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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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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독도 파노라마 (6)] 독도박물관 24주년- (하) 6~20세기 한·일·러 고지도 전시 우리땅 입증
독도박물관은 울릉도·독도와 동해를 둘러싼 관련 자료를 발굴·수집·연구하며, 그 결과를 바탕으로 전시·관리·교육·홍보를 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자료와 이론의 토대를 구축하는 동시에 국민의 영토 의식과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박물관 외관은 독도의 옛 이름 '삼봉도(三峯島)'의 이미지를 본 떠 세 개의 큰 바위와 동해의 푸른 바다를 형상화한 연회색 화강석과 푸른 유리로 만들어져 있어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이 독도를 연상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독도박물관은 울릉군이 부지를 제공하고 삼성문화재단에서 지어 헌납, 1997년 8월8일 개관했다. 개관 당시 대지 8천68㎡, 전체면적 1천600㎡,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건물에 3개의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 자연생태 영상실 등을 갖췄다.2016년 개관 20주년을 맞이한 독도박물관은 낡은 전시시설을 첨단화하고 질 높은 전시 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해 20여 억원을 들여 기존의 주요 전시실을 개축해 재개관했다. 관람객들이 독도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낡은 전시시설을 정비하고 음성 및 입체영상 등 디지털 다중정보전달방식 시스템을 구축했다. 또 다양하고 첨단화된 전시가 가능한 시설로 탈바꿈했다. 고지도·고문서 등 인문사회과학 위주의 기존 전시공간에 독도의 동식물과 지질환경, 해양자원 등 자연생태 분야의 전시공간과 체험시설도 추가로 갖췄다.제1전시실과 2전시실에는 테이프를 빨리 감는 기법을 사용해 독도의 하루를 40초로 줄여서 보여준다. 또 독도를 방문했지만 볼 수 없는 곳은 VR로 볼 수 있게 준비돼 있다. 또 서기 512년부터 1900년대까지의 우리나라와 일본, 그리고 러시아의 고지도와 각종 문헌이 전시돼 있어 우리의 고유영토로서 독도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제3전시실에는 독도의 어장을 관리하는 독도리 이장인 고(故) 김성도 씨, 타국의 위협으로부터 독도의 안전을 지키는 독도경비대, 그리고 독도를 대상으로 한 국민의 다양한 활동상 등이 전시돼 있다. 제4전시실에는 독도의 식물과 조류·어류 등 독도의 생태를 사진으로 볼 수 있으며, 대형 화면을 통해 독도의 자연환경을 보여주는 영상 코너가 마련돼 있다.영상실에는 독도의 자연, 일본의 불법적 영유권 주장의 문제점 등 독도와 관련한 다양한 영상을 볼 수 있다. 특히 미국인 험프리렌지가 1960년대 말 울릉도에 거주하며 울릉도 주민들의 생활상을 영상으로 기록한 독립영화 'Out There A Lone Island'를 주제별로 선택해 감상할 수 있다.독도박물관 주변에는 야외 독도박물관도 마련돼 있다. 울릉도 자연석 828개로 만들어진 조경 시설과 편의시설이 마련돼 있어 관광객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또 개관 5주년을 맞이해 대마도가 우리 땅이었다는 증거인 '조선국 지리도'가 새겨진 '대마도표석비'가 있다. 우리 땅이었던 대마도가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져 지금은 일본 땅이 된 것처럼 독도도 우리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버리면 대마도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주는 비석이다.우리 영토를 수호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탄생한 독도박물관. 일본의 독도 침탈 시도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이제는 말보다 행동'으로 독도를 수호해야 한다. 독도를 수호하고 사랑하는 첫걸음은 국민이 독도와 함께 독도박물관에 관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꾸준히 방문하는 것이다. 이경애〈울릉군 문화관광해설사〉 정용태기자 jyt@yeongnam.com독도박물관 입구.독도박물관 영상관에 마련된 미국인 험프리렌지 영상실.독도박물관 야외박물관에 세운 대마도표석비.
