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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유토피아' 저자 정보라 작가. <정혜란 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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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유토피아'를 쓸 당시 연세대 노어노문학과에서 강사 일을 했어요. 봄 학기마다 SF 수업을 했는데, 필립 K. 딕의 소설을 수업 자료로 썼어요. 굉장히 비현실적이에요."
경북 포항에 사는 소설가 정보라(49·사진)작가는 소설집 '너의 유토피아'로 세계 3대 SF 문학상으로 꼽히는 미국 '필립 K. 딕 상' 후보에 오른 소감에 대해 묻자 이같이 답했다. 그는 "교과서로 보던 소설가의 이름을 딴 상에 후보로 올랐다"며 신기함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해 1월 미국에서 출간된 정보라의 '너의 유토피아'는 지난달 10일(현지시각) 필립 K. 딕 상 후보에 올랐다. 필립 K. 딕은 20세기 SF(공상과학) 문학을 대표하는 미국 작가다. 그를 기념하기 위해 1983년 제정된 상이 필립 K. 딕 상으로, 미국에서 출판된 뛰어난 SF 소설에 매년 주어진다. 한국인 소설가가 한국어로 쓴 작품이 후보로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단편집은 더욱 이례적이다. 오는 4월 18일 수상작 최종 발표에 앞서 최근 정보라 작가와 줌으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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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유토피아' 저자 정보라 작가. <혜영 촬영> |
"문과 출신이고, 과학에 대해 그렇게 잘 알지 못한 채로 어쩌다 SF를 쓰게 됐어요. 지금도 조금 자신이 없긴 한데, 해외에서까지 주목을 받았다는 건 아주 엉망진창은 아니라는 뜻이겠죠."
'너의 유토피아'는 2021년 출간된 '그녀를 만나다'의 개정판이다. 표제작 '너의 유토피아'와 함께 △영생불사연구소 △여행의 끝 △아주 보통의 결혼 △One More Kiss, Dear △그녀를 만나다 △Maria, Gratia Plena △씨앗 등 총 8편이 실렸다. 수록작들은 암울한 미래가 배경이지만 그 속에서 희망을 그려낸다.
특히 표제작 '너의 유토피아'는 인류가 떠난 황량한 행성에서 고장난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를 태우고 배회하는 스마트 자동차의 이야기다. 인간과 거리가 먼 외형이지만 내면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다. 이런 모습을 통해 '인간성'이란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다. "인공지능에 차별과 편견이 반영된다면, 평등과 포용도 들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요즘 소설에는 사람과 똑같이 생긴 로봇이 많이 나와요. 그런데 모양새가 사람과 비슷하지 않은 게 더 기능적이래요. 이런 기계를 주인공으로 설정하는 게 더 과학적일 것 같았어요."
'너의 유토피아'에서 휴머노이드는 스마트 자동차에게 유토피아 지수를 반복해 묻는다. 같은 질문을 정 작가에게도 던졌다. "1부터 10까지 수치화한다면, 너의 유토피아는 어디쯤 될까요?" 수상 후보로 오른 상황이라 꽤 높은 수치일 거라 예상했다. 답은 의외였다. 그는 개인적인 상황과 혼란스러운 국내 정세를 이유로 들며 "2~3정도 된다"고 대답했다. "개인적인 걱정이 많아요. 원고 마감도 많고, 남편의 건강 문제도 있어요. 한국 사회도 분열돼 있는 상황이고요. 무언가 답이 있어야 하는데 당장 나타날 것 같진 않아요."
그러면서 "유토피아는 존재할 수 없다"고 했다. "유토피아는 모든 사람이 화합하고 의견이 일치되는 세상이에요. 그런 순간은 단 한 번도 나올 수 없죠. 원래 민주주의라는 게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시끄럽기 때문이에요. 그런 점에서 유토피아는 도착할 순 없지만 가고 있는 곳인 거죠. 의견을 조율하고 대립하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나아가는 것 자체가 유토피아를 향한 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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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유토피아' 저자 정보라 작가. <혜영 촬영> |
그 중 가장 애착이 가는 단편으로 '그녀를 만나다'를 꼽았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고 소수자들의 삶이 조금 나아진 어느 날, 한 할머니가 '그녀'의 팬미팅에 갔다가 혐오 세력의 폭탄 테러에 휩쓸리며 펼쳐지는 이야기다. 트렌스젠더를 향한 혐오로 생을 마감한 고(故) 변희수 하사가 모티프가 됐다. "변희수 하사님 돌아가시고 나서…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여덟 편 중 가장 아픈 손가락이에요."
정 작가의 문체는 서늘함을 기저에 깔고 있지만 작품마다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단문이 반복되는 'Maria, Gratia Plena'와 달리 '영생불사연구소'는 만연체로 구성됐다. 그는 노문학을 강의하며 여러 문체를 써보게 됐다고 한다. "러시아 민담에서 이렇게 계속 수다를 떠는 문체가 나와요. 1960년대 소련 시절 농촌 소설에서 유행해 지금도 많이 사용되고 있어요. 이런 걸 강의할 적 수업 시간에 가르쳤는데, 저도 해보고 싶더라고요."
앞으로의 활동을 묻는 질문엔 "장편소설을 준비하고 있다"고 답했다. "원고 마감에 치여 괴로워하고 있어요. 다른 작가님과 협업해 쓰기로 한 작품도 있어서 무척 괴로워하는 중입니다(웃음)."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조현희
문화부 조현희 기자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