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철희 수석논설위원
우려가 현실이 됐다. 결국 '탈(脫)원전 시즌2'가 방영될 전망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사실상 '탈원전'에 손을 들어준 탓이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는 형식을 빌려서다. 속편이 나오지 않길 바랐던 많은 이들은 이 대통령의 실리 추구 기조에 기대를 걸었지만, 희망회로에 불과했다. 애당초 탈원전파로 꼽히는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에 에너지 분야 지휘권을 맡긴 것 자체가 기존 정책에 큰 변화가 있음을 시사한 대목이다. 이 대통령의 인식 또한 탈원전파와 궤를 같이한다. "짓는 데 15년 걸리는 원전은 AI 시대 대안이 아니다. 쓸데없는 원전 논란하지 말고, 현실적으로 1~2년 내 전력 공급이 가능한 태양광과 풍력을 건설해야 한다"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신규 원전 2기와 소형모듈원전(SMR) 1기 도입은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지만, 정부 내에선 반향 없는 메아리에 그친다. 정부는 신규 원전 도입 계획을 철회하고 이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것을 골자로 한 에너지 수급 계획을 내놓을 작정이다.
탈원전 시즌2의 조짐에 산업계의 근심은 커진다. 하지만 이보다 지방의 산업도시들은 더 좌절한다. 이들 도시는 원전산업을 지역소멸을 구원할 이른바 '동아줄'로 여기고 있다. 탈원전파가 그렇게 혐오하는 원전에 지방이 목을 매는 이유는 간단하다. 원전이라도 유치해야 소멸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원전은 방산과 함께 수도권이 유치를 꺼리는 몇 안 되는 '돈이 되는 산업'이다. 지방의 많은 지자체가 SMR과 방산을 차세대 육성산업으로 채택, 이 분야 국가 프로젝트 유치에 이전투구를 하는 상황이다. 수도권의 '버린 자식'이 지방에선 구세주로 환대를 받으니 역설도 이런 역설이 없다.
당장 경북도의 동해안 에너지산업벨트 프로젝트가 난관에 부딪혔다. SMR을 비롯한 원전산업 육성이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경주 SMR 국가산업단지 조성 역시 위축될 공산이 크다. 여기다 SMR을 통한 포스코의 저탄소 철강설비 완성과 탄소중립형 전력원 확보에도 직격탄을 맞게 됐다. 울산 역시 원전을 바탕으로 한 'AI 수도' 프로젝트에 차질을 빚지 않을지 전전긍긍한다. 원전의 값싼 전력을 바탕으로 신산업을 키워보겠다는 지방의 야심찬 구상이 한순간에 무너지게 된 셈이다. 원전 생태계가 붕괴하면, AI 시대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중요한 원천을 잃게 된다. 이 대통령이 애착하는 태양광과 풍력이 원전의 경쟁력을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은 미국과 유럽의 사례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탈원전 시즌2는 지방의 산업 부흥에 치명타다. 이 대통령의 "균형발전은 선택이 아닌 운명"이라는 외침이 공허한 수사처럼 들리는 이유이다. 원전 대신 태양광과 풍력이 지방경제의 구원투수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는 그와 탈원전파의 희망회로일 뿐이다. 태양광, 풍력이 탄소중립을 위해 가야 할 길은 맞다. 그렇지만, 원전 또한 무탄소 에너지인데 굳이 지방소멸의 동아줄을 희생하면서 강행하는 게 올바른 정책인지 의문이다. 그것도 유럽에서 실패로 판명이 난 정책을.
지방소멸 시대, 지역이 원하는 것은 단지 사람과 일자리만 있다면 궂은일이라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점이다. 그게 원전이건, 방산이건 가리지 않을 만큼 다급하다. 지방의 애타는 심정을 이 대통령이나 탈원전파가 조금이라도 이해해준다면 더 바랄 게 없다.
정부 탈원전으로 전환 조짐
원전 바탕으로 신산업 추진
지방도시들 구상에 치명타
원전이라도 유치해야 하는
지방의 절박함 알아줬으면

윤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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