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츠비 컬렉션’부터 장승업의 마지막까지...간송의 보물 상자 또 열렸다

  •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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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1-28 16:54  |  발행일 2026-01-28
대구간송미술관, 새 상설전 첫날 직접 가보니
신윤복 ‘혜원전신첩’ 등 국보·보물급 40점 공개
청자 매병부터 오원 장승업의 그림까지 ‘한눈에’
27일 대구 수성구 대구간송미술관에서 관람객들이 신윤복의 작품들을 살펴보고 있다. 대구간송미술관은 병오년 새해를 맞아 상설전 전시 작품을 전면 교체하고, 이날부터 회화·도자·서예 등 31건 40점을 새롭게 선보이고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27일 대구 수성구 대구간송미술관에서 관람객들이 신윤복의 작품들을 살펴보고 있다. 대구간송미술관은 병오년 새해를 맞아 상설전 전시 작품을 전면 교체하고, 이날부터 회화·도자·서예 등 31건 40점을 새롭게 선보이고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대구간송미술관이 새롭게 선보이는 상설전 첫날인 27일 오전, 전시실은 31건 40점의 문화유산이 내뿜는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상설전 작품 교체를 위해 지난 19일 이후 일주일여간 휴관한 직후였기에, 이날 미술관 로비는 다소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유치원생들을 비롯한 단체 관람객들의 발걸음으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상서로운 동물의 기운을 받다


새로 정비된 공간에서 문화유산을 만난다는 설렘을 안은 채 전시실 1에 들어서자마자 영남일보 취재진이 마주한 것은 오른쪽 벽면을 가득 채운 '동물'의 기운이었다. 새해를 맞아 불길한 기운을 물리치고 복을 기원하기 위해 호랑이 등 상서로운 동물들을 그린 '세화(歲畫)'들의 다양한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이방운의 봉황 그림이다. 붉은 해가 떠오르는 푸른 바다 위, 복숭아나무에 깃든 봉황의 모습은 태평성대를 알리는 성군(聖君)의 등장을 상징한다.


27일 대구 수성구 대구간송미술관에서 관람객들이 호랑이·봉황·매 등 동물 그림들을 살펴보고 있다. 대구간송미술관은 병오년 새해를 맞아 상설전 전시 작품을 전면 교체하고, 이날부터 회화·도자·서예 등 31건 40점을 새롭게 선보이고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27일 대구 수성구 대구간송미술관에서 관람객들이 호랑이·봉황·매 등 동물 그림들을 살펴보고 있다. 대구간송미술관은 병오년 새해를 맞아 상설전 전시 작품을 전면 교체하고, 이날부터 회화·도자·서예 등 31건 40점을 새롭게 선보이고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이랑 대구간송미술관 책임학예사는 "봉황은 본래 왕실 화원들이 정교한 세필로 그리는 것이 관례였으나, 이 작품은 문인화가인 이방운이 그렸다는 점에서 파격적"이라며 "궁중 회화의 도식적인 틀을 벗어나 문인화 특유의 먹 번짐과 자유로운 필치가 돋보이는 수작"이라고 설명했다.


◆조선 기방의 풍속을 엿보다


조선 후기 풍속화의 정수로 꼽히는 혜원 신윤복의 '혜원전신첩'도 새로운 면모를 드러냈다. 총 30점의 화첩 중 이번에 공개된 작품들은 대구간송미술관에서는 처음 선보이는 작품들이다. 특히 기방의 풍속을 적나라하면서도 격조 있게 그려낸 '주사거배'와 '홍루대주' 앞에서는 관람객들이 발길을 떼지 못했다. 이 학예사는 "혜원의 그림은 마치 사극의 한 장면을 스냅 사진으로 포착한 듯 생생하다. 당시 금기시되던 남녀 간의 애정과 도시의 유흥을 화원급의 정교한 필치로 그려내,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속의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설명했다.


