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곯는 서러움을 어루만져주기 위해 직접 만든 음식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는 경북대학교 인근 '짬마담(짬뽕 한 그릇에 마음을 담다)' 박제용(42) 사장. |
아빠가 되어보니 다른 아이들까지도 챙기게 됐다는 '면만드는사람들 범어점' 김태환(33) 사장. |
자라나는 아이들과 학생들에게 세상을 밝게 보는 눈을 선물하는 '글라스바바 동성로점' 노태구(53) 원장. |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더욱 빛나는 가게들이 있다. 어려운 시기에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눔을 실천하는 '선한영향력가게'다. 서울에서 시작된 선한영향력가게는 홍익대학교 앞 '진짜파스타' 가게 오인태 대표가 결식아동에게 무상으로 음식을 제공해주면서부터 알려지게 됐다. 오 대표는 아이들이 '급식카드'를 보여주기만 하면 결제하지 않고 음식을 제공했다. 오 대표의 선행은 온라인을 통해 널리 알려졌고, 이른바 '돈쭐(돈으로 혼쭐을 내다)'을 내겠다며 가게를 찾는 손님이 급증했다.
선한영향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오 대표의 뜻에 동참하는 가게가 점차 늘면서 현재는 전국적으로 동행을 신청할 수 있는 채널을 개설해 홈페이지를 운영 중이다. 동행을 원하는 가게는 선한영향력가게 홈페이지를 통해 간단한 신청서를 작성해 접수가 가능하며, 절차가 완료되면 사이트 내 지도에 가게가 표시되며 동행 스티커를 보내준다. 14일 기준 전국적으로 2천671곳의 선한영향력가게가 등록됐으며 대구에 97곳, 경북에는 112곳의 가게가 동행 중이다.
대부분 동행 가게가 식당이지만 카페, 안경점, 학원, 복사집 등 다양한 업체에서도 참여 중이다. 대구지역에서 인터뷰를 하며 만난 선한영향력가게 업주들은 더 많은 아이와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잘 알려지지 않아서 아이들이 찾아오지 않는 곳도 있었고, 가게 주변을 서성거리며 눈치를 보는 아이들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곳도 있었다. 자칫 가게 홍보처럼 보이지 않을까 정중히 인터뷰를 거절하는 이들도 있었고, 대수롭지 않은 일이란 듯 선한영향력가게 동행 사실을 주변 지인들에게도 알리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이들 모두의 바람은 하나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선한 영향력을 전해주는 것. 따뜻한 밥 한 끼에 더 따뜻한 마음 한 스푼을 전해주는 이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 배곯는 서러움 어루만져주는 '짬마담(짬뽕 한 그릇에 마음을 담다)'
배곯는 아이들 이야기에 가슴 먹먹
어려움 딛고 희망 가지도록 돕겠다
"내 손으로 직접 밥 한 끼 먹인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2017년부터 경북대학교 인근에서 짬마담(북구 대현동)을 운영하고 있는 박제용(42) 사장은 약 30년간 중화요리 업계에 몸을 담은 베테랑이다. 본인 손으로 직접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찾던 그는 지난해 초 '선한영향력가게' 동행을 신청했다.
박 사장은 "오랫동안 장사를 하면서 내가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을 많이 고민해왔지만 시간적, 금전적 여건 때문에 한계가 있었다"며 "선한영향력가게를 운영하면 요리를 하는 사람으로서 큰 부담없이 직접 만든 요리를 아이들에게 먹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돼 신청했다"고 동행 이유를 밝혔다.
어려웠던 어린 시절을 보낸 박 사장은 배곯는 서러움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먹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집에 있는 것이라곤 밥과 반찬 몇 가지. 어린 시절 용돈마저 받지 못했기에 언제나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박 사장이기에 가게를 운영하는 동네에서 종종 보이는 아이들이 끼니는 제 때 챙겨먹고 다니는지 언제나 눈에 밟혔다고 한다. 그는 "동네에서 한부모 가정의 아이, 조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 소식을 들을 때면 내 어린 시절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했다"며 "이제는 마음 편하게 도움을 줄 수 있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대구에서 운영하는 컬러풀 드림 카드 및 급식 카드를 소지하고 있는 만 19세 이하면 본인에 한해 누구나 카드를 제시한 뒤 식사메뉴 1가지를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다. 기존에는 카드를 소지한 본인을 포함해 부모에게도 음식을 제공했지만 문제가 발생해 운영 방식을 바꿨다고 한다. 박 사장은 "편법으로 카드를 발급받아 온 사람들이 명품백을 들고 무료로 음식을 제공받기 위해 가게에 찾아온 적도 있었다"며 "복지 사각지대도 있지만 편법 사각지대도 있다는 것을 직접 겪은 뒤 본인에 한해서만 음식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바꿨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또한 그는 어른들의 부족함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이 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앞으로도 계속 돕고 싶다고 했다. 박 사장은 "눈 앞의 어려움 때문에 찾기 쉽지 않을 수도 있지만 아이들이 더 먼 미래를 바라보면서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 나가기를 바라며, 가게를 운영하는 동안 만큼은 도움의 손길을 계속 뻗겠다"고 강조했다.