울릉도 여행객 코로나19 확진...접촉 섬주민 14명 검사 등 '비상'
경북 울릉도를 여행한 관광객이 코로나 19에 확진된 것으로 알려져 울릉군에 비상이 걸렸다. 12일 울릉군에 따르면 확진자 A 씨는 지난 8일 울릉도를 떠난 후 미열·기침 등 이상증세를 보여 10일에 경남지역 선별진료소에서 검사를 받아 11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군은 A 씨의 울릉군 내 동선을 파악해 역학조사에 주력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파악된 지역 내 접촉자는 밀접접촉자 6명과 단순접촉자 8명 등 총 14명이다. 접촉자들은 모두 자가에서 대기 중이며, 접촉자들의 검사 결과는 12일 밤이나 8월 13일 새벽에 나올 예정이다. 정용태 기자 jyt@yeongnam.com
동해해경청, 기상특보 속 울릉도 응급환자 2명 긴급이송
동해지방해양경찰청은 11일 동해 해상에 풍랑특보가 발효 중인 가운데 울릉도 응급환자 2명을 긴급 이송했다. 동해해경청은 이날 오전 7시 39분쯤 경북 울릉의료원으로부터 부정맥 응급환자 70대 A 씨와 심방세동 응급환자 70대 B 씨 등 2명을 육지 대형병원으로 긴급 이송이 필요하다는 요청을 받았다. 이날 동해 해상에는 풍랑특보가 내려져 파도가 높고 기상이 불량해 여객선이 운항하지 못하고 있었다. 신고를 접수한 동해해경청은 환자 상태를 고려해 양양항공대 소속 회전익항공기(헬기)를 급파, 오전 8시 57분쯤 응급환자를 헬기에 태워 오전 9시 50분쯤 강릉 공군기지에 대기 중인 강원 소방 119구급차에 인계했다. 환자는 강릉 아산병원으로 이송됐다. 동해해경 관계자는 "24시간 상시 대기 태세로 도시지역과 해상에서 발생하는 응급환자의 생명을 보호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한편, 올해 동해해경청에서 울릉도 응급환자를 이송한 횟수는 총 28회 31명(경비함정 8회 10명, 헬기 20회 21명)이다.정용태 기자 jyt@yeongnam.com동해지방해양경찰청이 11일 울릉도에서 발생한 응급환자 2명을 헬기를 이용해 육지로 긴급 이송 중이다.
울릉군 상징하는 군어(郡魚) 선정한다.
경북 울릉군이 울릉군을 상징물의 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해 군어(郡魚) 지정을 위한 설문조사를 실시한다. 군은 주민과 관내 공무원을 대상으로 이달 11일부터 24일까지 14일간 울릉군 홈페이지 온라인과 군청 민원실, 읍·면사무소 및 출장소에 비치된 설문지를 통한 조사를 병행한다. 이번 설문조사를 통해 수렴된 의견은 울릉군 군어 지정의 기초 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며, 향후 관련 조례 개정 절차를 거쳐 최종 선정된다. 군어 후보로는 오징어·꽁치·독도새우 등이 올랐으며 그 외 다른 물고기를 추천해도 된다.울릉군 관계자는 "군어를 지정을 통해 홍보 효과를 높이고 다양한 콘텐츠 개발로 부가가치 창출 및 지역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말했다. 정용태 기자 jyt@yeongnam.com
[미리보는 내년 6·1 지방선거] 울릉군수 '김병수 군수 VS 남진복·남한권·정성환' 국민의힘 주자 4파전
보수 텃밭인 경북, 그중에서도 울릉군은 인구 9천여 명 중 비교적 보수 성향이 강한 노인층 유권자 비율이 70%를 차지하고 있어 국민의힘 공천이 당락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지금까지 무소속 후보가 두 번이나 당선된 전력도 있어 국민의힘 공천에서 배제된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할 가능성이 크다포항∼울릉 간 대형 쾌속 여객선 도입 등 울릉도 현안 사업과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관광객 감소로 인한 침체한 지역 경제를 구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 및 실천 방안을 제시하는 후보에 주민들이 손을 들어줄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김병수 군수가 재선을 노리는 가운데, 남진복 경북도의회 의원, 남한권 예비역 육군 준장, 정성환 울릉군의회 의원이 도전장을 내미는 형국이다. 울릉의 강한 보수 성향 탓에 4명의 후보 모두가 국민의힘 공천을 희망하고 있다. 공천을 받지 못한다 해도 무소속으로 출마해 끝까지 완주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어 내년 울릉군수 선거는 4파전이 확실시되고 있다.김병수 군수는 재선 도전 의지를 강하게 보인다. 대형 쾌속 여객선 도입과 산적한 울릉군 현안 사업 등 울릉군 발전을 위한 '큰 그림'을 완성하려면 반드시 재선에 성공해야만 한다고 출마 배경에 관해 설명했다. 김 군수는 "올해 착공에 들어간 울릉공항의 성공적 마무리와 사동항 3단계, 울릉일주도로 3단계 공사 등의 추진으로 울릉도를 명품 관광도시로 만들겠다"라는 포부를 밝히고 재선 도전에 반드시 성공한다는 각오다.남한권 예비역 육군 준장은 김 군수의 재선 도전에 가장 먼저 도전장을 던졌다. 그는 이번이 두 번째 도전이다. 2018년 울릉군수에 무소속으로 출마 해 김병수 군수에게 고배를 마셨다. 지난 선거 패배를 딛고 새롭게 도전하는 남 예비역 준장은 울릉도 출신 첫 장성이라는 자부심과 함께 주민들 사이에서는 '곧고 바른 사람'으로 통할 정도로 신뢰를 쌓아왔다.