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엄마, 피아노 배워볼래?

  • 문현주 대구미술관 커뮤니케이션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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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9-25 06:00  |  발행일 2025-09-24
문현주 대구미술관 커뮤니케이션 팀장

문현주 대구미술관 커뮤니케이션 팀장

"꼼지야. 자연스러운 노화겠지만, 엄마가 자주 깜빡깜빡하시네. 아직 경험하지 못한 걸 경험하게 해드리고 싶어. 새로운 걸 배우면 뇌가 반짝이지 않을까 싶은데, 시니어 대상으로 피아노 가르쳐 주는 곳이 있을까?" 잠시 뒤 꼼지의 디엠이 도착했다.


"언니, 괜찮다면 제가 한번 해드려 볼까요?"


아이들에게 피아노가 뇌 발달에 좋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노년의 엄마에게도 작은 자극이 되어주지 않을까. 엄마는 딸의 제안에 "말라꼬!" 하시며 웃음 섞인 손사래를 치셨지만, 나는 이미 건반 앞에 앉아 서툰 손끝으로 첫 음을 눌러보는 엄마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피아노는 눈, 손, 귀 등 다양한 신체 기관을 활용하는 복합적 활동이다. 이 과정에서 전두엽과 해마, 소뇌가 동시에 자극을 받아 기억력과 집중력, 신체의 균형감각까지 깨어나는데, 이는 뇌의 놀라운 능력인 신경가소성 덕분이다.


새로운 시냅스를 만들어 회로를 재구성하는 '구조적 변화'와 약해진 기능을 다른 회로가 대신하는 '기능적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면서, 뇌는 마치 새로운 길을 내듯 뇌의 퇴화에도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적응한다. 특히 음악 훈련은 해마와 전두엽의 기능을 높여 기억과 계획 능력을 강화하고, 소뇌의 협응을 자극해 균형감각을 회복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도 보고되고 있다.


피아노는 단순한 '손운동'이 아니다. 악보를 이해해 손끝으로 표현하며, 귀로 반향되는 소리를 듣는 과정은 뇌, 신체가 동시에 참여하는 전인적 경험이다. 이는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몰입을 제공한다. 뇌과학자들이 "음악은 뇌를 위한 전신운동"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건반 앞에서 만들어지는 작은 선율 하나가, 노년의 뇌에는 새로운 활력과 회복의 하모니로 울려 퍼지는 것이다.


어쩌면 엄마에게 피아노는 또 다른 삶의 모험일지 모른다. 여행처럼, 낯선 음식처럼, 아직 경험하지 못한 악기를 마주하는 순간. 건반 위에서 깜빡거리는 기억이 다시 빛을 찾고, 느리고 더딘 손끝에서 오래된 멜로디를 불러낼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이 듦은 느림이라는 새로운 선율의 시작이다. 엄마가 건반 위에서 치는 첫 음은 서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백건우의 아다지오처럼 오래도록 깊게 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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