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문화의 순환

  • 여송하 박물관 휴르 관장
  • |
  • 입력 2025-12-16 06:00  |  발행일 2025-12-15
여송하 박물관 휴르 관장

여송하 박물관 휴르 관장

박물관의 문턱은 언제부터 이렇게 가벼워졌을까.


국립중앙박물관의 자동문은 숨 쉬듯 자연스럽게 열리고 닫힌다. 연간 6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들어선다. '무료'라는 말은 초대의 언어이지만, 그 초대가 오래될수록 박물관의 숨은 점점 벅차진다.


지난 9일, 나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국립박물관 유료화의 필요성과 서비스 개선 방안' 세미나에 앉아 있었다. 발표와 토론이 오가는 동안, 머릿속에는 한 가지 질문이 맴돌았다. 박물관은 과연 언제까지 아무 대가 없이 열려 있을 수 있을까. 그리고 무료는 정말 공공성의 다른 이름일까.


사립박물관을 운영하는 처지에서 이 질문은 일상에 가깝다. 전시를 준비할 때면 계산보다 망설임이 먼저 찾아온다. 물가는 오르지만, 입장료를 받는 일은 늘 조심스럽다. 국립박물관의 문이 무료로 열려 있는 동안, 사립박물관의 문 앞에서는 발걸음이 쉽게 돌아선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람료는 이윤을 위한 계산이 아니라, 이 공간을 지켜내기 위해 관람객에게 내미는 조심스러운 손짓에 가깝다. "이 시간을 가능하게 하는 일에 함께해 달라"는 부탁 말이다.


그런 눈으로 보면 국립박물관의 무료 정책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무거운 그림자를 남긴다. 사람들은 무료인 공간으로 몰리고, 박물관은 점점 붐비지만 재정은 가벼워진다. 전시물은 조금씩 닳고, 쉼은 줄어들며, 관람은 서두르게 된다. 무료가 만들어낸 아이러니다.


유료화는 문화의 문을 닫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일정한 비용을 지급할 때, 우리는 그 공간에 조금 더 천천히 머문다. 작품 앞에서 발걸음을 늦추고, 설명문을 끝까지 읽는다. 입장권 한 장은 장벽이 아니라, 문화와 맺는 하나의 약속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돈을 받느냐가 아니다. 그 돈이 어디로 흘러가느냐다. 관람료의 수입이 국립과 공립, 사립박물관으로 돌아가 전시장에 조명을 밝히고, 안내 문장을 다듬으며, 문화 소외 계층이 문화를 누릴 수 있도록 돕고, 서로 다른 목소리를 전시할 수 있게 한다면, 유료화는 단순한 수입이 아니라 문화의 순환이 된다. 그렇게 돌아온 몫은 다시 모두에게 돌아가, 더 많은 선택과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박물관은 언제나 공짜로 소비될 공간이 아니라, 오래 남아야 할 장소이다. 문턱을 낮추는 일보다 지켜내는 일이 먼저일지도 모른다. 나는 무료의 익숙함 대신, 오래 함께 숨 쉬는 작은 약속을 선택한다. 그 작은 숨결들이 모여, 박물관은 세대를 이어 숨 쉬는 공간으로 남을 것이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