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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기사와 관계 없음. <영남일보DB> |
현실은 드라마보다 냉혹했다. 꽃 한 송이를 꺾은 죄로 검찰에 넘겨진 할머니(영남일보 6월12일 2면 보도)에게 '절도범'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졌다. 할머니 건강은 더 나빠졌지만 아파트 측은 묵묵부답이다. 한 편의 블랙 코미디는 마지막 결말까지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18일 영남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6월 검찰은 꽃 한 송이를 꺾은 80대 할머니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할머니측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아들여 항고를 포기하면서 사건은 일단 종결됐다.
앞서 지난 3월 수성구 한 아파트 주민인 80대 할머니 A씨는 화단에서 노란 꽃 한 송이를 꺾은 혐의(절도)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아파트 측은 입주민인 할머니에게 35만원 상당의 합의금을 요구한 게 알려져 논란이 됐다. 경찰은 할머니를 조사한 후 검찰에 송치했다.
기소유예란 죄는 인정되지만 피의자의 연령이나 환경, 범행 동기 및 수단, 범행 후 정황 등을 참작해 검사가 기소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죄는 있되 처벌까진 가혹하다는 의미다. 비록 할머니가 기소유예 처분으로 받을 실질적 불이익은 없지만, 사회적으로 '절도범'이라는 낙인이 찍힌 셈이어서 할머니의 가족은 기소유예 항고를 준비했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뒤집기 어려운 데다 시간과 비용, 할머니 건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국 항고 의사를 접은 것으로 전해졌다.
할머니 건강은 더 악화됐다. 치매 초기 증상이 있는 할머니는 사건 이후 당 수치가 평상시의 3배 이상 치솟는 등 건강이 크게 나빠져 요양사를 불러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사건 이후 대인 기피증 증세도 보였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지만, 사건 이후 아파트 측에서 별도 사과나 입장 표명은 현재까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할머니 사연이 전국적으로 공분을 샀던 당시 아파트 일부 주민들이 단체행동에 나서려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이후 관심도가 떨어지며서 흐지부지됐다.
할머니의 딸은 영남일보와의 통화에서 "그날 이후 바뀐 건 없다. 아파트 측으로부터 일언반구 사과도 받지 못했다. 당시엔 함께 목소리를 내자는 이들이 많았는데, 정작 때가 되니까 발을 다 빼더라"며 "씁쓸하다. 어머니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드리지 못한 게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이승엽기자 sylee@yeongnam.com

이승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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