◆ 아빠의 마음으로 따뜻함 나누는 '면만드는사람들 범어점'
아빠 된 후 아이 보는 시각 달라져
나눔의 열정 식지 않고 이어갈 것
"내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니 돕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2018년 첫 아이를 가진 김태환(33) 면만드는사람들 범어점(수성구 범어동) 사장은 아빠의 마음으로 '선한영향력가게'를 신청하게 됐다. 내 아이가 자라나갈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른 아이들도 함께 누릴 수 있는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김 사장은 "내 아이를 가지기 전까지는 다른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지 못했고, 결식아동에 대한 고민도 거의 없었다"며 "이제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바뀌었고 더 많은 도움을 줄 수는 없을지 고민하게 됐다"고 했다.
면만드는사람들 범어점은 2019년 처음 가게 문을 연 뒤 올해 초 선한영향력가게에 동행했다. 김 사장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처음 선한영향력가게를 알게됐고, 작은 도움이나마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선뜻 동행 신청을 했다.
이곳에서는 급식 카드를 제시하면 당사자 본인에게 국수 메뉴 1가지를 무료로 제공한다. 하지만 김 사장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다. 그는 "가게에서 판매하고 있는 메뉴 구성 자체가 아이들 입맛에 맞춰진 것이 아니라 많이 찾아오지는 않는다"며 "찾아온 아이들이 식사하는 모습만 바라봐도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기쁘지만 그 기회가 자주 찾아오지 않아 아쉽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사장은 "대학 졸업 후 비교적 젊은 나이에 요식업에 뛰어들었지만 더 일찍 나눔을 실천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지만 이제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그의 가족은 어머니까지 선한영향력가게를 운영하며 함께 나눔을 실천하는 중이다. 김 사장은 "어머니께서는 면만드는사람들 팔공산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범어점 동행 등록을 할 때 함께 신청했다"며 "가족 모두가 취지 자체에 공감을 했고, 큰 부담이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선뜻 동의해주셨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김 사장은 지금의 열정이 식지 않고 오랫동안 장사를 이어나가고 싶다는 목표를 전했다. 그는 "빨리 핀 꽃이 빨리 지는 것처럼 내가 가진 열정 또한 금방 시들지 않을까 고민하며 스스로 발전해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나눔에 대한 열정도 오랫동안 이어나갈 것이며, 선한영향력가게를 신청한 보람이 있도록 많은 아이들이 찾아왔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 세상을 밝게 보는 눈을 선물하는 '글라스바바' 동성로점
자라나는 아이들 시력 챙겨주고파
매일 2명에 안경 지원해주고 있어
'선한영향력가게'는 음식점만 있지 않다. 카페, 안경점, 학원, 사진관 등 다양한 가게가 이미 동행 중이며 업종에 관계없이 나눔을 실천할 수 있으면 신청이 가능하다. 글라스바바 동성로점(중구 남일동)은 자칫 간과하기 쉬운 아이들의 시력을 챙겨주기 위해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안경점이다.
노태구(53) 글라스바바 동성로점 원장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새로운 눈을 찾아주기 위해 선한영향력가게를 신청하게 됐다고 한다. 노 사장은 "선한영향력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주변 가게를 통해 관련 내용을 접하게 됐고 그 취지에 공함해 시작하게 됐다"며 "급식 카드 및 증빙 자료를 보여주면 매일 2명에 한해 무상으로 안경을 지원해준다"고 설명했다.
노 원장은 안경점을 운영하는 만큼 성장기 아이들의 시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때문에 더욱 성심성의껏 나눔을 실천하고 있었다. 그는 "주기적으로 시력 검사를 하고 시력에 맞게 렌즈를 교체해야 하지만 금액이 부담돼 바꾸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며 "한 번 나빠진 시력을 되돌리기는 어렵기 때문에 어른들의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또한 부모의 입장이기 때문에 아이들이나 학생들이 낡은 안경을 끼고 있는 모습을 보면 항상 안타까운 마음을 느낀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안경테와 렌즈를 합하면 꽤 비싼 가격이지만 흔쾌히 나눔을 실천하고 있었다.
노 원장은 코로나19로 어려워진 동성로 시내 상권에 대해서도 걱정이 많았다. 그는 "유동인구가 점차 줄어들면서 동성로 골목 곳곳에 임대 현수막이 내걸리게 됐다"며 "밤이 되면 불 꺼진 상점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지고, 어두워진 시내 거리가 안타깝다"고 하소연했다.
또한 "모두가 힘든 시기를 버텨내기 위해서는 나눔을 통해 함께 힘을 모으는 수밖에 없다"며 "욕심을 내려놓고 가진 것을 나누며 코로나19를 이겨내면 동성로 상권도 다시금 활기를 되찾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새로운 눈이 되어주는 안경의 소중함을 알기에 대상이 되는 아이나 학생들이 기꺼이 찾아와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노 원장은 "안경은 자주 바꾸지는 않지만 꽤 비싼 금액이 들기 때문에 금액적 부담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공감한다"며 "하지만 학업과 생활 전반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나눔을 실천해나갈 것이며, 많은 아이들과 학생들이 찾아와줬으면 한다"고 의지를 밝혔다.
글·사진 = 김형엽기자 khy@yeongnam.com
※ '선한영향력가게'에 동행 중인 대구경북지역 가게 가운데 인터뷰를 원하는 곳에서는 e메일(khy@yeongnam.com)로 연락주시면 일정 조율 후 방문 취재하겠습니다.
김형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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