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대한민국 많이 컸네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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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8-04 07:53  |  발행일 2025-08-04
박재일 논설실장

박재일 논설실장

트럼프가 내지른 관세(Tariff) 협상은 여러 상념을 불러 일으킨다. 세계 최강국, 국민소득 9만 달러의 미국이 악착같이 돈을 더 벌겠다고 나선 것은 일종의 허탈감이다. 하기야 이건 협상이 아니다. 뉴욕타임즈를 비롯한 미국내 언론에서조차 그랬듯 트럼프의 '협박(Threat)'이다.


이래 저래 기분이 묘하지만 그래도 '한국이 많이 컸다'는 역설로 그 기분을 달랜다. 우리가 언제부터 미국의 강력한 견제구를 받아야 하는 나라가 됐나 하는 일종의 '국뽕' 같은 자부심이다. 펀드, 대출, 정부 지급보증 같은 자세한 내막은 별개로 하고, 어쨌든 한국이 4천500억 달러, 물경 620조원을 미국에 투자한단다. 그것도 관세 0%를 15%로 올리면서...물론 한국은 지난해 미국에 수출해서 660억 달러를 더 벌었다.


지금의 2030 세대는 기억에 없겠지만 장년층이라면 알 것이다. 그들이 학생시절 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어쩌면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캐치프레이즈가 될 지 모를 비전을 내걸었다. '100억 달러 수출, 1천 달러 국민소득'. 1970년대 초반이었다. 달러 가치 하락은 별개로 하고 지금 트럼프에게 안겨주겠다고 금액의 40분의 1 정도가 국가 전체 수출 목표였다. 그만큼 우리는 성장했다.


또 하나 묘한 대목이 있다. 이번 관세협상에서 최고의 아이템은 조선이란다. 트럼프는 오래전 한국을 찾아 조선소를 둘러볼 만큼 한국 조선업에 심취했었다. 지금 미국 조선업은 엉망이다. 설계는 하는데 만들줄 모른다. 이걸 파고 들어 트럼프 마음을 돌렸다나. 이른바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다. 한국이 나서 미국에서 투자하고 배를 만들고, 유지보수(MRO)까지 해주겠다는 약속이다. 조선업은 박정희가 중화학 공업이 나라를 부강하게 한다는 원칙에 따라 시작한, 당시로서는 산업혁신이었다.


15% 관세에 감지덕지 한 걸 견주면 과거 한·미 FTA는 금자탑 같다는 느낌도 있다. 지금의 민주당은 협정 비준에 극렬 반대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당시 '광우병 소요'도 지금 와서 보면 한심한 풍경이었다. 이번에 소고기 수입 문제가 민감한 이슈라 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30개월령 이상 소고기는 이제 미국에서도 잘 생산하지 않는단다. 한국은 이미 미국 소고기를 가장 많이 먹는 나라중 하나가 됐고, 개방해 봐야 더 들여올 것도 없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라는 대한민국은 솔직히 미국에 많은 빚을 지고 성장했다. 인텔, 퀄컴,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같은 회사에서 보듯 반도체는 원래 미국 작품이다. 환경문제와 노동 생산력이 떨어지자 이를 일본에 줘버렸다. 일본도 급성장 한 뒤 소홀히 했고, 그게 한국으로 넘어왔다. 미국은 군함처럼 반도체의 원리는 장악하지만, 만들기 힘든 나라가 됐다.


이재명 정부 요직에 들어간, 혹은 국회 좌석을 차지한 이들 중 많은 인사들이 한 때는 반미(反美), 매판자본 미제국주의를 외쳤다. 미 대사관에 난입해 방화하고 사제폭탄을 터뜨린 학생이 집권여당 대표가 됐다. 그 미국을 상대로 약간의 굴욕적 협상을 이 정부는 첫 과제로 맞았고 겨우 정리했다. 아른거리는 대목이 있다. 트럼프가 협상타결 직후 쇼셜미디어에 던진 글이다. "그들을 만나 그들 국가(한국)의 위대한 성공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물론 립서비스 일 것이다. 그래도 우린 포착해야 한다. 트럼프의 '위대한 성공'이란 찬사를 우린 지금 누구에게 되돌려야 하는지...



4천500억 달러 내지른 한국


박정희 시대 100억 수출 목표


트럼프가 말한 '위대한 성공'


조선업과 반도체의 대한민국


그 성장의 뒤안 길엔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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