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정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오디세이'가 세계 극장가를 휩쓸고 있다. 호메로스의 고대 서사시를 영화화한 이 작품은 개봉 3주 만에 전 세계 흥행 수입 10억 달러를 돌파했고, 8월 24일 기준 누적 흥행 수입은 14억 4천600만 달러에 이르렀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제치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최고 흥행작이 되었으며, IMAX 역사상 가장 높은 흥행 수입을 올린 작품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가 단지 유명 감독과 스타 배우들이 결합한 상업적 대작이라는 사실이 아니다. 인공지능이 창작과 노동, 기억과 지식, 인간의 고유성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시대에 관객은 왜 3천 년 전의 고대 서사시를 다시 호출한 영화에 열광하는가. 이 질문은 오디세이의 흥행을 하나의 영화산업 현상이 아니라 동시대 인간의 정신적 요구를 보여주는 문화적 징후로 바라보게 한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한 모험담이 아니다. 오디세우스의 여정은 전쟁 이후의 귀환이자 상실된 정체성의 회복이며, 가족과 공동체를 다시 구성해가는 과정에 관한 서사다. 여기서 '귀환'은 단순한 물리적 이동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리스어로 귀환을 뜻하는 노스토스(nostos)는 인간이 자신의 장소와 관계, 이름과 역할을 되찾는 과정을 가리킨다. 오디세우스는 이타카에 도착한다고 해서 곧바로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는 전쟁과 표류, 폭력으로 훼손된 인물이며, 가족과 공동체 역시 그의 부재 속에서 이미 변해 있다.
이 점에서 오디세이는 오늘의 관객에게 낯설지 않다. 우리는 이동과 연결이 역사상 가장 쉬워진 시대에 살지만, 동시에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시대를 살아간다. 디지털 네트워크는 세계를 실시간으로 연결하지만 연결이 곧 소속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정보를 주고받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어떤 공동체에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오히려 더 불안해한다.
한편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의 고유성을 단순히 '창의성'이라고 정의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인간적인 것은 결과물의 외형보다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 즉 기억하고 선택하고 책임지는 능력에 있다. 오디세우스는 수많은 선택을 한다. 때로는 지혜롭고 때로는 오만하며, 자신의 이름을 숨기기도 하고 생존을 위해 타인을 속이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동료를 잃고 자신의 선택에 대한 대가를 치르기도 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인간적이다. 그의 정체성은 데이터처럼 고정된 정보가 아니라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 선택과 실패, 관계와 기억을 통해 끊임없이 구성된다. 그의 귀환 역시 단순한 복귀가 아니다. 잃어버린 관계와 훼손된 공동체 앞에 다시 서서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디세우스의 귀환은 장소의 회복인 동시에 관계와 책임의 회복이다.
놀란은 오래전부터 시간과 기억, 정체성과 책임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메멘토'와 '인셉션'에서는 기억이 인간의 정체성을 어떻게 구성하는지를 물었고, '인터스텔라'와 '덩케르크' '테넷'에서는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선택을 탐구했다. '오펜하이머'에서는 이러한 질문을 인간이 만들어낸 기술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의 문제로 확장했다. 그런 점에서 오디세이는 놀란 영화세계의 갑작스러운 '고전 회귀'가 아니다. 오히려 그가 오랫동안 탐구해온 인간의 선택과 책임이라는 문제를 3천 년 전의 서사로 돌아가 다시 묻는 작품이다.
AI는 더 많은 정보를 축적하고 수많은 답을 제시할 수 있지만, 그 답을 선택한 결과까지 책임질 수는 없다. 인간의 고유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불완전한 조건 속에서도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과를 자신의 삶으로 감당하며, 타인과 공동체를 향한 책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3천 년 전의 오디세우스가 오늘 우리에게 다시 돌아온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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