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 날로 돌아가보자. 지난 겨울 초입 12월3일 밤 10시30분 어간. 때마침 TV 앞 소파에 앉아 뉴스를 찾던 나는 윤석열 대통령 계엄령 발동이란 '역사적 장면'에 몰입하게 됐다. 저게 가능할까. 어떻게 수습할려고. 무슨 숨은 패가 있길래 박물관에 갔다고 여긴 계엄령을 21세기 대한민국 대통령이? 목숨을 걸었나? 그런 혼란도 잠시 계엄 포고령을 듣고는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이후 기승전결 진행된 희곡을 내가 거의 100% 예측했다고 하면 독자들은 믿을지 말지 모르겠다.
내란(內亂)이란 프레임에 윤 대통령을 잡아넣었지만 사실 내란이라고 하기엔 구성요건이 부족하다. 법률적 잣대는 몰라도 정치적 해석이 그렇다. 그건 친위(親衛)쿠데타이다. 쿠데타(coup d'État)는 무력으로 군사를 일으켜 정권을 탈취하는 정변이다. 친위쿠데타는 권력을 가진 자가 그 권력을 더 공고히 하기 위해 벌이는 작업이다. 일단 나의 권력에 배치되는 자는 '배신자'란 이름으로 가려낸다. 척결(剔抉)이란 살벌한 용어도 등장한다. 옆에서 누군가 간언하는 자도 있다. 조선시대 반정(反正)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이 스스로 총애하던 30대 조광조가 신흥 권력으로 떠오르자 그를 찍어내 살해한 것도 그런 케이스다. 친위쿠데타는 그래서 궁중 드라마 성격이 강하다.
태국은 아름다움과 역사를 간직한 국가다. 특히 유럽인들이 좋아한다. 1·2차 세계대전과 제국주의의 패권국가들이 5대양 6대주를 침탈하던 시절, 아시아에서는 일본제국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식민지를 격지 않은 나라다. 국가적 자존심이 크다. 태국은 1932년 입헌군주제 실시 이후 무려 13번의 군사쿠데타를 겪었다. 크고 작은 친위쿠데타까지 포함하면 20번 정도 된다. 쿠데타를 '즐기고 용인하는' 나라가 됐다. 국민들도 별반 개의치 않는다. 일찌감치 선진국이 됐어야 하는데, 이런 정치적 나태함, 비민주성에 대한 둔감함은 나라의 장애물이 됐다. 그건 마치 매년 되풀이되는 수해 비슷하다. 방글라데시나 스리랑카 같은 나라는 둑을 쌓고 다리를 놓으며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하지만, 매년 때만 되면 닥치는 자연재해는 둑과 다리를 쓸어버린다. 바닥에서 다시 일어서야 한다. 국가경제는 덩달아 악순환이다. 마치 쿠데타처럼 그 나라의 장애물이다.
윤석열 대통령을 1호당원으로 모셨던 국민의힘이 비몽사몽, 거의 그로기 상태다. 이해할 만하다. 그날 그 친위쿠데타가 무슨 역사적 사명이었는지 누구도 여전히 모르기 때문이다. 친윤(親尹) 언더가 30명이란 소리도 들리고, 당을 떠나라는 소리에 '니가 가라 하와이'로 맞받아친다. 막장까지 왔는가. 쿠데타는 18세기 유럽을 풍미하던 '계몽'이란다. 누가 누구를 계몽하는지도 알 수 없다. 물론 구타유발자는 있슴직 했다. 그렇다고 약올리는 자들을 모두 잡아들이라면 문명국가가 아니다.
나는 그날 계엄령 생방송을 잊을 수 없다. 젊은 앵커는 몸이 얼어붙었다. 언변이 약하기 때문이 아니다. 미증유의 현실을 목도한 때문이다. 그나마 장년의 앵커는 풀어나간다. 그 간격은 크다. 우리가 어떻게 쌓은 대한민국인가. 가혹한 처벌은 불가피할 지 모른다. 지하주차장으로 출두하겠다는 것은 흩날리는 봄날의 한 톨 꽃가루 보다 더 가볍다. 윤석열 대통령과 그 변호인들은 그 차이를 알아차려야 한다. 윤희숙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말했던가. 지난 겨울 정변은 추억이 될 수 없다. 계몽인지 악몽인지 분간해야 한다. '윤 어게인'도 불가능하다. 물리 법칙이 그렇다. 유감스럽지만 역사는 추상처럼 흐르고 있다. 이쯤되면 미련을 버려야 한다.
12.3 겨울초입 친위쿠데타
중종과 조광조를 떠올리는
배신과 척결의 궁중드라마
누가 누구를 계몽하는지
이쯤되면 미련을 버려야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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