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메일] 행동경제학의 탄생과 인지적 오류의 사회적 파장

  • 배정순 〈전〉경북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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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11-23 18:58  |  발행일 2025-11-23
배정순 〈전〉경북대학교 초빙교수

배정순 〈전〉경북대학교 초빙교수

1960~70년대 경제학의 주류는 인간은 주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완벽하고 합리적으로 최적의 의사 결정을 내리는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로 가정했다. 인간은 효용 극대화를 지향하는 완벽한 행위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 캐니먼은 이런 기대와 달리 인간의 의사결정과정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발견하고 경제적 의사결정 모델에 도입해 행동경제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창시했다. 대표작 '생각에 관한 생각 (Thinking, Fast and Slow)'은 인간의 사고는 빠르고 직관적인 체계와 느리고 합리적인 체계로 나누고 일상적으로는 빠르고 직관적인 지배를 받기 때문에 인지적 편향에 취약하다는 점을 대중적으로 알렸다. 사람들은 일관성 없고, 체계적인 실수를 반복했다. 그는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경제학 학위가 없는 심리학자 출신으로 불확실성 하의 인간의 판단과 의사결정에 관한 연구인 '전망 이론(Prospect Theory)'으로 행동경제학 분야를 정립하면서 그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전망 이론은 인간이 이득에서 얻는 만족감보다 동일한 크기의 손실에서 2.5배 더 큰 고통을 느낀다는 손실 회피(Loss Aversion) 성향을 밝혀냈다. 이 비합리적 감정은 주식시장을 지배한다. 투자자들은 손실을 확정하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객관적인 가치가 사라진 주식이라도 계속 보유한다. 반대로 이익을 보고 있는 우량주는 손실로 돌아갈까 두려워 너무 일찍 매도하여 수익을 놓쳐버리곤 한다. 만약 모든 사람이 완벽하게 이성적이라면, 이러한 감정적 오류 없이 기회비용을 계산해 시장에 즉각 반영할 것이며, 주식 시장의 비자발적 활성화나 변동성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우리의 비합리성이 시장을 움직이는 핵심 동력인 셈이다.


돈을 잃는 고통을 피하려는 손실 회피 심리가 투자를 왜곡하듯, 사람들은 자신의 세계관과 신념을 잃지 않으려는 강렬한 심리적 방어 기제로 정치나 사회적 판단을 마비시킨다. 경제 영역의 비합리성이 손실 회피였다면, 사회적 갈등 속에서는 '닻 효과'와 '확증 편향'이라는 인지적 오류로 나타나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를 초래하고 있다. 캐니먼의 닻효과(Anchoring Effect)와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 바로 그 예이다. 닻효과는 정치영역에서는 좌표찍기로 나타난다. 가장 먼저 제시된 정보나 초기 인상 혹은 프레임에 고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문제는 좌표가 찍히면 우리는 그것이 옳다는 것을 필사적으로 증명하려하고 확증편향이라는 또다른 인식오류에 빠지게 된다. 본인이 옳다고 생각되는 것에 대한 뉴스나 활동에 몰입하다 보면 정작 확인된 합리적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인식의 오류에 갇혀버리고 만다. 요즘 SNS상의 '필터버블(Filter Bubble)'과 알고리즘은 이러한 확증편향을 더욱 가속화 시키고 있다.


요즘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이야기하기가 두렵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과거 군부독재시기에는 비록 권력의 눈치를 보고 두려워할지언정 삼삼오오 모여 정의를 이야기하고 민주주의를 나누었다. 정작 민주화와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룬 현시점에서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검열과 감옥에 갇히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된다. 다니엘 캐니먼의 연구가 밝혀냈듯이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며 언제든 인식의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집단지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 존재를 서로 존중하고 신뢰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실수할 수도, 잘못된 판단을 할 수도, 인식의 오류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눈과 귀를 닫고 자신만의 세계에만 빠져서는 안 된다. 우리는 자신의 이성에 대한 오만함을 버리고 스스로의 인지적 오류를 인정해야 한다. 합리적 사회, 모든 문제의 해결은 올바른 자각에서 출발한다. 철학자들은 모든 것에 물음표를 던지라고 말한다. 내가 듣고 말하는 이것이 과연 바른 것인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끊임없는 질문이 이 인식의 오류에 방패막이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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