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기업) 산업 생태계 개념도. 대구시 제공
대구가 반도체 설계부터 시제품 제작, 검증, 상용화까지 아우르는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기업)' 산업 생태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규모 생산시설 유치에 의존하는 기존 반도체 산업 육성 공식에서 벗어나 지역 주력산업과 설계·연구개발 역량을 결합한 새로운 성장모델을 제시하면서 수도권에 편중된 국내 반도체 산업 지형에 변화의 가능성을 열고 있다는 평가다.
◆ 지원 인프라 탄탄…사업화 성과 가시화
5일 대구시에 따르면 작년 기준 지역 반도체 관련 기업은 57개사로, 생산액은 2조8천398억원에 달한다. 전국 대비 각각 1.6%, 3.2% 수준이지만 대규모 반도체 생산시설이 없는 지역임에도 일정 규모의 산업 기반을 갖춘 셈이다. 여기에 차량용·인공지능(AI) 반도체를 중심으로 국내외 기업들이 잇따라 연구개발 거점을 마련하면서 산업구조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기존 소재·부품·장비 중심의 제조업 기반에 반도체 설계 역량이 더해지면서 산업 생태계의 외연이 넓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기업들의 사업화 성과도 하나둘 가시화하고 있다. 2024~2025년 지능형반도체개발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은 12개 기업에서 총 13억6천500만원의 사업화 매출이 발생했다. 9개 기업에서는 신규고용 20명이 창출됐다. 대구에 기반을 둔 에스티랩스는 단파적외선(SWIR) 센서용 반도체를 개발해 신호 증폭 성능을 기존보다 약 6.3배 높였다. AI 반도체 기업 디퍼아이는 여러 개의 신경망처리장치(NPU)를 연동하는 모듈을 개발해 연산 성능을 약 8배 끌어올렸다. 와이젯은 디스플레이 검사 자동화 등에 활용할 수 있는 10Gbps급 근거리 무선통신 반도체 시제품을 개발했고, 파이칩스는 전파방해 환경에서도 위성항법 신호를 안정적으로 수신할 수 있는 4채널 항재밍 GNSS 반도체 시제품을 선보였다.
성과의 밑바탕에는 반도체 설계·개발지원 인프라가 있다. 팹리스 기업은 반도체 회로 설계와 성능 검증에 필요한 고가의 전문 소프트웨어와 장비를 확보하는 데 상당한 비용이 든다. 대구시는 지능형반도체설계지원센터를 통해 이를 공동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시제품 제작과 시험분석, 상용화 지원사업도 연계해 기업들이 기술개발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소프트웨어·장비 공동 활용에 따른 기업 비용 절감 효과는 연간 150억여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 주력산업과 연계 생태계 구축…실제 양산은 과제
이 같은 지원체계를 바탕으로 대구시는 지역 주력산업과 시스템반도체를 연계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핵심은 로봇·미래모빌리티 산업을 반도체 기술의 실증과 상용화 무대로 활용하는 것이다. 지역 팹리스 기업이 개발한 AI 반도체와 센서 등을 로봇과 자동차부품에 적용하고, 이를 통해 수요기업과 반도체 설계기업이 함께 성장하는 산업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2031년까지 총 415억원을 들여 '로봇산업 연계 국산 AI반도체 개발·실증 지원사업'을 추진해 국산 AI 반도체의 로봇 적용과 성능 검증·사업화를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첨단센서와 차세대 반도체 분야로의 확장도 모색하고 있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의 기업공유형 센서 파운드리 'D-FAB'과 경북대 반도체 공동연구소 조성을 통해 설계·검증을 넘어 시제품 제작과 차세대 반도체 연구개발 역량까지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연구개발 성과를 실제 양산과 안정적인 매출로 연결하는 것은 과제다. 반도체는 시제품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실제 제품에 적용되기까지 성능과 신뢰성 검증, 고객사 확보 등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수도권에 집중된 설계 전문인력을 지역으로 유치하고, 중소 팹리스 기업이 지속적으로 연구개발에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역 수요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실제 납품·양산 실적을 얼마나 축적하느냐가 대구 팹리스 산업의 경쟁력을 가를 전망이다.
대구시 심관택 반도체소프트웨어과장은 "대구는 비수도권에서 유일하게 시스템반도체 기업지원 인프라를 보유했지만, 현재 지원은 설계·검증 단계에 집중돼 있다"며 "설계·검증을 넘어 실증·상용화로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기업 현장 목소리를 반영한 정책을 수립하고, 기업의 성장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승엽
대구시청 경제부서와 산업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작은 목소리도 끝까지 듣겠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