남 예비역 준장은 "지난 선거 이후 누구보다 고향 발전을 바라는 마음으로 4년간 군민들과 교감하면서 군정을 지켜봤지만 발전된 것은 없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인기 영합을 위해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남발하기보다는 2025년 울릉공항 개항에 대비해 주민들이 피부로 직접 느낄 수 있는 구체적인 관광 인프라와 시스템 구축계획을 세워 강력히 추진해 주민 삶의 질을 한 단계 더 높인다는 사명감으로 지역을 발전시켜 나가겠다"라고 각오를 다졌다.남진복 경북도의원은 지난달 14일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나라와 백성을 위한 우국충정의 산문 제갈공명의 출사표를 음미하면서 못지않은 절절함과 비장함으로 우리 공동체를 위한 새 출사표를 쓰려 한다"라는 글을 남기며 울릉군수 출마를 공식화했다.남 도의원은 "20여 년의 오랜 행정 경험과 지난 7년간의 경북도 의정활동 성과를 바탕으로 쌓아온 인맥 등을 통해 울릉군의 발전을 위해 직접 발로 뛰는 현장 행정과 소통·공감의 통솔력으로 울릉군민이 주인인 시대를 열겠다"라며 도전장을 내밀었다.정성환 울릉군의원은 이미 수년 전부터 군수 출마를 저울질해왔다. 40세에 기초의원에 당선되고, 이후 내리 4선을 하며 두 번의 군의회 의장 등을 지낸 정 군의원은 15년 기초의원 경험을 바탕으로 울릉군수에 도전한다. 지역 각종 행사와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오면서 인지도를 꾸준히 높여왔다. 정 군의원은 "울릉군 행정에 대한 불만으로 상당수 주민이 현직 교체에 강한 열망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라며 "혁신과 그에 걸맞은 젊은 지도력의 필요성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 정신에 맞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 강력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울릉군 행정변화의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싶다"라고 말했다.정용태기자 jyt@yeongnam.com민경석기자 mean@yeongnam.com
[울릉도·독도 파노라마 (5)] 독도박물관 24주년- (상) 독도 사랑 실천 故 이종학 초대관장
우리나라에서 최초이자 유일한 영토박물관인 독도박물관. 맑은 날 독도가 바라보이는 울릉도 관문 도동항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기에 울릉도를 찾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둘러볼 수 있다. 독도가 한국 땅임을 알리기 위해 세워져 올해로 개관 24주년을 맞은 독도박물관에 대해 2회에 걸쳐 알아보기로 한다.'독도'하면 자연스럽게 독도 이장 고(故) 김성도씨를 떠올리듯 울릉도 주민들에게 독도박물관 하면 초대 관장이었던 고(故) 이종학 관장을 손에 꼽는다. 독도박물관은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울릉군이 부지를 제공하고, 삼성 문화재단이 80억원을 들여 건물을 지어 울릉군에 기부해 1997년 8월8일 개관했다.박물관 입구에는 한자와 한글로 된 '獨島博物館(독도박물관)'이라는 큼지막한 글이 아로새겨진 비석이 있다. 독도박물관 초대 관장이었던 이종학 관장이 개인재산을 털어 제작한 것이다. 비석의 한글체는 세종대왕의 '월인천강지곡'에서, 한문체는 이순신의 '난중일기'에서 집자했다.80년대 초부터 입증자료 수집재임기간엔 1300여점 기증日의 영토주장 반박에 힘써이종학 관장은 일본과 독도 영유권 분쟁이 뜨거워지기 훨씬 이전, 독도가 한국 땅임을 입증하는 자료를 준비해왔다.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그가 30년 동안 모은 독도 자료 351종(512점)을 바탕으로 고(故) 홍순칠 대장 유품, 독도의용수비대 동지회와 푸른독도가꾸기모임이 제공한 자료 등 귀중한 전시품이 모여 국내 유일의 영토박물관이 섰다. 또, 그가 초대 독도박물관장으로 재임한 기간에 독도박물관에 기증한 자료가 무려 1천300점에 달한다. 대부분 발품 팔고 사비로 모은 독도 사료였다. 독도박물관의 개관은 이종학 관장의 눈물과 땀으로 채워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종학 관장은 1980년대 초부터 독도에 관한 일본 측 자료를 수집하려고 수십 차례 일본을 왕래했다. 이 과정에서 수천 종의 사료적 가치가 귀중한 독도 관련 자료를 수집했다. 이를 배경으로 시마네현 관계자에게 독도가 한국 땅임을 강조했다. 1997년 독도박물관 초대관장을 역임했지만 2000년 5월 '지키지 못한 독도, 독도박물관 문 닫습니다'라는 현수막과 함께 독도박물관을 폐관시켜 독도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굴욕적 태도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다.당시 독도에 대한 한국 정부의 태도는 미온적이었다. 일본이 행정·입법·사법부를 총동원해 독도침탈 야욕을 대내외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그것이 그때 우리나라의 처지이자, 수준이었다. 