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봉화군 봉성면에 자리한 봉화향교 입구. 낮은 돌담과 오래된 기와, 울창한 고목이 어우러져 수백 년 동안 봉화지역 교육과 제향의 전통을 이어온 향교의 깊은 세월을 보여준다. 황준오기자
배움에도 공간이 필요했던 시대가 있었다. 글을 익히는 곳과 스승을 기리는 곳을 한 울타리 안에 두고, 학문이 곧 사람됨의 길이라고 믿었던 시절이다. 그 오래된 교육의 풍경이 봉화의 한 마을에 남아 있다.
경북 봉화군 봉성면 봉성리. 논밭 사이로 난 마을길을 따라 들어가면 낮은 담장 위로 기와지붕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름난 관광지에서 흔히 만나는 화려한 단청도, 사람을 압도하는 웅장한 건축도 없다. 대신 빛바랜 목재와 묵은 기와, 마당을 감싸는 적막이 먼저 방문객을 맞는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봉화향교다.
대문을 지나 마당에 들어서면 이곳의 공간 질서가 눈에 들어온다. 앞에는 유생들이 공부하던 명륜당(明倫堂), 그 뒤에는 공자를 비롯한 성현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大成殿)이 자리한다. 배움의 공간을 앞에, 제향(祭享)의 공간을 뒤에 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전통적인 향교 배치다.
단순한 건축 배치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조선의 교육관이 압축돼 있다. 글을 배우는 것만으로 교육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선현의 가르침을 익히고 삶에서 실천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명륜당에서 시작한 공부가 대성전을 향하도록 만든 공간 자체가 하나의 교과서였던 셈이다.
명륜당 마루에 시선이 머문다.
수많은 사람이 밟았을 나무는 세월을 먹어 윤기가 바랬고, 기둥과 서까래에도 오랜 시간이 내려앉아 있다. 한때 이곳에는 경전을 읽는 유생들의 목소리가 이어졌을 것이다. 지금은 고요하지만 오래된 마루를 바라보고 있으면 빈 공간보다 그곳을 채웠던 사람들이 먼저 떠오른다.
향교는 오늘날의 학교와는 달랐다. 학문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이면서 동시에 국가가 지방에 유교적 질서와 가치관을 뿌리내리게 하는 거점이었다. 유생들은 경전을 읽고 글을 익혔으며, 예법을 배우고 사회를 살아갈 도리를 공부했다.
명륜당 뒤편 대성전으로 향하면 공간의 분위기는 한층 엄숙해진다.
봉화향교 명륜당(明倫堂) 전경. 조선시대 유생들이 경전을 익히고 학문을 닦던 강학 공간으로, 단정한 기와지붕과 절제된 건축미에서 전통 향교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황준오기자
이곳에는 공자를 비롯한 오성(五聖)과 우리나라 18현의 위패를 모셨다. 앞마당에서 이뤄지던 '배움'이 이곳에 이르면 '기림'으로 바뀐다. 향교가 단순한 학교가 아니라 교육과 제향을 하나의 질서로 묶은 공간이었다는 사실이 선명해진다.
봉화향교의 시작은 조선 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만 정확한 창건 시기는 자료에 따라 세종대와 세조대로 엇갈린다. 이후 1579년(선조 12) 현감 조목이 중건한 것으로 전해지며, 여러 차례 중수와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오랜 세월을 견딘 문화유산을 바라볼 때 흔히 '원형'에 주목하지만 봉화향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수백 년 동안 고치고 다시 세우며 시대에 맞춰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이곳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 흔적은 근현대까지 이어진다.
1950년에는 향교 안에 봉성고등공민학교가 들어섰다. 조선시대 유생들이 경전을 읽던 공간이 근대에 들어 다시 지역 청소년들의 배움터가 된 것이다. 이후 학교는 폐교됐고 건물 훼손 등을 거쳐 1975년 대대적인 중수가 이뤄졌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배움의 공간'이라는 장소의 기억만큼은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이 점에서 봉화향교는 단순한 옛 건축물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조선의 지방교육에서 근현대 지역교육까지, 서로 다른 시대의 배움이 한 장소 위에 겹쳐 있기 때문이다.
향교의 진짜 주인공은 어쩌면 건물이 아니라 그곳을 거쳐 간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이름조차 남지 않은 유생들이 명륜당 마루에서 글을 읽었고, 지역의 선비들은 대성전에서 성현의 가르침을 되새겼다. 근대에는 또 다른 세대의 학생들이 이곳에서 새로운 시대의 지식을 배웠다. 한 공간에 축적된 수많은 사람의 시간이 지금의 봉화향교를 만들었다.
마당을 천천히 걷다 보면 향교가 주변 풍경을 거스르지 않는다는 사실도 눈에 들어온다. 낮은 담장과 기와지붕은 봉성의 들과 산에 스며들 듯 자리한다. 봄이면 새잎이 처마 가까이 내려오고 여름에는 녹음이 짙어진다. 가을이면 마당 위로 계절이 쌓이고, 겨울에는 오래된 기와 위에 적막이 내려앉는다.
경북 봉화군 봉성면에 자리한 봉화향교 입구. 낮은 돌담과 오래된 기와, 울창한 고목이 어우러져 수백 년 동안 봉화지역 교육과 제향의 전통을 이어온 향교의 깊은 세월을 보여준다. 황준오기자
화려하지 않기에 오히려 오래 바라보게 되는 풍경이다.
오늘날 교육은 거대한 건물과 첨단 시설, 디지털 기술을 향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러나 봉화향교에 서면 교육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무엇을 얼마나 많이 가르칠 것인가에 앞서 어떤 사람을 길러낼 것인가를 고민했던 공간이기 때문이다.
문화유산 역시 마찬가지다.
오래된 건물을 보존하는 것만으로 그 가치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 공간에서 누가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지키려 했으며, 그것이 오늘의 지역사회에 어떤 의미로 남았는지를 함께 읽어낼 때 문화유산은 비로소 현재와 연결된다.
봉화향교에는 나라를 뒤흔든 거대한 사건도, 눈길을 압도하는 화려한 유물도 없다.
대신 수백 년 동안 이어진 배움이 있다. 성현을 기리던 마음이 있고, 시대가 달라져도 교육의 공간을 놓지 않았던 지역의 기억이 있다.
다시 명륜당 앞에 선다. 오래된 마루 위로 오후 햇살이 비스듬히 내려앉는다.
사람은 떠났고 책 읽는 소리도 사라졌지만, 배움의 자리는 남았다.
봉화향교가 지켜온 것은 낡은 기와 몇 장과 오래된 목재만이 아니다. 한 지역이 사람을 길러내고 가르침을 이어왔던 시간이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서둘러 걸을 이유가 없다.
천천히 걸어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마루의 닳은 결, 기둥에 밴 세월, 명륜당에서 대성전으로 이어지는 오래된 길.
그 길 끝에서 봉화향교는 묻는 듯하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배우고, 또 무엇을 다음 세대에 남기고 있는가.
황준오
현장의 작은 변화 속에서 지역의 미래를 읽는 보도로 봉화의 오늘과 내일을 기록합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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