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상준 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추석이 다가오니 부모님 산소를 벌초해야 한다. 신고 갈 등산화를 찾았다. 오래 신어 밑창이 벌어져 신발장에 방치했다. 헌 등산화를 버리고 새것을 구매하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다. 신발용 접착제로 정성껏 붙였다.
오래전 주택에 살 때다. 골목 입구에 '구두 병원'이란 신발 수선(修繕) 가게가 있었다. 주인이 선천성인지 어릴 때 다쳤는지 오른쪽 다리가 몹시 불편하다. 걸을 때마다 상체가 많이 흔들린다. 가게는 한쪽 벽면에 각목으로 만든 진열대가 있고, 반대편 벽 아래 놓인 나무 상자 위에는 신발 수선에 필요한 연장들이 보인다. 도로쪽 유리창에 '구두 병원'이란 글자를 중심으로 '남녀구두 통굽 갈이, 창갈이, 구두 수선, 구두 닦아줍니다' 하는 글씨가 붙어 있다. 참 소박한 모습이다.
골목을 드나들 때마다 '구두 병원' 상호에 시선이 쏠린다. 병원은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곳이다. 대체로 몸이 아프면 얼굴빛이 어둡다. 의사의 치료를 받아 질환이 낫는 환자는 모습이 밝다. 구두도 신다가 발이 불편하거나 통증을 느끼면 수선받아야 한다. 신체의 일부인 발의 아픔을 없애는 것도 병을 치료하는 것이다. 헌 구두를 고쳐 신고 나오는 손님의 밝아진 표정이 '구두 병원'을 돋보이게 한다.
가게 주인은 다리 장애로 일을 앉아서 하는 게 수월하다. 구두 수선은 의자에 앉아서 할 수 있고 작업 공간이 넓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이 기술을 배우지 않았나 싶다. 가끔 손님들과 환담하거나, 혼자 차를 마시며 휴식하는 모습이 참 평화롭다.
'구두 병원' 우연이 지은 상호가 아닌 듯하다. 장애인으로 세상살이에 많은 불편을 겪었다. 자신(自身)의 장애를 완치할 수 없는 의술에 회의도 느꼈으리라. 비록 구두가 생명이 없을지라도 수선해 그것을 신는 사람의 불편과 고통을 덜어준다면 의사가 환자의 질병을 다스리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다.
그즈음에 골목을 드나들다 보면 가게 안에서 웃음소리가 자주 들린다. 수선할 구두가 많아 기분이 좋은가 보다. 가게 주인의 일하는 모습이 참으로 진지하다. 의사가 환자를 돌보듯이 구두를 닦고 고친다.
헌 등산화가 생각보다 깔끔하다. 오늘은 나도 신발 수선 장인(匠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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