그는 그것을 굴욕이라고 받아들였고, 박물관 폐관이라는 강수를 둔 것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독도박물관 관장에서 물러난 후 2001년 3월에 일제강점기와 관련된 자료를 사비를 털어 마련해 북한 평양 인민대학습당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2002년 11월 별세하기 전까지 올바른 역사 찾기 운동을 펼쳤던 이종학 관장의 가장 큰 업적은 많은 이들의 관심 밖에 있었던 독도에 대한 문제를 대내외적으로 알렸으며, 일본 측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자료를 모으는 데 평생을 바쳤다는 것이다. 특히 독도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 흩어져 있는 독도 자료를 발굴해 재정립하고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평생을 바쳐 노력했다.생전 '죽어 한 줌 재 돼도 우리 땅 독도 지킬 터'라는 좌우명처럼 독도에 대한 무한 사랑을 느낄 수 있고 이를 실행했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노력은 현재 독도박물관에 보관된 자료를 통해 독도의 한국 영유권 주장에 대해 뒷받침해 주고 있다. 울릉군민들은 이런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03년 6월12일 독도를 바라보고 있는 독도박물관 한편에 그를 추모하는 비석을 세웠다.이경애 〈울릉군 문화관광해설사〉정용태기자 jyt@yeongnam.com독도박물관 전경과 고(故) 이종학 관장(작은 사진).故 이종학 관장이 박물관 입구에 세운 비석.
"독도 동도와 서도 영상, 실시간으로 제공된다"
6일부터 독도의 생생한 모습이 실시간으로 제공된다. 경북 울릉군 독도관리사무소는 6일부터 독도 인근 재난사고 대응과 안전사고 방지를 위한 독도 입도 영상 시스템 영상 송출 서비스를 제공한다. 독도 입도 영상 시스템 구축사업은 독도에 CCTV와 전용 무선망을 구축해 독도와 독도 근해의 재난 및 안전사고를 미리 방지하고 독도 실시간 영상을 제공함에 따라 국민의 영토 수호 의지를 고취하고자 추진됐다. 독도 입도 영상 시스템으로 송출될 영상은 기존 KBS에서 제공하는 독도 실시간 영상과는 별도의 목적으로 활용되며 독도 서도지역만을 보여주는 KBS의 영상과 달리 독도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머무는 동도 지역도 함께 대국민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간 독도를 찾는 관광객들이 기상악화로 입도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했고, 입도 시에도 체류 시간이 짧아 관광객들이 독도 경관을 충분히 감상하기에는 아쉬움이 있었다. 독도 입도 영상 시스템에서 송출하는 영상은 해양수산부 홈페이지와 경상북도청 K-독도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울릉군청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울릉군 관계자는 "앞으로 제공하는 독도 실시간 영상이 독도 입도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데 다소 보탬이 될 것이며 각종 재해 대비방송 등에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정용태 기자 jyt@yeongnam.com독도 동도에서 바라본 서도의 모습
울릉도 추가 확진자 없어, 울릉군 '안도'
울릉도에 코로나 19 추가 확진자가 나오지 않아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울릉군은 지난 3일 코로나 19 확진 판정을 받은 4번째 확진자 울릉주민 A 씨의 밀접 접촉자 3명을 검사한 결과 전원 음성판정이 나왔다고 밝혔다. 군은 추가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아 일단 안도하면서도 14일간의 자가 격리 해제 전 진행하는 검사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울릉군재난안전대책본부는 "주민 A 씨 외에 추가 확진자가 없어 다행이다"라며 "주민들은 개인 방역수칙과 사회적 거리 두기를 철저히 준수해 청정 울릉을 함께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해 주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한편 4번째 확진자 A 씨는 3일 저녁 동해해경 경비함의 후송으로 감염병 전담병원인 포항의료원으로 후송돼 치료 중이며 현재까지 울릉군의 코로나 19 누적 확진자는 4명이다. 정용태 기자 jyt@yeongnam.com
울릉도에서 레미콘차량 전복, 70대 운전자 숨져
울릉도에서 레미콘 차량이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3일 경찰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30분쯤 경북 울릉군 서면 남양리 수층교 커브 길에서 레미콘 차량이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전복됐다. 이 사고로 운전자 A 씨(70대)가 출동한 119구급대에 의해 울릉의료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숨졌다. 경찰은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정용태 기자 jyt@yeongnam.com3일 오후 2시30분쯤 경북 울릉군 남양리 수층교에서 레미콘 차량이 전복돼 119구급대원이 사고현장을 수습하고 있다.
