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현주 대구미술관 커뮤니케이션 팀장
대구미술관 1층 전시장. 묵직한 여백 위로 선이 흐르고, 바람 같은 붓질이 멈춘 듯 이어진다. 그 앞에 서 있으니 한 가지 생각이 불쑥 깃든다. '83세의 작가가 여전히 실험을 계속한다는 건 어떤 마음일까?' 이강소 작가의 '曲水之遊 곡수지유: 실험은 계속된다' 전시는 그런 질문으로 시작해, 결국 '젊음의 본질'에 닿게 만든다.
작가는 한국 실험미술의 초창기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회화와 행위, 설치를 오가며 형식을 해체했고, 완결보다 과정의 긴장을 택했다. 이번 전시에서도 작가는 여전히 '새로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붓질은 자유롭고, 재료는 경계를 잃은 채 섞인다. 그 속에는 나이와 상관없이 변화를 향한 의지가 유유히 흐른다.
전시 보는 내내 생각이 이어졌다. '이토록 오래 새로워질 수 있는 이유가 뭘까.' 그건 단지 예술적 열정뿐만 아니라 뇌의 유연성과 관계된 일일지도 모른다. 뇌과학자들은 새로운 시도와 경험이 신경가소성을 높여 노화를 늦춘다고 말한다. 익숙함을 벗어나 새로운 연결을 만드는 뇌는, 그만큼 젊게 머문다. 이강소의 '계속되는 실험'이야말로 저속노화(slow aging)의 아름다운 예술적 증거일 수 있다. 그의 화면 앞에서 눈이 머무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계획된 질서보다, 우연과 흐름이 살아있다. 그 자유는 단순한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태도다. 전시장 수많은 이강소 작품 앞에서 낯선 선의 흐름과 호흡을 따라가는 순간, 내 뇌도 잠시 다른 회로를 켜는 듯했다. 예술은 결국 생각의 근육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추석 연휴의 끝자락, 일상의 자리로 돌아가기 전 이 전시를 마주한다면 좋겠다. '실험은 계속된다'는 전시 제목은 예술가의 선언이자, 우리에게 건네는 다정한 권유처럼 들린다. 나이와 상관없이, 생각을 흔들고 감각을 새로 쓰는 일, 낯선 시도를 두려하지 않는 태도. 어쩌면 젊음을 지키는 가장 예술적인 방법일 지도 모르겠다. 곡수처럼 굽이쳐 흐르되, 멈추지 않는 마음. 그 마음이 우리 모두의 뇌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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