한 리튬전지 제조업체에서 발생한 화재로 근로자 23명이 사망하는 대형사고도 터졌다. 실제 지난 2020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배터리로 인한 화재는 총 2천건이 넘었다. 사고 건수도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사회 전반에 배터리 활용이 많아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배터리는 한 번 불이 나면 배터리 내부에서 '열 폭주'가 발생해 연쇄적인 폭발과 화재가 일어난다. 이때 배터리 온도가 1천도까지 치솟아 물로 불을 끄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정자원 화재를 완전히 진압하는데 20시간 넘게 걸린 것도 이런 이유다. 여러 사례에서 보듯, 배터리 화재는 국가 핵심 시스템을 한순간에 마비시키고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는 대형 참사로도 번질 수 있다. 현재는 물론 미래 사회를 움직일 핵심축인 배터리는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분야이지만, 사고 위험이 큰 만큼 배터리 관리·안전 설비 강화 등 국가 차원의 근본 대책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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