울릉도 5개월만에 코로나19 확진자 1명 추가 발생
지난 3월 3번째 확진자 발생 후 코로나 청정 지역을 유지하던 울릉군에 4번째 확진자가 발생했다. 울릉군에 따르면 4번째 확진자는 경기도 수원시 확진자의 접촉자로 통보를 받고 지난 2일 검체 채취 후 3일 확진통보를 받았다. 현재 울릉군에서는 역학조사 진행 중이며, 접촉대상자가 확인되는 대로 추가 검사를 진행할 예정이다.정용태 기자 jyt@yeongnam.com
[울릉도·독도 파노라마 (4)] 조선 조정의 수토 정책(하)...성하신당엔 슬픈 전설 속 동남동녀가…
조선 세종실록지리지에 나타나는 수토활동은 태종 12년(1412년) 강원도관찰사 보고에 의하면 울릉도에 11호 60여 명이 거주하고 소·말과 논은 없지만 콩·보리를 경작하고 해산물과 과일이 많다고 보고했다. 태종 17년(1417년) 안무사 김인우가 우산도를 조사하고 토산물을 조정에 바쳤다.세종 7년(1425년) 안무사 김인우의 2차 수토 때 수행원 46명이 실종되는 큰 사고가 발생했는데 그중 36명은 익사하고 10명은 표류하다 일본 대마도를 거쳐 조선으로 돌아왔다. 숙종 19년(1693년) 울릉도에서 안용복과 일본 어부들의 충돌로 조선과 일본 사이 외교분쟁이 발생해 이 사건 이후로 삼척 첨사 장한상이 수토관이 되어 이듬해 가을에 20일 동안 울릉도를 수토하면서 독도까지 돌아보고 왔다는 사실이 특이하다. 숙종 21년(1695년) 삼척 첨사 이준명이 울릉도 순찰을 회피한 이유로 관직에서 파면당했는데 이는 울릉도 수토 중 사망한 관리가 많아 이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울릉도 곳곳에는 수토 역사의 흔적들을 찾을 수 있는데 숙종 37년(1711년) 삼척 영장 박석창이 울릉도를 수토하고 바위에 수토사실을 새겨놓은 각석문이 있다. 울릉도의 관문 도동항에서 발견돼 울릉수토역사기념관에 전시하고 있으며 이는 울릉도 수토 역사를 잘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울릉군 서면 학포마을 암벽에는 검찰사 이규원 외 다수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임오명 각석문'이 남아 있다. 조선 고종 19년(1882년) 임오년의 기록으로, 울릉도의 근세 흐름을 금석문으로 입증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고종 19년에 검찰사 이규원은 15일 동안 울릉도 전체를 수토하고 그 보고서를 조정에 제출하면서 울릉도 쇄환정책(刷還政策)의 마침표를 찍었다. 본격적으로 울릉도를 개척하는 계기가 됐다. 울릉도 서쪽 끄트머리에 자리한 울릉군 서면 태하리엔 성하신당(聖霞神堂)이라는 옛날 서낭당이 있는데 여기엔 조선 쇄환정책 시기에 탄생한 한 편의 슬픈 전설이 전해온다.조선 초기 태종은 안무사 김인우를 보내 울릉도 주민들을 육지로 이주시키게 했다. 김인우는 섬사람들을 모두 모아 다시 육지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풍랑이 심해 돌아가지 못하던 중, 두 명의 남녀를 두고 가라는 꿈을 꾼 뒤 그대로 했더니 무사히 돌아갈 수 있었다.육지로 돌아온 김인우는 울릉도에 두고 온 두 사람이 생각날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8년 뒤 조정에서는 그에게 다시 안무사 직을 맡겼다. 울릉도에 도착한 김인우가 자신이 기거하던 곳으로 가보니 꼭 껴안은 동남동녀의 백골이 있었다. 김인우는 용서를 빌면서 그들을 위해 그곳에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냈다. 그 후 울릉도 주민들은 이곳을 성하신당이라 부르며 매년 음력 3월1일에 농사나 어업의 풍년을 비는 제사를 이 사당에서 지내며 배를 진수할 때도 꼭 이곳에 와서 진수식을 올리고 무사한 뱃길이 되기를 기원하게 되었다고 한다.지금까지 목숨을 아끼지 않으면서 국가의 정책을 수행한 수토관들의 애환과 고통이 담겨 있는 귀중한 자료들을 간략하게 소개했다. 울릉도·독도의 개척사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울릉도에서 눈으로 직접 체험하며 울릉도의 수토 역사를 확인해 보는 것도 울릉도·독도 여행의 또 다른 묘미다. 임만주〈울릉군 문화관광해설사〉 정용태기자 jyt@yeongnam.com매년 음력 3월1일에 울릉도 개척민들의 정신을 기리고 지역의 무사 평안을 기원하기위해 열리는 성하신당 기원제의 모습.울릉수토역사전시관의 '신묘명각석문'.울릉군 서면 학포리 암벽에 새겨진 '임오명각석문'
