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윤 국립경국대 부총장
"민주주의는 쿠데타나 폭력혁명으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선거로 집권한 지도자가 견제 장치와 제도, 민주주의 규범을 조금씩 잠식할 때 서서히 붕괴된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이 '민주주의는 어떻게 붕괴되는가'에서 내린 진단이다.
민주주의의 위기가 폭력적 사건보다 제도와 규범의 침식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의외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지방자치는 왜 지역발전을 견인하지 못하는가. 지방자치제가 도입된 지 30년이 흘렀지만, 많은 지역이 여전히 동력을 찾지 못한 채 갈등과 소모에 머무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번 학기 '지방자치세미나' 강의에서 던졌던 질문이다. 지방행정을 전공한 필자가 내린 결론은 '지역의 과잉정치화'이다. 이 또한 이외일 수 있다.
지역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치와 행정의 역할이 분명히 나뉘어야 한다. 정치는 주민 담론을 통해 지역의 목표·비전·발전 전략을 정하고, 행정은 그 목표를 가장 효율적이고 전문적으로 실현해야 한다. 정치와 행정의 정상적 분업과 조화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어떤 자치단체장은 임기 내내 행사장만 누비고, 장기 비전과 핵심 정책은 뒷전으로 밀린다. 행정의 판단 기준은 "지역의 미래에 도움이 되느냐"가 아니라 "선거에 도움이 되느냐"로 바뀌어 버린다. 이것이 과잉정치로 표현되는 지방자치의 구조적 병리다.
과잉정치의 문제는 정책이 주민의 담론·숙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정치 권력의 이해관계로 결정되는 데 있다. 지역의 발전 가능성보다 "표가 되느냐"가 우선되면서 정책의 합리성, 효율성이 설 자리를 잃는다. 시장·군수와 이른바 '바깥 아무개' 등 외부 인사가 결합해 정책을 좌우하는 순간, 행정은 전문성의 영역을 상실하고 선거의 도구로 전락한다. 예산은 집행되지만, 발전은 없고 갈등과 상처만 남는 이유이다. 이는 추상적 비판이 아니다. 대구·경북 통합 논의, 안동·예천 통합, 예천 남산공원 유료화 추진 등에서 보듯, 충분한 공론·숙의 없이 일방적 결정과 통보식 행정이 반복되면서 갈등과 혼란을 확대한 사례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과잉정치가 반복되는 구조적 원인은 지방자치를 '단체장을 선거로 뽑는 제도'로만 이해하는 데서 비롯된다. 지방자치는 단체장을 직접 선출하는 것을 넘어 주민이 스스로 지역의 미래를 설계하고, 협력과 숙의를 통해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주민을 대신해 일하는 단체장과 지방의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주민은 지방정치의 대상이 아니라 지방자치의 주체로서 대리인을 올바르게 선택해야 한다. 과잉정치의 프레임 속에서 포장된 인물들이 지방권력을 장악할 때 주민이 과잉정치의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다. 주민이 행복한 공동체를 스스로 만들어 간다는 지방자치의 본질을 잊고, 개인적 이해관계나 감정적 선택에 따라 표를 던진다면 지역의 과잉정치는 반복되고 지역발전은 요원해질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내년도 지방선거는 지역의 과잉정치를 극복하는 계기가 되어야만 한다. 올바른 후보를 선택하는 것은 지역의 과잉정치를 극복하는 첫걸음이며, 주민이 다시 정치의 주체로 서는 출발점이다.
'주민 담론을 정책의 출발점으로 삼는가? 장기 비전과 핵심 전략을 갖추고 있는가? 행정을 전문성과 효율성의 원칙으로 운영하는가?' 올바른 선택으로 과잉정치를 넘자.
담론으로부터 시작하는 지방행정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그것이 지방자치의 본질이며, 지속 가능한 지역발전의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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