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보라 작가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주저 없이 독서라고 대답한다. 여행이 잠시 독서를 넘어뜨리고 올라선 적도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취미는 독서다. 어릴 때부터 어린이날 선물을 고르라고 하면 부모님의 손을 끌고 서점으로 갔다는 나는 참 얌전한 아이였다. 당시에는 아이가 책을 좋아한다고 하면 부정적인 의미로 '내성적이다'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 어린 나이에도 나는 어른들의 표현이 무지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은 일반 도서관 외에 어린이 도서관이 따로 생길 정도로 아이에게도 책을 권장하는 분위기가 되어 기쁘다.
누군가 "독서는 단순히 지적 허영심을 채우기 위한 일이 아닌가"라고 물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순수하게 책 읽는 것이 즐겁다. 책을 사기 위해 서점을 기웃거리는 과정, 수많은 책이 모여 만들어내는 탁한 종이 냄새, 표지에서 목차로 넘어갈 때의 서로 다른 질감까지. 물론 반나절을 잡아먹는 서점 탐방 끝에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한다.
최근에는 K양에게 추천받은 최은영 작가님의 '밝은 밤'을 읽었다. 나는 독서 취향이 편협한 편이라 소설, 그중에서도 외국 소설을 가장 즐겨 읽는다. 그래서 때때로 나와는 다른 취향의 책을 추천받으면 꼭 읽어보려 노력한다. 내게 '밝은 밤'을 추천한 K양은 이 책이 너무 슬퍼서 펑펑 울었다고 했다. 눈물샘이 상당히 굳건한 나는 책은커녕 영화를 보고도 잘 울지 않는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무언가를 보고 울지 않는다는 사실에 괜한 자존심을 세운 게 아닌가 싶다.
불현듯 원고를 쓸 때 담당자님이 "작가님, 이번 화를 보고 펑펑 울었어요. 아버지 이야기가 얼마나 슬프던지요"라고 하신 말에 감동을 받았던 일이 떠올랐다. 내 글을 보고 펑펑 운 담당자님도, 그 슬픔을 내게 기꺼이 표현해 준 담당자님도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시간이 흐를수록 감정 표현에 솔직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K양이 '밝은 밤'을 읽고 펑펑 운 부분을 단숨에 알아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책을 읽을 때 딱히 '일 년에 몇 권을 읽자!'라는 목표치를 세워두지는 않는다. 하지만 작년에는 총 60권의 책을 읽었고, 벌써 3분의 2지점이 흐른 올해는 아직 31권밖에 읽지 못했으니 벌써부터 아쉬운 마음이 든다. 바빴든 게을렀든 책에게 내어준 내 시간이 너무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작년에는 '천선란' '김금희' '최재천' 작가님 세 분을 만난 것이 너무 행복한 한 해였다. 올해도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책을 많이 만나서 기쁘지만, 아직 그 기쁨을 느낄 시간이 남았고 책 읽기의 적기인 가을이 다가왔다는 사실이 나에게 또 다른 행복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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