저금리 대출 사칭 보이스피싱 피해 막은 농협직원
농협 직원이 기지를 발휘해 저금리 대출로 속인 수천만 원대 전화금융사기 범죄를 막아 화제다. 경찰에 따르면 울릉군 울릉읍에 사는 60대 할머니 A 씨는 지난 21일 알 수 없는 전화금융사기 용의자로부터 NH농협은행 본점 영업부 직원인데 소상공인 및 코로나 19 관련 대출을 해주겠다고 연락을 받았다. A 씨는 저금리 대출을 해 줄 테니 우선 2천만 원을 송금해 달라는 말에 속아 이날 울릉농협을 찾아 대출 상담을 진행하던 중 할머니의 대출 이유를 듣고, 전화금융사기임을 직감한 직원 B 씨가 할머니에게 이 사실을 설명하고 울릉경찰서에 곧바로 신고해 전화금융사기 피해를 막았다. 김우태 울릉경찰서장은 지난 26일 울릉농협을 방문해 발 빠른 대처로 전화금융사기 범죄 피해를 예방한 울릉농협 직원 B 씨에게 감사장을 수여하고 고마움을 전달했다. 정용태 기자 jyt@yeongnam.com전화금융사기 피해를 막아낸 울릉농협 직원 B씨(사진 왼쪽 2번째)가 표창장을 받은뒤 김우태 울릉경찰서장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울릉경찰서 제공
[울릉도·독도 파노라마 (3)] 조선 조정의 수토 정책(상)
울릉도·독도는 우리나라 최동단에 위치하며 역사적·지리적·국제법상 우리의 영토로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천혜의 화산섬이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울릉도·독도를 과거 조정에서는 어떤 정책으로 지켜왔는가를 생각하면서 그 수단의 하나인 수토정책(搜討政策)에 대해 2회에 걸쳐 알아보기로 한다. 울릉도·독도를 관리하기 위한 정책의 이름으로 수토정책의 수토란 "무엇을 조사하고 찾아서 토벌한다"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지만, 그 정책은 울릉도·독도를 전체적으로 관리·지원하는 넓은 의미의 국가 정책이며 내국인과 외국인을 막론하고 떠돌아다니거나 도망간 사람을 데리고 돌아와 섬을 비우는 쇄환정책(刷還政策)에 비해 적극적인 관리정책이라 할 수 있다.고려 시대 현종 9년(1018∼1022) 때 고려의 관리들이 우산국에 입도해 농기구를 지원한 기록이 있으며 그 후 조선조 초기부터 1882년 울릉도 개척령이 내려진 이후까지도 수토정책은 지속해왔다. 이러한 수토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국가에서 파견하는 관리들을 수토사 또는 수토관이라 부른다.고려 시대에는 감창사·안무사·작목사 등으로 불렀고 조선 시대에는 안무사·심찰사·경차관·순심경차관·수토군관 등으로 부르다가 17세기 말 울릉도에서 어로 활동을 하던 조선의 어부와 상인을 일본이 납치하는 '울릉도쟁계(鬱陵島爭界)'를 겪은 이후 수토관으로 정착했다. 수토군관 혹은 수토군은 울릉도 이외의 지역에도 있었지만, 수토정책이 실시되면서 울릉도에 정기적으로 파견된 군관을 수토관으로 불렀다. 수토관은 삼척진의 영장과 월송포의 만호가 교대로 맡았는데 영장과 만호는 관리의 직책 명칭이다.고려 인종 19년(1141) 명주도·감창사·이양실이 파견돼 울릉도의 과일과 나뭇잎을 채취해 조정에 바쳤다. 고려 의종 11년(1157)에는 명주도·감창사·김유립이 파견되어 울릉도에 주민을 이주시킬 계획으로 조사했으나 암석이 너무 많아 주민이 살 수 없다고 보고했다. 고종 40년(1253) 이승휴가 몽골의 침입을 막기 위해 강원도 삼척 요전산성을 수비하던 중 울릉도를 관망했다는 기록도 있다. 울릉도는 고려 말 왜구 때문에 무인도가 되었으나 조선 초 이래 조정의 쇄환정책(刷還政策)에도 불구하고 육지의 백성들이 계속 건너가 살았다.