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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기자 〈사회1팀〉 |
정치인의 주요 덕목 중 하나는 '경청 자세'다.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은 고통을 이해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첫걸음이다. 이제 정치에 갓 입문한 기초의회 의원이라면 더욱 필요한 덕목이기도 하다. 기초의원은 지역 주민의 삶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는 예산과 정책을 심의한다. 지역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결코 가볍지 않은 권한이다. 그러나 그 권한이 남용될 때 주민의 신뢰는 배신당하고,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은 흔들리게 된다.
대구 중구의회가 지난 19일 배태숙 의장을 전격 제명했다. 이젠 의장은 물론, 의원도 아니니 편의상 배태숙씨라고 부르겠다. 배씨는 중구의원 재임 당시 유령 회사를 설립해 중구청과 수차례 걸쳐 수천만원 상당의 불법 수의계약을 체결한 혐의를 받는다. 주민등록상 거주지와 실거주지가 일치하지 않아 주민등록법 위반 혐의로도 기소됐다. 그는 뻔뻔하기까지 했다. 숱한 의혹에 휩싸인 상황에서도 중구의회 의장 선거에 출마했고, 동료 의원들과 야합을 통해 당선을 이뤄냈다. 자신을 공천했던 정당이 본인의 징계를 심의하는 와중에, 호주로 외유성 출장을 떠나는 장면에선 일종의 광기까지 느껴졌다. 내일이 없는 경주마를 보는 듯했다.
그가 경청의 자세를 완전히 잃은 것도 아마 이 무렵이었을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귀를 완전히 닫았다. 숱한 의혹에 대한 입장을 묻는 기자들의 연락을 차단했다. 주민을 만나는 공식 석상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동료 의원들조차 그와 대화의 통로가 막혔을 정도다. 비판에 귀를 닫고, 대화조차 거부하며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굳게 닫힌 문은 지난 19일 중구의회에서 제명당하던 마지막 순간까지 열리지 않았다. 제명 의결 후 그의 입장을 듣기 위해 사무실을 찾은 기자들은 굳게 닫힌 문 앞에서 결국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MZ세대'도 울고 갈 무책임함에 기자들도 연민보다는 황당함을 느꼈다.
스스로 '정치'를 포기했을 때 배태숙이라는 정치인의 결말은 자명했다. 배씨의 무책임한 행동은 중구의회를 마지막까지 한편의 블랙 코미디로 만들었다. 재적의원 과반이 법적 심판을 받는 상황에서 전국 최악의 지방의회라는 오명도 피할 수 없게 됐다. 물론, 이 사태 원인이 모두 배씨에게만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이런 함량 미달의 인사를 공천한 국민의힘의 책임이 첫 번째이고, 배씨와 유착해 비리를 공모한 집행기관의 잘못도 간과할 수 없다. 가장 큰 피해자는 그런 그에게 속아 미래를 결정할 권리를 내준 중구민들이다. 황당함과 부끄러움의 연속인 중구의회에서 이번 탄핵 정국을 떠올리는 것은 과한 상상력일까.
이승엽기자 〈사회1팀〉

이승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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