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현주 대구미술관 커뮤니케이션 팀장
어느 날 지인이 내게 삶의 깊은 고백을 건넸다.
"2019년 7월, 암 4기 판정을 받았어요. 대장에서 시작해 직장으로, 다시 간으로 번졌죠. 수술을 하고, 항암치료만 서른두 번을 받았습니다.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손발은 까맣게, 한여름에도 오들오들 떨었어요"
그는 담담히 말했지만, 그 무게가 얼마나 컸을지 나는 쉽게 가늠하기 어려웠다.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항암은 몸의 세포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 손가락 마디마다 통증이 퍼지고, 음식 냄새에도 속이 울렁이며, 때로는 숨 쉬는 일조차 버겁다. 그 시절 그는 매일같이 죽음의 그림자와 마주 앉아 있었다.
그런데 이야기는 뜻밖의 장면으로 이어졌다. "그 힘든 시기, 미술관에 가면 마음이 편해졌어요. 작품들이 꼭 살아 있는 것 같았거든요."
그의 미술관 기억 중 손꼽는 순간은 강요배 화백의 '수풍교약' 앞에 섰을 때다. 전시장 한 벽을 가득 메운 바다 풍경, 제주도의 거센 파도와 휘몰아치는 바람이 화폭 위로 힘차게 몰려왔다. 캔버스 너머에서 몰아치는 바람결이 피부를 스치고, 파도 부서지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그 앞에서 그는 더 이상 암 환자가 아니었다. 죽음의 공포에 짓눌린 몸이 아니라, 거친 바다와 함께 호흡하는 한 사람으로 다시 서 있었다. 작품은 곁에서 함께 숨 쉬며 "괜찮다" 속삭이는 듯했다.
저속노화란 어쩌면 바로 그런 순간 깃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몸이 늦게 늙는다는 뜻만이 아니라, 마음의 시간을 천천히 되감는 힘. 예술은 그 시계를 '죽음'이 아닌 '삶'에 맞추도록 도와준다.
삶을 지켜내는 힘은 멀리 있지 않다. 조용한 전시실, 한 점의 그림, 그리고 그 앞에서 깊게 들이마신 숨. 그 순간이 우리를 다시 살아가게 한다. 앞선 기술의 치료법이나 처방만이 삶을 붙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까이에서 만나는 예술의 울림, 그것이 몸과 마음을 함께 지켜주는 축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완치한 그는 지금도 시간을 내어 미술관을 찾고, 책을 읽고 공부하며, 독서 모임에도 참여한다. 운동도 꾸준히 이어간다. 그렇게 예술과 배움을 삶에 끌어안는 태도는 그의 시계를 오늘도 조용히 늦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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