경북 울릉군 서면 태하리에 2017년 12월 문을 연 수토역사전시관에는 조선 시대에 파견된 총 38명의 수토사 명단 비가 세워져 있으며 풍랑에 순직한 수토사 추모비도 함께 세워져 있다. 조선 시대 수토관은 경북 울진에 있는 관청에서 대기하다 맑은 날씨가 되면 울릉도를 향해 출발했고 타고 가는 배는 판옥선 형태로 추정하고 있으며 대략 30∼40여 명이 탈 수 있었다. 수토정책 실시 초기에는 2년 간격으로 3년에 한 번, 그 후로는 2년에 한 번으로 바뀌었고 수토관 파견에는 군관·수행원·역관이 동행했으며 적을 때는 80여 명, 많을 때는 150여 명의 규모로 파견됐다. 임만주<울릉군 문화관광해설사>정용태기자 jyt@yeongnam.com울릉 수토역사전시관 앞 정원에 옛 모습을 복원해 전시한 수토선2017년 12월 울릉군 서면 태하리에 문을 연 울릉 수토역사전시관 전경울릉 수토역사전시관 정원에 있는 조선시대 울릉도 수토사 38명의 명단이 적힌 비석
[울릉도·독도 파노라마 (2)] "울릉도엔 청동기시대나 철기시대 초기부터 사람 살았을 것"
동해 한가운데 오롯이 서로에게 의지한 채 외로이 떠 있는 섬 울릉도와 독도. 이 섬에는 언제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을까? 학계에서는 울릉도 곳곳에서 발견된 고분(古墳)들과 무문토기·청동장신구·갈돌 등을 근거로 청동기시대나 철기시대 초기부터 울릉도에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문헌상 울릉도에 사람이 살았다는 기록은 3세기에 나오기 시작한다. 중국의 고전 '삼국지위지동이전(三國志魏志東夷傳)'에 3세기쯤 이미 울릉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기록돼 있어 삼국시대 이전에 울릉도와 독도는 '우산국'이라 불리는 소규모 해상왕국이었음을 사료를 통해 추정할 수 있다. 우리나라 문헌에 울릉도·독도가 처음 등장한 것은 고려 시대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이다. 기록에 따르면 울릉도와 우산도(독도)라는 두 개의 섬이 우산국이라는 하나의 독립국을 형성하고 있었다. 우산국은 신라 지증왕 13년(512년) 신라 장수 이사부에 의해 신라에 병합됐고, 이로써 울릉도·독도는 우리나라의 부속 도서로서 우리 역사에 편입되어 지금까지 우리의 고유 영토로 존재해 왔다. '고려사' '세종실록' '신증동국여지승람'을 살펴보면 울릉도·독도는 하나의 광역 지역으로서 우산도로 불리거나, 각각의 독자적인 섬으로서 우산과 무릉으로 불렸다. 고려 초기에는 공납 물을 바쳤다는 기록, 고려 중엽부터는 관원이 왕래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후기에 울릉도·독도는 강원도 울진현의 담당으로 편입됐으며, 내륙인들의 왕래가 활발했다. 그러나 조선 시대에 들어 울릉도·독도에 사람이 살지 못하게 하는 쇄환정책(刷還政策)을 지속해서 추진하다가 1881년(고종 18년) 울릉도·독도 역사의 큰 전환점이 찾아오게 된다. 정부에서 울릉도 쇄환 정책을 폐기하고 개척령을 반포해 비로소 내륙인의 왕래가 허가됐다. 개척령이 내려진 그 이듬해 16가구 54명이 정부 주도하에 공식적으로 첫 이주를 하면서 울릉도 개척의 불씨를 당겼다. 이를 바탕으로 1900년 10월 25일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를 대내외에 반포해 국제법상 완벽한 우리의 영토임을 확고히 했다. 이 칙령에는 울릉도를 울도로 바꾸고 도감을 군수로 개정해 울릉도·독도를 정식 지방 관제에 편입한다는 사실과 함께, 제2조에 '군청의 위치는 태하동으로 정하고 구역은 울릉도와 죽도 및 석도를 담당할 것'이라고 명시해 '석도(독도)'가 울도 군수의 관할 구역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일본은 1905년 독도를 '주인 없는 섬'이라며 지방정부인 시마네현 고시 40호를 통해 독도를 '죽도(다케시마)'로 명명하고 불법으로 일본의 영토로 편입했다. 