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Talk] ‘한국 노동문학의 거장’ 백무산 시인 “생명원리 자각 없이는 인간 삶 지속 못해”

  • 조현희
  • |
  • 입력 2026-01-29 16:09  |  수정 2026-01-29 17:44  |  발행일 2026-01-29
5년 만의 시집 ‘누군가 나를 살아주고 있어’
인류 문명·자본주의 모순 꼬집어
인간은 모든 것과 서로 얽힌 존재
이제 멈춰야 본래 삶 찾을 수 있어
최근 신작 시집 누군가 나를 살아주고 있어를 펴낸 백무산 시인은 무한경쟁 사회 속에서의 멈춤의 미학을 역설한다. <본인 제공>

최근 신작 시집 '누군가 나를 살아주고 있어'를 펴낸 백무산 시인은 무한경쟁 사회 속에서의 '멈춤의 미학'을 역설한다. <본인 제공>

시인 백무산이 조선소 노동자로 일하게 된 건 열아홉살이었다. 1955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난 그는 1974년 울산으로 내려가 현대중공업에서 근무한다. "하면 된다"는 구호 아래 세상은 고도성장을 향해 질주했지만 그 밑에는 켜켜이 쌓인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다. 1962년 울산이 국가공단으로 지정된 이후 산업 현장에서의 사망자는 3천명이 넘는다(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추정). 백무산도 3층에서 떨어지는 등 현장에서 여러 번 다쳤고, 가장 친한 친구도 공단에서 숨졌다.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환경과 생명이 무참히 파괴되는 야만적인 상황을 경험하면서 인간의 삶을 이런 방식으로 끌고 가게 할 수는 없다는 자각이 들었다"는 그에게, 그때 어릴 적 문학의 꿈이 되살아났다.


백무산은 1984년 노동현장을 문학으로 형상화한 시 '지옥선'을 '민중시'에 발표하며 노동문학에 발을 들인다. '만국의 노동자여' '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 등 노동계급의 투쟁을 노래하는 작품들을 다수 펴내며 '한국 노동문학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1990년대 이후부터는 노동자의 삶뿐만 아니라 생태 문제, 자본의 폭력성 등으로 관심의 폭을 넓혀나가며 인간 존재의 근원을 탐구하고 있다. 최근 펴낸 열한 번째 시집 '누군가 나를 살아주고 있어'(창비)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5년 만에 신작 시집을 펴낸 그와 서면으로 만났다.


누군가 나를 살아주고 있어/백무산 지음/창비/156쪽/1만3천원

누군가 나를 살아주고 있어/백무산 지음/창비/156쪽/1만3천원

"문자를 보내면서 고마운 건/ 너보다도 너로 인해 한결 괜찮아진 나였던 건/ 마치 네가 나를 대신 살아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너로 인해 희미하게 알게 되네/ 내가 모르는 사람들도 나를 조금씩 살아주기도 한다는 걸" (표제시 '누군가 나를 살아주고 있어' 중에서)


어느 날 오래 전 친구의 전화를 받은 백무산은 어두웠던 지난 시절을 돌아보게 된다. 지나간 과거는 이미 결정돼 있어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오히려 새롭게 다시 만들어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내 삶은 수많은 존재의 얽힘으로 만들어진다는 생각이 절실했다"는 그는, 시간과 기억, 자연을 비롯한 모든 것이 서로 얽혀 있음을 갈파한 시편들을 써냈다.


"인간이 자연을 정복했다고 생각했지만 자연은 정복당하지 않았습니다. 자연은 변형됐을 뿐이죠. 변화된 자연은 인간에게 더 이상 어머니의 품이 아니라, 인간을 적대시하고 공격하고 파괴합니다. 우리는 홀로 살 수도 없고 인간끼리만 살 수도 없습니다. 생명 원리에 대한 자각 없이는 인간의 삶을 지속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인식에 기반해 시집 전반에는 인류 문명과 자본주의의 모순을 비판하는 태도가 흐른다. 일상 속에서 무감각하게 작동하는 폭력을 꼬집는 시들도 담겼다. 그가 봐온 세상은 "그저 몇 마디 혐오를 가르치는 것만으로도/ 학살의 문턱을 넘어버리기도 하고"(문턱) "선하게 살겠다면서" "가해자처럼 성공하려고"(먹기 위해 살기로)도 한다.


"가까운 지역의 역사적 사건에서도 이런 문제를 엿볼 수 있습니다. 1946년 대구 10월 항쟁이나 경산 코발트 광산 학살사건, 가창골 보도연맹 학살사건도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다름없는 사건이었습니다. 파시즘적 권력의 위계는 인간을 살인 기계로 만들어버리기도 합니다. 이것은 극단적인 사건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도 나타납니다. 이데올로기는 진리보다 강력하기 때문에 개인적 양심을 마비시키는 힘이 있어요. 평범한 인간에게도 악의 속성이 있어서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자기 스스로를 몰아붙여 자본과 권력에 봉사할 수밖에 없는 무한경쟁 사회 속에서, 백무산은 이제 '멈춰야 할 때'라고 말한다. "하늘이 푸르른 것도 별이 빛나는 것도// 꽃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것도 무엇을 하지 않아서"(멈추어서 할 일들)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 "세워주지 않는 저 기차"에 타서 "악몽"(기차에 대하여)을 겪고 있기에, 이제는 정지해야 인간답게 살 수 있다고.


"우리는 공정하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능력주의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멈춘다는 것은 느림이나 행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욕망, 제도화된 권력과 자본의 욕망의 노예가 되어 있는 삶을 멈춘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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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희

문화부 조현희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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