27일 대구간송미술관 전시실 1 중앙부 도자전시 파트에서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분청사기 등 도자기들이 전시 중이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27일 대구간송미술관 전시실 1 중앙부 도자전시 파트에서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분청사기 등 도자기들이 전시 중이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개츠비 컬렉션'과 '여백의 미'를 동시에


도자 전시도 업데이트됐다. 기존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라는 양대 산맥에 자유분방한 미감의 '분청사기'가 추가됐다. 특히 전시장 중앙부에는 일명 '개츠비 컬렉션' 중 하나인 '청자양각연당초문매병'이 당당한 모습으로 자리해 있다. '개츠비 컬렉션'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에 거주하던 영국인 컬렉터 존 개츠비의 청자 컬렉션이다. 상감 기법이 본격화되기 시작할 즈음, 오롯이 비색(翡色)의 아름다움만으로 승부하는 12세기 청자의 절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개츠비 컬렉션 중 하나인 청자양각연당초문매병이 27일 대구간송미술관 전시실 1 중앙부에서 전시 중이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개츠비 컬렉션' 중 하나인 '청자양각연당초문매병'이 27일 대구간송미술관 전시실 1 중앙부에서 전시 중이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조선시대 제례에 사용된 제기인 백자궤가 27일 대구간송미술관 전시실 1에서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조선시대 제례에 사용된 제기인 '백자궤'가 27일 대구간송미술관 전시실 1에서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이어지는 조선 백자 코너에서는 '여백의 미'가 극대화된다. 조선시대 제례에 사용된 제기인 '백자궤'는 순백의 미감을 한껏 품고 있다. 또한 문양을 가득 채워 넣는 청자와 달리 '백자청화동자조어문병' 등 조선의 백자는 표면을 캔버스 삼아 시원한 여백을 남기는 대범함을 보여준다. 이 학예사는 "도자기에 무언가를 채워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내면의 심상을 담아낸 것이야말로 조선 백자의 진정한 멋"이라고 강조했다.


조선 말기 서화의 흐름과 시대상을 읽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들은 전시장 동편 벽면을 채우고 있다. 이 시기 활동한 대표적 문인 서화가인 자하 신위의 서예 작품은 18세기에서 19세기로 넘어가는 서체(書體)의 변화와 청나라 문인들과의 교류를 생생하게 증언한다. 특히 청나라 화가가 그린 신위의 모습은 당시 한·중 지식인들의 깊은 우정을 보여준다.


27일 대구간송미술관 전시실 2 내부 전경. 굴곡진 모양의 복도를 걸어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오원 장승업의 작품 삼인문년과 만날 수 있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27일 대구간송미술관 전시실 2 내부 전경. 굴곡진 모양의 복도를 걸어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오원 장승업의 작품 '삼인문년'과 만날 수 있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오원 장승업의 마지막을 가늠하다


영화 '취화선'의 주인공으로 널리 알려진 오원 장승업의 '삼인문년(三人問年)'은 전시실 2에서 만날 수 있다. 세 노인이 서로의 나이를 자랑하며 장수를 기원하는 이 그림에는 장승업의 사망 시기를 유추할 수 있는 결정적 단서가 숨어 있다. 그림 한 켠, 장승업의 제자 안중식이 스승을 그리워하며 남긴 글귀를 통해, 천재 화가의 마지막을 가늠할 수 있다.


27일 대구간송미술관 지하 1층 전시실 5에서 실감영상 감응이 상영 중이다. 선비 정신이 깃든 사군자가 사계절의 흐름 속에 피고 지는 영상을 관람할 수 있다. 임훈기자hoony@yeongnam.com

27일 대구간송미술관 지하 1층 전시실 5에서 실감영상 '감응'이 상영 중이다. 선비 정신이 깃든 사군자가 사계절의 흐름 속에 피고 지는 영상을 관람할 수 있다. 임훈기자hoony@yeongnam.com

미술관 지하 1층 전시실 5에서는 간송이 소장한 사군자를 미디어아트로 재해석해 새로 선보이는 실감영상 '감응(感應)'을 관람할 수 있다. 선비 정신이 깃든 사군자가 사계절의 흐름 속에 피고 지는 영상은 원작의 깊이에 현대적 감각을 더한다. 기존에 상영되던 '흐름, The flow' 영상도 함께 상영돼 눈을 즐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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