일본 정부는 이를 근거로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정당화하는 증거 자료로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마네현 고시 40호'는 일본 정부의 관보에 게시되지 않고 대외적으로도 공포된 적 없는 일본 시마네현 내부 회람용 문서에 불과해 국제법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했다. 한 마디로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근거와 효력이 없는 일본 정부의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는 1945년 일본의 식민지에서 벗어난 이후 우리의 주권과 영토를 포함한 모든 권리를 되찾았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은 지속해서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주장하고 있다. 이는 독도에 대한 국제적 분쟁 발생 시 명분을 쌓기 위한 일본의 다단계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는 울릉도·독도에 관한 올바른 역사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울릉도·독도는 고대부터 현재까지 한반도와의 연계 안에서 존재해 왔고, 우리 어민들은 고기를 잡는 거점으로 줄곧 활용해 왔다. 역사 안에서 울릉도·독도는 본토와 섬의 관계에 놓여 있었고, 동일 역사·문화 생활 권역에 속해 있는 대한민국 고유영토이다. 정용태기자 jyt@yeongnam.com신라 지증왕 13년 신라장수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할 당시 우산국 우해왕과 격전지로 추정되는 울릉군 서면 남양리 일대 모습울릉군 서면 남서리에 있는 횡혈식 석실고분. 울릉군 북면 현포리에 있는 고분. 울릉도 고분에서 출토된 토기. 울릉군 서면 남양리 해안가에 있는 사자바위(사진 앞)과 투구봉. 사자바위와 투구봉의 명칭은 신라와 우산국이 싸울 때 생긴 이름이라고 전해 진다.1900년 10월 25일 제정한 '대한제국 칙령 41호' 대한제국 칙령 41호는 제정 2일 뒤인 1900년 10월 27일 관보에 게재되어 국내외에 반포·공인됐다.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를 게제한 관보1716호.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연합국최고사령부 미국 군정청이 일본의 영토를 규정한 지도로 울릉도와 독도는 남한의 영토 구획선 안에 분명히 포함되어 있다.
동해해경, 울릉도 뇌졸중 환자 헬기로 긴급이송
경북 울릉도에서 발생한 80대 뇌졸중 응급환자가 헬기로 긴급 이송됐다. 15일 정오 울릉의료원에 내원한 A 씨가 검진 결과 뇌졸중 진단을 받아 육상 대형병원에서 정밀 치료가 요구됐다. 동해해경청은 환자 상태를 고려해 울릉도에 전진 배치 중인 양양항공대 소속 헬기를 이용, 오후 2시 7분 응급환자를 헬기에 편승 시켜 이륙한 뒤 오후 2시 56분 공군 18 전투비행단에 대기 중인 119구급차에 인계했다. A 씨는 강릉아산병원으로 이송됐다. 동해해경청 관계자는 "항공기 울릉도 전진 배치로 인해 이송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라며 ""24시간 상시 대기 태세로 도서 지역과 해상에서 발생하는 응급환자의 생명을 보호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정용태 기자 jyt@yeongnam.com15일 동해해경항공청 헬기가 울릉도에서 발생한 응급환자를 강원도 강릉아산병원으로 후송하고 있다.
의료대란으로 번진 의대 증원
병원 떠났던 대구 수련병원 전공의 700여 명, 복귀 시점 마지날에도 '요지부동'
[의대 증원 집행정지 각하·기각] 탄력받는 정부의 의료 개혁…남은 숙제는 전공의 복귀와 의사 설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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