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가 피하려 비상탈출 대신 산화한 파일럿 이야기

  • 조현희
  • |
  • 입력 2025-01-24  |  수정 2025-01-24 08:32  |  발행일 2025-01-24 제18면
대구 출신 전투조종사 故 심정민 소령

가족·동료가 기억하는 평상시 모습

한 인간이 지닌 의로움·용기 일깨워

민가 피하려 비상탈출 대신 산화한 파일럿 이야기
기체 고장으로 전투기가 추락하는 상황에서도 민가를 피한 고(故) 심정민 소령. 〈심정민추모사업회 제공〉

비행기의 양쪽 엔진에 화재 경고등이 켜진 것은 이륙 후 불과 54초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긴급 착륙을 위해 다시 기지로 선회하려 했지만, 조종계통 결함이 추가로 발생해 항공기의 기수가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조종사는 관제탑과 교신하며 두 차례 '이젝트(eject; 탈출)'를 외치며 비상탈출을 선언했다.

조종사가 비상탈출 레버를 당기면 안전한 고도에서 낙하산이 펴진다. 하지만 조종사는 당기지 않았다. 전투기가 날아가던 방향에는 대학교 캠퍼스와 아파트를 비롯한 다수의 민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블랙박스 기록에 따르면 그는 탈출 레버를 당기는 대신 조종간을 끝까지 잡으며 비행기를 돌리려 애썼다. 비행기는 야산에 추락했고, 조종사는 숨졌다. 2022년 1월11일 숨진 (故) 심정민 소령 이야기다.

기체 고장으로 전투기가 추락하는 상황에서도 민가를 피한 고(故) 심정민 소령의 이야기를 엮은 '별이 된 보라매'가 발간됐다. 심정민추모사업회에서 발간한 추모책이다. 심 소령의 의로운 죽음과 귀한 뜻을 기리기 위해 제작됐다.

민가 피하려 비상탈출 대신 산화한 파일럿 이야기

심 소령은 대한민국의 공군 장교로 1993년 대구 수성구에서 태어났다. 2012년 대구 능인고를 졸업하고 공군사관학교 64기로 입교했다. 이후 2016년 졸업과 동시에 공군 소위로 임관하고 제10전투비행단 소속 F-5의 전투조종사로 복무하다 숨졌다. 순직 후 1계급 특진돼 소령으로 추서됐다.

책엔 심 소령의 마지막 이야기를 비롯해 가족·동료 등 지인들이 기억하는 그의 모습이 인터뷰 형식으로 담겨 있다. 심 소령의 동료는 "자신에겐 엄격하지만 선후배와 동기들에게 인기가 가장 많은 친구였다"며 "후배들을 교육하는 역할을 많이 맡았었는데, 교육을 하려면 적어도 본인이 떳떳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친구는 "조종하다가 만약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은 적이 있다. 정민이는 민가엔 떨어지면 안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었다. 공군사관학교에서도 민간인의 피해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고 배웠다고 하길래 정민이도 그런 선택을 하겠구나 싶었다"고 했다.

사관학교 재학, 수원전투비행단 당시 사진과 함께 순직 직후 세계 공군장성·외교관계자들이 보낸 추모 메시지도 수록됐다. 이와 함께 고인이 쓰던 물건과 비행 연구 노트 등도 실렸다.

심정민추모사업회는 "언젠가 이 책을 읽는 이들이 한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의로움과 용기에 대해 오롯이 생각하는 시간을 지닐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책 판매 수익금 전액은 추모사업에 사용된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기자 이미지

조현희

문화부 조현희 기자입니다.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