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면 사라지는 도로선…‘안전도시 안동’의 민낯

  • 피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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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10-07 13:59  |  수정 2025-10-07 14:05  |  발행일 2025-10-07
야간·우천 시 시인성 전무… 저가 자재·형식 검수 도마 위
지난 6일 밤, 경북 안동지역 주요 도로의 도색이 빗물에 사라져 운전자들이 운잔에 애를 먹었다. 피재윤 기자

지난 6일 밤, 경북 안동지역 주요 도로의 도색이 빗물에 사라져 운전자들이 운잔에 애를 먹었다. 피재윤 기자

지난 6일 비 오는 밤, 안동의 도로는 눈을 감은 듯 깜깜했다. 중앙선도, 차선도, 횡단보도도 빗물에 잠겨 흔적조차 사라졌다. 심지어 불과 한두 달 전 새로 도색한 도로마저 빗속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운전자들은 "새로 칠했는데도 비만 오면 아무것도 안 보인다"며 "감으로 운전하는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시내 주요 간선도로와 외곽 도로 곳곳에서 차선이 번지고 반사 기능이 사라졌다. 국도 34호선, 35호선, 풍산·옥동 일대 도로는 최근 재도색을 마쳤지만, 야간 비가 내리면 선이 완전히 사라진다.


택시기사 김모(57)씨는 "차선을 감으로 맞춘다. 앞차 브레이크등만 보고 달린다"며 "이게 과연 안전도시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로 표시용 페인트에는 빛 반사를 위한 '유리구슬(Glass Bead)'이 일정 비율 이상 섞여야 하지만, 일부 시공업체가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이를 생략하거나 최소화했다는 의구심이 제기된다.


도색 직후엔 멀쩡해 보이지만, 비와 빗빛이 만나면 반사 기능이 사실상 사라진다. 전문가들은 "최저가 낙찰 중심의 관행이 결국 안전을 갉아먹고 있다"고 경고했다.


안동시는 "시공 기준에 맞게 진행됐다"고 해명하지만, 실제 검수는 대부분 대낮에 육안 확인에 그친다. 야간 빗길 시인성 점검은 사실상 없다.


한 교통시설 전문가는 "행정이 낮에만 확인하고 '이상 없음'으로 결재하는 구조"라며 "실제 시민이 체감하는 위험은 행정의 시야 밖에 있다"고 꼬집었다.


안동시는 매년 수억 원의 도색 예산을 투입한다. 그러나 시민이 체감하는 안전은 제자리다. 예산은 집행됐고 절차는 완료됐지만, 빗속 도로는 여전히 '눈먼 길'이다.


시민 최모(46·운전자)는 "매번 사업비만 들고 결과는 똑같다. 보여주기 행정이 따로 없다"고 비판했다.


도로 도색은 단순한 미관이 아니라 생명선이다. 반사 기능이 떨어진 한 줄의 차선이 교통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비·눈·야간에도 식별 가능한 고반사 도료 사용을 의무화하고, 야간 검수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비 오는 밤, 안동의 도로는 여전히 어둡다. '안전도시 안동'을 외치기 전에, 시민의 생명을 지킬 '보이는 차선'부터 확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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